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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2025 세계유명미술 특별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by morgen

누가복음 10장 30-37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왜 많은 화가들이 이 비유를 주제로 삼아 작품을 만들었을까?

중세 이후 종교화에서 도덕화로 전환되는 흐름이 있었다. 르네상스 이후 인문주의적 회화에서 다른 종교인, 다른 피부색, 이민자, 빈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기독교 예술은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중요해진 것이다. 유대인 사회에서 경멸받던 사마리아인이 선을 행하는 구조는 편견과 배타성에 대한 도전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은 부상당한 자의 고통, 사마리아인의 자비로운 행동, 제사장과 레위인의 무관심이 강한 대비 구조를 이루며 화가들의 관심 주제가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들라크루아 이후> 1890. 캔버스에 유채 73×59.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반 고흐는 1888년에서 1889년 사이 겨울, 두 차례의 정신 쇠약을 겪은 후 프랑스 남부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생 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는 동안 고흐는 정신병원 주변과 내부를 그렸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여러 그림을 그렸다. 그대로 베끼는 복사그림이 아니라 고흐 자신의 붓터치와 색감으로 표현한 완전한 고흐의 그림이다. 같은 작곡가의 곡을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달리 해석하듯이, 고흐는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했다.

그림을 보자. 딱 보면 반 고흐의 그림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의 윤곽들, 고흐 특유의 민트색과 푸른 기운, 거친 붓터치에서 고흐를 느끼게 된다. 이 그림은 그가 좋아하는 들라크루아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모방했다.

부상당한 남자는 말 위에 스스로 올라탈 수 없다. 그의 근육은 축 늘어져 있고, 똑바로 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매달려 있을 뿐이다.

사마리아인이 부상자를 말에 태우려고 끌어올리는 모습을 굵고 불안한 선과 뒤틀린 형태로 그렸다. 거칠게 바른 색이 투박하지만 강렬한 표현이다. 그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고통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인체 비례보다는 절박한 감정을 전달하는데 주력한 그림이다. 자신을 전혀 지탱할 수 없는 부상자의 무게는 관람자가 느끼는 연민의 무게와 같다.

부상자를 지탱하기 위해 뒤로 젖혀진 구조자의 허리, 힘으로 버티느라 오른쪽 발뒤꿈치가 신발에서 떨어져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순간이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부상자를 말 위로 끌어올리는데 제법 오랫동안 애쓰고 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이 느껴진다. 보는 눈은 그림을 향해 있지만, 감상자의 마음은 그림 밖 고흐에게까지 미친다. 이번 전시회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에는 고흐의 자화상도 전시됐는데, 이 그림 속 말 위에 올려지고 있는 저 사람도 일종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산한 삶에 부대끼는 고흐 자신이 바로 그림 속 강도만난 부상자가 아닐까. 항상 자신을 위해 곁에 있어주는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분명 선한 사마리아인일 것이다.

쥴스 로렌스 <선한 사마리아인, 들라크루아 이후> 1857. 인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고흐는 들라크루아 작품의 흑백 복제본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자신의 컬러와 자신만의 해석을 더했다.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서 한 남자가 강도를 만나 많이 다친 채 흙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제사장(왼쪽 위쪽, 멀리 가고있는 사람)이 그냥 지나갔고, 레위인(왼쪽 아래쪽, 열린 상자 옆)이 그냥 지나첬다. 이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 가르침을 받은 지도층 사람들이다.

고흐는 제사장의 뒷모습을 왼쪽 위 멀리 작게 그려넣었다, 타인의 고통에서 등을 돌리고 떠나는 무관심한 존재를 상징한다. 인물이 작고 흐릿하게 묘사되어 있어, 인간적 관계에서 멀어지는 태도와 감정적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다친 사람을 보고 도와준 사람은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천한 사마리아인이다.


왼쪽;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 1633. 에칭, 조각 및 드라이포인트; 4가지 중 첫 번째 상태. 인쇄물.

26.8 × 21.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오른쪽;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 1630. 참나무 패널에 유채 24.2 x 19.8 cm. 월리스컬렉션, 런던.


반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흑백 인쇄본을 보고 그렸지만, 그 이전에 렘브란트의 <선한 사마리아인> 그림을 먼저 봤을 것이다. 같은 네덜란드 화가이고, 기독교 목사였고 독실한 신자였던 고흐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봤으리라고 생각한다.

위의 판화와 유화그림 모두에서 렘브란트 특유의 빛과 어둠의 대비를 볼 수 있다. 전체의 명암도 확실하지만 건물의 아취형 문 안쪽 실내는 완전히 까만 색을 보여준다.

이것은 렘브란트 특유의 상징성과 서사 구조, 그리고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심오한 장치이다.

문은 안팎, 세속과 성스러움, 죽음과 생명, 무관심과 사랑 사이의 경계를 뜻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리고 문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윤리적 전환점—무관심에서 자비로, 방치에서 돌봄으로의 전이를 뜻한다. 신학적으로 이해하자면 구원의 문, 공동체의 문, 교회의 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관람자에게 더 깊은 해석을 요구한다. 문 안은 안전할까? 문을 넘으면 환영받을까? 문 너머가 완전히 깜깜하고 비어보이는 것은 공동체의 무관심과 위선적인 환대를 풍자하기도 한다. 슬픈 얘기지만, 강도만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은 빛과 돌봄의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빛과 어둠의 극적 대비) 기법은 렘브란트가 자주사용하는 기법이다. 인간의 내면, 영적 투쟁, 윤리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빛은 자비와 진리, 어둠은 몰이해와 고통을 뜻할 수 있다.

강도만난 사람은 아직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상태의 그림이다. 사마리아인이 여관주인에게 돌봄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문’은 책임의 이양, 신뢰의 자리라고 할 수있다. 사마리아인은 모든 길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책임을 나누고 넘겨주는 것 역시 사랑과 돌봄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여러 해석가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은 구원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의 우화가 되었다. 그 우화에서 사람은 세상의 적대적인 세력(이야기속 강도, 사탄을 상징)에게 공격을 받고, 죄 많은 인간성(상처받은 사람)을 교회(여관으로 상징됨)에서 신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키는 예수(진정한 선한 사마리아인)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적 해석을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도 그러한 우화적 요소가 담겨 있다. 일부 해석가들은 여관의 열린 문은 천국의 문, 즉 자비를 베푸는 자들에게 열리는 영원한 구원으로 가는 통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우화와 렘브란트의 대응은 그들의 세계와 우리 세계의 불의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외젠 들라크루아 <선한 사마리아인> 1849. 캔버스에 유채, 37x30Cm. 개인소장.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사람을 말 위에 올려주는 역동적인 순간이 표현되어 있고, 극적인 명암과 근육 묘사가 특징이다. 낭만주의 대표화가인 들라크루아의 그림답게 풍부한 색채감이 돋보인다. 마치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듯하지만, 들라크루아 특유의 감성적인 색감과 유려한 붓터치가 살아있다. 고흐의 그림과는 달리 전통적이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인물들의 자세나 근육 표현이 고전 조각처럼 힘있어보인다. 어두운 배경과 인물의 밝은 피부색이 대비되어 긴박감이 강조되는 것 같다.

들라크루아는 문학(단테, 세익스피어)과 성경에서 그림의 모티프를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림 역시 성경에서 가져온 모티프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선한 사마리아인> 1852. 캔버스에 유채 34x42Cm.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제움, 런던.


많은 화가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렸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이 주제가 이어져왔다. 아래 그림을 보면, 들라크루아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1589-1623)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도미니크 훼티 <선한 사마리아인> 1622경. 판넬에 유채 59.6x43.7 cm. 국립티센뮤제움, 마드리드.


현대 사회에서 강도만난 사람은 누구인가?

“선한 사마리아인” 16, 17, 18, 19, 20세기 그림은 성경의 내용을 그렸다. 오늘날 화가들은 이 주제를 어떻게 해석할까? 텍스트 자체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을 것이다. 2025년, 오늘을 사는 나의 시각도 그림이 그려졌던 시대와는 다르다.

이 시대에 강도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단순하고 쉽게 생각해본다.

거리의 노숙인, 전쟁 난민, 이주노동자, 고립된 노인, 정신질환자, 디지털문맹… 사회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바로 강도만난 사람의 입장이 아닐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존재들, 이들에게 누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답 역시 어렵지 않다. 멋진 추상적인 묘사가 필요하지 않다. 구체적인 사람들을 꼽아본다.

익명의 기부자, 사회적 약자(이방인, 난민, 성소수자 등)를 보호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불의에 대한 내부고발자, 인권변호사 등등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윤리적 명제가 아니다. “누가 진짜 이웃인가?”를 묻는 급진적 도전이다. 강도만난 사람,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질문은 각 시대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며 우리들 속에 계속된 질문을 던진다. 응답의 방법도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은 자비와 연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2025 세계유명미술 특별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에 전시된 그림들을 앞으로 몇 점 더 살펴보려고 한다.

전시장 작품 촬영이 금지돼있어서 그림 사진은 직접 찍지 못했다. 전시작품이 원래 소장되거나 전시된 미술관 홈에서 가져온다. 퍼블릭 도메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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