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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2025 세계유명미술 특별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by morgen

왜 제목이 제각각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을 영어권에서는 "The Sower" 또는 "Sower with Setting Sun" 등으로 부르고, 한국어 제목 번역은 "씨 뿌리는 사람" "태양 아래 씨 뿌리는 사람" "지는 해 아래 씨 뿌리는 사람" 등으로 조금씩 다릅니다.

고흐는 그림에 제목을 직접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작품 제목은 사후(死後) 미술사학자, 유족, 전시 기관, 또는 경매회사에 의해 관례적으로 붙여졌습니다. 또한 같은 제목의 그림이 많은 것은 같은 주제로 여러 점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1881년대 후반~90년까지 <씨 뿌리는 사람>을 여러 점 그렸으며, 대부분 밀레의 영향을 받았지만 화풍과 구성은 다양합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제목을 가진 다른 그림들이 여럿 존재하게 됩니다.

이 브런치 글에서는 원화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미술관에서 붙인 제목을 씁니다. 그림마다 같은 제목, 혹은 다른 제목이 나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덧붙이는 말은, 제목이 이중번역인 경우가 많아 우리나라 제목이 이것저것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화가는 모두 국적이 다르고 사용 언어가 다릅니다. 따라서 그림 제목도 제각각 다른 나라 언어로 붙여져 있습니다.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저의 브런치 글에서는 주로 영어제목을 번역한 제목으로 사용합니다. 그 영어제목은 물론 원화의 제목을 번역한 영어인 것이 많지요. 제목이 단순하고 짧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영한번역을 택했습니다.

(이 글 뿐만 아니라, 저의 브런치 미술에 관한 글에서 모든 제목들은 이 원칙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림 A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6월. 캔버스에 유채, 64.2 × 80.3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쟁기질한 땅에 씨를 뿌리는 사람 뒤로 익은 곡식이 무리지어 보인다는 것이다. 씨앗과 익은 곡식, 반 고흐는 이를 통해 자연과 삶의 순환을 표현한다. 반 고흐가 30여점의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린 것은 그에게 종교적 측면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신의 말씀을 뿌리는 사람을 상징한다.

종종 기독교 설교에서 이 그림이 인용되기도 한다. 교황 레오 14세(Leo PP. XIV, 재위 2025/5/8~)는 로마에서 열린 첫 일반 알현에서 이 그림을 언급하며 '희망의 상징'이라고 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함께.

반 고흐가 이 그림과 관계를 맺은 것은 장 프랑수아 밀레와 같은 낭만주의 사실주의자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고, 자신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씨 뿌리는 사람을 농사의 영원한 순환, 명예로운 노력,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겼다.

그림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두껍게 칠하여 하늘과 들판에 질감을 느끼게 된다. 리듬감 넘치고 표현력이 풍부한 붓놀림이 씨 뿌리는 사람에 역동성을 더해준다.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통하여 생명의 시작과 성장을 상징한다. 노란색과 보라색의 대비를 사용하여 농촌 생활의 평온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담아낸다. 프랑스 남부 아를의 강렬한 햇살은 반 고흐의 눈부신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에 영감을 주었다. 성장과 노동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주제에 사로잡혀 같은 주제의 작품을 30여개나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8월. 종이에 연필, 갈대 펜, 잉크, 24.4 x 32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전경의 갈아엎은 땅에는 두꺼운 선을, 태양에는 가늘고 섬세한 펜을 사용했다. 반 고흐 특유의 선 작업을 통해 움직임이 느껴지는 강렬한 질감을 표현햇다. 에너지 넘치는 선과 태양의 둥근 형태와 경작된 땅의 각지고 역동적인 선 사이의 강렬함을 능숙하게 묘사했다.

노동 집약적인 수작업 농사 과정을 반영하며, 지는 해는 이 장면에 거의 영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데, 이는 반 고흐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티프이다.


그림 B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11. 캔버스에 유채, 32.5 x 40.3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두 개의 태양, 하나의 씨앗

<씨 뿌리는 사람> 위 첫번째 그림-크뢸러 뮐러 미술관 그림과 반 고흐 미술관 그림은 모두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동일한 상징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식은 마치 한 화가의 낮과 밤, 또는 이성과 감정의 두 얼굴을 보는 듯하다. 그림 A- 6월작(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고흐가 아를에서 농민의 삶을 관찰하며 조용히 사유했던 시간의 결정체라면, 그림 B- 11월작(반 고흐 미술관)은 그의 정신이 절정에 달했을 때, 세계와 자아의 융합을 폭발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1888년작 <씨 뿌리는 사람> 6월작(크뢸러 뮐러 미술관)과 11월작(반 고흐 미술관)의 두 작품을 비교해본다.

같은 주제이지만, 마치 서로 다른 고흐가 그린 듯한 인상을 준다.

6월 작품 그림 A 햇살 가득한 남프랑스의 들판을 배경으로 한 정적이고 명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화면 왼편에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며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머리 위에는 노란 태양이 조용히 떠 있다. 고흐는 여기서 색채를 절제하고 붓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씨 뿌리는 행위를 일상과 자연의 순환 속에 놓인 숭고한 노동으로 묘사한다. 푸른 하늘과 짙은 녹색 밭고랑 사이를 걷는 인물은 현실과 조화를 이루며, 마치 고요한 음악의 박자처럼 리드미컬하게 땅과 호흡하고 있다. 이 그림의 인물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고흐는 이 농부에게 특별한 표정을 주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 속에는 경건한 리듬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이에 비해 같은 해 11월에 제작된 작품 그림 B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띤다. 형상보다 감정이 앞서고, 자연은 현실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로 변형되어 있다. 태양은 훨씬 더 강렬하고, 하늘과 들판은 소용돌이치듯 격렬하게 뒤섞인다. 땅은 색의 흐름으로 풀어지며, 붓질은 굵고 격렬하다. 농부는 더 단순화된 형상으로 등장하며, 이제 그는 농부라기보다는 자연과 하나가 된 신화적 존재처럼 보인다. 씨를 뿌리는 그의 제스처는 실제 노동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생명을 창조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색채는 현실을 따르지 않고 감정의 온도를 따르며, 노랑, 보라, 파랑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고 번져나간다.

두 그림 모두 고흐가 아를에서 경험한 햇빛, 땅, 농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내적 진동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 그림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평화로운 동행을 보여주는 반면, 다른 그림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태양 사이의 감정적 융합을 드러낸다. 그림 A는 일상 속의 경건한 노동, 그림 B는 내면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의 찬가다.

이 두 그림은 단순히 한 주제의 반복이 아니라, 고흐라는 예술가의 존재와 감정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밀레와의 정신적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았고, 그 언어를 통해 씨앗을 뿌리는 인간의 행위를 하나의 예술적 선언으로 확장시켰다. 하나는 땅 위의 시(詩), 다른 하나는 태양 아래의 환상이다. 이 두 개의 고흐는 결국, 하나의 존재가 품은 복수의 시선이며, 그가 평생 좇았던 ‘빛의 본질’에 대한 회화적 응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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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밀레 이후> 1890. 캔버스에 유채, 64×5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오른쪽;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 캔버스에 유채, 101.6x82.6cm. 파인 아트 뮤제움, 보스톤, 미국


고흐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따라 그린 것은 서로 다른 시기에 밀레에게 보낸 '대화의 편지'이며, 동시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존재와 창조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고흐는 평생 밀레를 존경했고, 그의 그림을 여러 차례 모사하며 예술적 교감을 이어갔다. 특히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에게 가장 각별한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단순히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와 시대적 감각, 존재론적 물음을 그 안에 덧입혀 전혀 다른 차원의 이미지로 전환해냈다. 1888년, 그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남긴 두 점의 <씨 뿌리는 사람>은 그 대표적인 예다. 동일한 모티프를 담고 있으면서도, 정서적 울림과 회화적 어법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장 프랑소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1850년 파리 살롱전에 전시되었다. 밀레의 많은 농촌 그림들은 흙빛이 도는 음울한 색조를 주로 사용한다. <씨 뿌리는 사람>은 주로 광활한 농장에서 혼자 일하는 농촌 노동자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농촌 풍경과 잘 어울리며 사회주의적 요소를 보여준다. 또한, 먹고살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빈곤의 요소도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이 그림은 초점과 주제, 그리고 작품의 묘사 방식 때문에 사회 사실주의 작품으로 분류된다. 밀레는 <씨 뿌리는 사람>을 통해 전통적인 학문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어둡고 탁한 흙빛 색조에서 이러한 특징을 드러낸다. 농부를 이상화하거나 완전히 무시하는 대신, 단순하고 실용적인 농부복을 입은 다부지고 건장한 젊은이로 묘사한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그림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창조력에 대한 찬사를 발견하고 이를 온전히 긍정했다.

"씨 뿌리는 사람"이 급속도로 산업화되던 프랑스에서 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분명해진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농민이나 노동계급이 조립 라인, 들판, 방직 공장 등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였다. 지금까지 예술은 상류층에 초점을 맞추거나 농민을 이상화하여 쾌활하고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그려왔다.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47/48 캔버스에 유채, 95.3 x 61.3cm. 카디프국립박물관, 웨일즈, 영국

땅의 가파른 풍경은 밀레의 고향인 셰르부르 반도의 모습이다. 밀레가 바르비종에서 구상하고 그린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다.


주제와 인물: 공통의 출발점

밀레와 고흐 모두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동일한 장면을 그렸다. 농촌 노동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주제로, 19세기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농부의 삶을 조명하고자 했던 리얼리즘 화가들에게 흔한 주제였다. 밀레의 경우 실제 농민 출신답게, 농부의 육체적 노동을 매우 사실적이고 절제된 감정으로 묘사했다. 그의 <씨 뿌리는 사람>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단한 몸을 갖고 있으며, 깊이 숙인 허리와 단호한 발걸음 속에 땅과 일체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고흐에게 씨를 뿌리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서 '영적인 제스처'였다. 고흐는 밀레의 구도를 빌려왔지만, 자신만의 색채 감각과 감정적 표현을 통해 전혀 다른 울림을 부여했다. 그의 농부는 자연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감정적으로 격렬히 교감하는 존재다.


색채와 감각: 현실과 감정의 거리

밀레는 어두운 색조와 단단한 붓터치로 황혼 무렵의 밭과 농부를 그렸다. 갈색, 회색, 황토빛이 주조를 이루며, 인물은 그림의 일부로 융합되어 있다. 빛은 전체적으로 절제되었고, 하늘과 땅 모두 현실의 질감을 살리는데 초점을 뒀다.

고흐는 여기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씨 뿌리는 사람> 여러 작품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짙은 남보라 하늘, 강렬한 노란 해, 초록과 파랑이 어우러진 밭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자연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색채가 인물과 풍경을 분리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감정적 파도처럼 흐른다. 태양은 단순한 광원이 아니라 생명의 상징이며, 농부는 그 태양 아래에서 우주적인 순환의 일부처럼 묘사된다.


형상과 붓터치: 사실과 표현

밀레의 농부는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며 비례감이 잘 맞는 인체 묘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리얼리즘적 관심을 반영하며, 실제 농촌의 육체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붓터치는 절제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고흐의 농부는 붓질이 격렬하며 인물의 실루엣이 명확하지 않고 흔들리는 듯 보이기도 한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감정과 영감을 강조하며, 움직임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농부가 뿌리는 씨앗에 생명력과 희망을 불어넣는다. 리드미컬한 붓터치는 보는 이의 감정에 직접 호소한다.


상징과 해석: 땅과 인간, 영혼의 교류

밀레의 그림은 노동의 경건함과 인간의 존엄을 상징한다. 그에게 씨를 뿌리는 일은 일상이며 생존이다. 사회적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으나, 감정보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고흐는 이 장면을 일종의 종교적 상징처럼 그린다. 그는 농부를 ‘자연의 사제’처럼 보고, 씨앗을 뿌리는 행위는 곧 생명을 퍼뜨리는 창조 행위로 여겼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그림을 "생명의 힘을 노래하는 방식"이라고 썼다.


밀레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리얼리스트였고, 고흐는 ‘하늘을 바라보는’ 표현주의자였다. 같은 주제의 그림이라도, 밀레는 현실을 깊이 응시했고, 고흐는 현실에 감정과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고흐는 밀레를 존경했지만, 단순히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사는 복사(copy)가 아니라 창조적인 대화(conversation)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예술이란 언제나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고흐가 밀레에게 보낸 그림은 단순한 모작이 아니라,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감탄과 고뇌,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질문을 담은 편지다.

그림이 서로 말을 건넨다는 이 관점은, 단절이 아닌 연결의 예술사를 상기시켜준다. 한 화가가 다른 화가의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때,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경의를 담은 창조적 응답이 된다. 그런 면에서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그림과 ‘대립’하거나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 걸고, 응답하고, 넘어서려는 예술적 대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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