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나도 빌리처럼> 박정옥

책 리뷰

by morgen

<나도 빌리처럼> 박정옥 지음. 2019. 하늘재 출판.


꿈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에세이를 읽는 동안 여러 번 멈춰섰다. 문장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기보다, 글의 내용에 대하여 나의 기억이 또렷이 살아나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추억하는 현상, 독자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 아닌가. 혹시 내가 더 그런 독자인가?

책은 여덟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각 파트에 5~6개의 수필들이 들어가 있다. 첫 파트 “나도 빌리처럼”의 시작 에세이 “변신”은 제목을 보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고, 그레고르 잠자를 생각했지만, 젊어보이고싶은 작가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 유쾌한 글이다. “변신”은 2018년 <에세이스트>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를 등단시킨 작품이다. 작가의 얼굴을 보고싶다.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 변신 이전의 모습을 모르니 ‘변했을까’는 아니고, 얼마나 젊어보일까, 많이 궁금하다.


“프랑스어 반에서 생긴 일”은 외국어 설움이 컸던 나로서는 관심이 확 땡기는 제목이다. 작가는 “샹송을 원어로 부른다면 멋질 것”같은 생각으로 프랑스어 학원에 등록했다. 선생님이 과제를 내 준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를 외워온 수강생은 단 한 사람 작가뿐이었다는 구절에서 작가의 프랑스어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여행으로의 초대"는 <악의 꽃>에 수록된 시이다.

뒤이어 나를 오래도록 멈추게 한 글은 책의 제목인 “나도 빌리처럼”이다. “나도 빌리처럼”은 빌리 엘리엇이 생각나고, 당연히 비상(飛上)이 연상되는 제목이다. 작가도 비상을 꿈꾼다.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힘차게 날갯짓하는 두 팔을 보며 빌리처럼 마음껏 비상 飛上하고 싶었다.” 24쪽.


빌리 엘리엇을 다시 떠올리다

작가는 영화 〈빌리 엘리엇>을 호출한다. 중년 여성도 빌리처럼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정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장면은 조금 다르다. 1999년 독일에서 영국으로 옮겨갔을 때 텔레비죤에서 영화 <빌리 엘리엇>을 보았다. 서툰 영어실력으로 모든 대사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탄광 파업 속에서 부딪히는 큰아들 토니와 아버지 재키,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갈라지는 남성들의 얼굴이다. 빌리의 춤보다 먼저 기억되는 것은, 꿈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의 무게였다. 물론 이견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대도 많이 변했다. 논밭 팔아서 자식 가르치던 시대, 딸들이 남동생이나 오빠를 가르치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밤을 밝히며 자신을 갈아넣던 시대,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영화 <빌리 엘리엇>에서 큰 아들 토니는 탄광 노동자로서 파업의 핵심 리더이다. 아버지 역시 파업에 적극 참여자였다. 파업이 길어지고 생계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도 아들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한 신념을 꺾지않는다. 아버지는 이상과 현실의 고뇌 속에서 결국 파업 대열에서 이탈하고 탄광으로 돌아간다. 아들 토니는 아버지를 가로막으며 아버지를 배신자로 몰아부친다.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아들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힌 아버지,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너는 아이가 없으니까' '나는 먹여살려야 할 아이가 있잖아.' '빌리가 천재일 수도 있어' 아버지의 가슴 속에서 여러 말들이 순서없이 엉켜있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빌리의 발레학교 오디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비난을 감수한다. 우리들, 영화 관람객이나 소설 독자에게 남는 것은 발레리노 빌리 엘리엇의 성공 스토리이다.

빌리의 비상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상기시키고, 꿈을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필의 작가도 비상하고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빌리 엘리엇>에서 큰아들과 아버지의 갈등 장면이 먼저 떠오르던 나도 "나도 빌리처럼"을 읽으며 슬쩍 '비상'의 씨앗을 심게 되었다. 꿈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꿈을 꾸는 시간은 행복하다. 꿈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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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라는 조건을 넘어서는 태도

이 책의 인상적인 점은, 자신의 나이나 환경을 전면에 내세워 변명하지 않는 태도다. '중년 여성도 할 수 있다'는 말이 흔히 자기 위안이나 선언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임하는 삶의 방식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꿈은 ‘언젠가’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라는 점에서, 이 책은 나이에 대한 변증법을 다시 쓴다. 젊음이 가능성의 조건이라면, 중년은 선택의 결과다. 작가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선택한다.

프랑스어를 배워 인문학 여행에서 프랑스어를 말하고 듣는다. 아들의 첼로롤 묵혀두지 않고 자신이 첼로를 배워 직접 연주를 한다. 작가는 "익투스 청소년 관현악단" 단장으로 활동한다.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의 행동은 꿈이 시들어가는 중년에게 바람을 불어넣는다. 글이 사생활의 기록만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도 '나도 해볼까'하는 생각을 더해주는 책이다.


파트 2에는 의사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삶을 그렸다. 사회에서 '공인'으로 바라보는 의사인 작가는 길거리에서 붕어빵 먹으며 걷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작가는 개인병원 원장이다. 호떡, 붕어빵, 핫도그 같은 포장마차 음식을 즐기는 작가는 어느 저녁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길거리 음식 맛을 만끽한다.

밖이 어두워져 얼굴이 잘 안 보이니 과감하게 길에서 먹어도 될 듯싶어서였다. 끓는 기름 속에서 금방 건져 올린 핫도그는 지그재그 빨강 선이 그어지자 한층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파트 단지 내 길을 천천히 걸으며 한 개를 다 해치웠다. 다행히도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았다. 43쪽.

웬지 손가락에 빨간 케첩 조금 묻었을 것같고, 그것을 냎킨 꺼내어 닦지 않고 입속으로 쏙 넣고 달게 빨아먹을 것같은 작가의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막내 아들이 성인인 중년의 작가에게 '귀엽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도깨비와 귀명창"은 전적으로 공감하는 글이다. 나역시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못보았고, 모임에서 어떤 드라마가 화제가 되어도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아파트 관리비에 무조건 부과하던 TV 수신료를 그냥 내주다가, 이번에 이사오면서 TV가 없다고 신고하고 수신료를 관리비에서 빼어냈다.

작가는 나중에 "도깨비"를 몰아보았고, 영상을 통하여 대화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하는 글쟁이의 고민을 한다. 역시 글쓰기에 진심인 작가의 태도이다.

"네, 이 대사는 좀 어색하고, 저 대사는 참으로 명쾌하다 등등, 위트있는 명대사 쫓아가느라 밤을 지샜죠." 29쪽


문학을 경유하는 에세이의 결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에세이 곳곳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이다. 지식의 과시가 아니라, 이미 문학가로 오래 살아온 사람의 호흡에 가깝다. 인용은 설명을 위해 쓰이지 않고, 생각이 막힐 때 기대는 난간처럼 등장한다. 인용은 잠시 쉴 곳을 마련해준다.

이 수필집은 ‘꿈을 말하는 책’이기 이전에, 글쓰기를 꿈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책이다. 문학은 목표가 아니라 동반자처럼 곁에 놓여 있다. 문장은 성급하지 않고, 감정은 과잉되지 않다. 독자를 문학의 세계로 은근히 끌어들이는 비법은 작가의 작의적인 문법일까, 자연스러운 연관성일까. 자연스럽다. 단언컨데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저절로 스며드는 글의 마력이다.

<나도 빌리처럼> 한 권을 읽으며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숙제처럼 열심히 찾아봤다. 책이 있는 것은 방치했던 책을 다시 펼쳐보았고, 내게 없는 책은 인터넷에서 찾아 보았다. 수필집 한 권이 여러 권의 독서를 유도한 것이다. 이론서의 주석을 일일히 살펴보는 연구가처럼 수필에 쓰인 인용구절들을 살펴봤다. 그만큼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았으니까.


작가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는지, 문학에 젖어 살고 있는지 여러 수필 속에 다양한 문학가의 글이 소환된다. 가장 적절한 곳에 문학작품을 불러온다. 작가가 인용한 구절들을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슬쩍 작가에게 질투심을 갖기도 했다. '아, 나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질투심. 비록 프랑스어는 아니지만 한글로 읽는 것이라도 소리내어 읽을 때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분위기가 한결 살아난다.

수필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책 전체로 흐르는 문학작품 몇몇을 옮겨본다.

19쪽, 샤를 보들레르의 시 "달의 슬픔" 인용. 프랑스어 배울 때 숙제인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를 외울 때 작가는 그의 다른 시들도 찾아 감상했다. 그때 찾아본 시가 "알바트로스"와 "달의 슬픔"이다. 나중에 작가는 친구에게 불어로 "달의 슬픔"을 낭송해준다.

나는 친구에게 불어로 "달의 슬픔"을 낭송해 주며 보들레르가 그려 낸 달과 시인과 태양의 삼각관계에 감탄했던 마음을 토로했다. 사후에 알려진 윤택수 시인과 그의 "박물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173쪽

작가의 가슴은 늘 문학에 젖어있어 촉촉하다.

황도가 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영랑과 비슷한 마음이 된다. 모란을 보내고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겼던 시인처럼나도 여름뿐만 아니라... 102쪽.

그러다보면 나도 러시아의 젊은 청년 예세닌처럼 낭만적인 시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05쪽.

106쪽, 세르게이 예세닌 시 "나는 첫 눈 속을 거닌다" 인용.

170쪽, 봉평 여행에서 이효석 문인을 생각한다. 171쪽, 차점 "동" 소개.

178쪽 김동명 시인의 "수선화" 인용.

작가가 프랑스 인문학 기행을 갔을 때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 동상이 있는 리옹에서 일행인 노교수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선생님! <인간의 대지> 읽으셨어요?" "그건 못 읽었어요." "거기에 '오아시스'라는 장이 있는데 대단해요. 짧은 단편 같아요." 213쪽

작가는 '오아시스'에 폭 빠져있었던 것같다. 소개팅에서 만난 청년과의 대화에 <인간의 대지>를 끌어들이는 상상을 펄친다.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책이름까지 끌어내고 드디어 '오아시스' 이야기를 기대한다.

"'오아시스' 생각나세요?" 여기서 그가 사막의 샘을 언급하면 우리 관계는 끝나는 것이다. "그 부분은 좀 감성적이죠. 황량한 사막에서 구조되는 다른 이야기에 비하면... 그런데 그 소녀들 이야기도 어린 왕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213-214쪽.

작가는 프랑스 남부 해안가에 있는 절벽위의 도시 에즈에서 큰 영감을 받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잠시도 떨쳐버릴 수 없는 작가다.

훗날 에즈 마을을 배경으로 단편을 쓰고싶다는 갈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트며 올라왔다. 222쪽.

241쪽, 생택쥐페리의 물 예찬 인용.

258쪽, 보들레르의 시 "파리의 우울" 등장.

책 전체에 걸쳐서 작가의 해박한 문학작품에 대한 상식이 드러난다. 프랑스어를 좋아하고, 프랑스 여행중에 든 생각이니 당연히 보들레르나 생텍쥐페리가 자주 언급되기는 한다.


독자와 작가의 공감대

책을 읽다보면 사실은 그 단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전체 글의 흐름 속에 끼어있는 한 단어일 뿐인데 독자 개인에게 이끌리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그처럼 나도 "임 호랑나비"에서 바짝 달라붙는 단어가 있었다. "임 호랑나비"는 '곤충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의 큰 아들이 애벌레를 키워 호랑나비를 날게 한 이야기가 보고서처럼 쓰여있다. 제주도에서부터 공수해온 애벌레, 그 생명을 키워내는 아이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애지중지 보살펴 변태된 나비를 날려보내는 성숙한 아이의 모습도 감동이다.

이 글에서 나는 뜻밖에 '공주' '탱자나무'라는 단어를 만난다. 애벌레 먹이를 위하여 공주에 탱자나무 잎을 따러간다는 대목이다. 내가 살던 공주에는 측백나무 울타리도 있었고,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었다. 우리집 골목에 울타리로 측백나무와 탱자나무를 섞어가며 심은 집이 있었다. 탱자나무에는 가시가 있어 방범용 울타리로 애용되었다. 얼마나 순진한 시절이었던가. 나무 가시가 방범용이라고? 탱자 향기는 지금도 잊지못한다.

"고향 속으로" 역시 나를 고향길로 인도한다. 작가는 고향을 방문하여 초등학교도 가보고 중학교도 찾아간다. 나도 작가를 따라, 그러나 방향은 작가와 달리 나의 고향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내 나이가 앞날에 대한 꿈보다는 과거의 회상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책 속 한 단어에 이끌려 나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독서의 큰 재미다.


책의 일곱번 째 파트에는 작가의 인문기행이 자리잡았다. 어찌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밀레가 나오고 고흐가 나오는 대목인데. 나는 "놓치지 않을 거에요"를 외우며 열심히 활자를 따라잡는다. 여행기가 상투적이지 않고 신선하다. 밀레의 고향 바르비종이 소개되고, 생텍쥐페리의 리옹, 에즈의 니체의 산책길, 론강이 흐르는 고흐의 아를, 게다가 뉴질랜드까지. 열심히 글을 따라가며 여러 도시들을 둘러본다.

작가는 문학에만 깊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얘기 했듯이 첼로에도 진심이고, 미술에도 지적 욕구가 강하다. 여기에 '역사'까지 동반한다. 소마 미술관에서 본 프시케 이야기는 독자들을 '에로스와 큐피트' 시대로 안내한다. 그 뿐인가, 조선시대의 신윤복까지 등장한다. 달을 보면 이태백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월하정인"까지 생각하는 작가의 예술감각을 뛰어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작가의 꿈은 화려한 성취로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꿈이 지속되는 상태에 더 가깝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더 읽고 싶다는 욕망, 지금의 자신을 갱신하고 싶다는 조용한 다짐. 그것들은 완성되지 않기에 계속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멈춘다. 우리는 종종 꿈을 ‘이뤘다’ 또는 ‘이루지 못했다’로 구분하지만, 작가의 에세이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꿈은 도착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다.


<나도 빌리처럼>은 여운의 꼬리가 긴 책이다.

이 책은 독자를 격려하지만, 쉽게 위로하지는 않는다. 꿈을 꾸라고 말하기보다, 이미 각자가 품고 있는 꿈을 외면하지 말라고 조용히 요청한다. 책을 읽으며 멈춰섰던 순간들을 기억하면 나의 꿈에 단물이 될 것이다.


'변신'한 눈의 모습, 혀 뿌리에서 굴러나오는 프랑스어의 ㅎ발음, 보들레르의 시 낭송, 책 한권 탐독한 후에 작가를 만나다면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익숙한 모습일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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