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조헌주 <하나 사랑 그리고 별>

책 리뷰

by morgen

<하나 사랑 그리고 별> 조헌주 지음. 2021. 지식과 감성#



도메니코 귀디(Domenico Guidi,1625–1701)의 <수태고지 마리아 흉상> 조각 사진이 표지로 사용됐다. 화려한 색채가 경쟁하듯이 눈을 유혹하는 표지 대신에 흑백 표지가 인상적이다. 유럽에 있는 동안 많은 곳에서 마리아의 '수태고지' 그림과 조각상들을 보았었는데 귀디의 조각상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수줍은 듯한 표정, 다소곳이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우선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하나 사랑 그리고 별>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리스트를 하나하나 눈여겨 살펴보았는데 나는 그중에 반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참고 문헌 목록에서 작가의 사고가 깊음을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에서 눈에 띄는 책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이다. <하나 사랑 그리고 별>을 받아들고 휘리릭 한번 훑어보면서 맨처음 생각한 것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였다. 책의 스타일에서 떠오른 생각이다. "ㅇㅇㅇ에 대하여"라는 글제가 그렇다. 짧은 글 한 편이 결코 짧지 않은, 긴 여운을 남기는 내용도 그렇다.

평소 독서 속도대로 읽었지만 웬지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기는 조금 아쉬워 다시 또 천천히 읽어가며 한 행 한 행 곱씹게 되는 글묶음이다. 짧은 글이지만 여운은 길고, 책은 얇지만 생각은 두툼하게 쌓인다.

(사족; 50여년 전 우리 결혼식 주례사는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였다. 그 시절에 드문 멋진 주례사였고, <예언자> 책은 늘 내곁에 머물고 있다.)



33개의 에세이를 더듬어 본다.

시작은 "알바트로스, 대붕, 박제된 천재"다. 제목에서 눈치 챘듯이 보들레르와 장자와 이상이 등장한다. 첫 시작글부터 작가의 지식과 사색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두 쪽도 안 되는 짧은 글에 동서양의 문학가 또 사상가라고도 할 수 있는 4명이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와 동양의 고전 사상가 장자(莊子, 전국시대 송나라), 노자(老子,춘추시대 초나라), 한국 근대 문학의 독창적인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을 대표하는 언어를 꼭 집어 짧은 글을 완성했다.

알바트로스의 큰 날개가 지상에서 그토록 무용(無用)함을 보들레르는 말했고, 대붕이 그 큰 날개로 날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또 한 번 날면 그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에 대해 장자는 말하고 있다. 노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을 한다. 10쪽.

그대가 박제가 된 천재로 남게 되더라도 슬퍼하지 말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하라. 11쪽.


작가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생각은 "유머(humor)"에서도 펼쳐진다.

세익스피어의 희극들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등의 작품들 또한 유머 없이는 쓰여질 수 없는 명작들이다. 17쪽.

새로 들은 우스개소리가 신기하여 아이들에게 전하면 아이들은 콧방귀를 뀐다. "그게 언젯적 개그인데". 이렇게 젊은이에게 외면당하는 '아재개그' 밖에 모르는 나인데, 작가는 참 고급스러운 언어를 쓴다. 내 대화는 '웃기는 행위(개그)'에 머물러 있는데 작가는 '삶의 태도(유머)'를 말하고 있다. 살짝 부끄워진다.


"용기에 관하여"에는 내가 평소에 가끔 성찰하는 노자의 문장(도덕경 67장)이 등장한다. 세 가지 보물인 '자(慈: 자애로움)', '검(儉: 검소함)',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작가는 '만용'과 '자(慈)'를 들어서 용기를 설명한다. 책 전체의 뿌리처럼 뻗어있는 "사랑"을 이햐기 한다.

자애로움 없이 용맹하기만 했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나 알렉산더, 카이사르의 용기는 만용이었으며, 사랑에서 비롯한 체게바라나 묵자, 소크라테스의 헌신은 자애로움에서 드러난 진정한 용기였음을 알아야 한다. 28쪽

작가 조헌주에게 세상은 넓고, 그는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만나며 살고 있다. 동서고금을 휘젓고 다니는 타임머신에 올라탄 작가이다.


언제부터인가 소셜 미디어에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Amor Fati)" "지금 여기(now, here)" 이런 용어들이 많이 퍼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건 슬쩍 흘려버릴 간단한 말이 아니다. 붙잡고 씨름하며 깊이 성찰할 내용이다. 작가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에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경전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결과물로 "어느 비정규직의 고백"이라는 시를 짓는다.

오늘 하루를 가슴 떨리게 열심히 살아/ 기쁜 마음에 나에게 주는 술 한잔 신나게 쏟아부어주어도 좋으련만/ 난 하루살이가 아니기에 내일이 또 불안하여 --- 정규직보다 하루살이가 더 부러운 오늘/ 나는 하루살이보다 더 정열적인 오늘을 살았다. ---탭댄스의 리듬으로 온 지구를 발바닥으로 두드리고/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멋지게 휘날리며/ 거칠게 돌진해 오는 내일을 향해 굵고 힘찬 휘파람마저 날려본다. 67쪽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가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하루를 살기를 바란다. "하루살이보다 더 정열적인 오늘을 살았다"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진정한 카르페 디엠에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이 글에는 몇 개의 자작 시가 포함되어있다. 작가는 "하루"를 여러 모로 사색하고 펼쳐놓는다. 하루살이에 대한 헌시라고나 할까, "카르페 디엠"에 붙이는 시 "하루살이"를 보자.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삶을 살았던 영웅들도/ 너의 정열을 본받아 아직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 너는 하루살이가 아니었음을/ 태양은 또 기억할 것이다. 72쪽

작가는 "자유에 대하여"에서 카르페 디엠을 다시 해설한다.

자유란, 얽힘 없이 현재에 사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인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용기라는 칼날로 구속과 집착들을 끊어내는 것이다. 113쪽.

나는 작가가 카르페 디엠의 평화로운, 그러나 대단히 치열한 삶을 살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아모르 파티"의 뜻을 그의 글 "용기에 관하여"에 풀어놓는다 운명을 사랑하라고 적는다.

운명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 운명이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면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러한 삶에는 필연적으로 용기가 필요하다. 26쪽.

참 귀한 말이다.

가슴에 품고 곱씹으며 힘을 얻어야 할 귀한 말들이 너무 흔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현상은 참 안타깝다. 내가 가슴에 품고 있던 북돋움흙과도 같았던 말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의 <연금술사>의 한 구절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네가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이다. 이 문장이 얼마나 귀한 말인데 누군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가볍게 남발하는 탓에 희화화된 것은 참 안타깝다.


작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 같다. 성경의 인용 구절도 요소요소에 콕 박혀있고, 책 전체에 기독교 정신이 흐른다. 사랑, 겸손, 희생... 이 책은 아마도 독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우선 나에게 먼저. 작가의 선한 기운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는 한창 반항기에 '희생'에 대한 정의를 잘 몰랐었다. 자기가 하고싶어서 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희생 당하는 것'과 '자발적인 희생'에 대한 혼돈이었다. 자발적인 희생은 '헌신'이다. 헌신은 무엇일까?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살리는 것, 내가 곤경에 처하더라도 상대방을 위한 일을 하는 것, 그런 것일까? 남들이 희생이라고 하는 그것이 자발적인 희생일 때 '희생하는 사람' 당사자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요 희망인 경우가 많다. 당사자에게는 삶의 기둥같은 것, 살아야 할 이유, 살아가는 힘이 될 때가 많지 않은가. 고귀한 '헌신'이다.

작가는 희생이 사랑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작가의 해설은 '희생당함'이 아니라 고귀한 자발적인 희생이다. 자신을 '산 제물'로 내어놓는 희생을 이야기한다.

희생은 확고한 자기 신념에서 나온다. 사랑은 신념을 낳고, 확고한 신념은 두려움 없는 용기를 낳고, 그 용기가 망설임 없이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를 희생이라 하는 것이다. 86쪽.

예수가 망설임 없이 십자가를 졌고, 소크라테스는 망설임 없이 사약을 들이켰으며, 체게바라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이 사랑을 낳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86쪽.


시간은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똑같이 흐른다. 상식적인 속도는 있어도 우리의 시계는 모두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기다리는 시각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이고, 붙잡고싶은 시간은 쏜살인 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최종적인 종점은 '죽음'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이 운명을 작가도 거론한다.

"죽음에 대하여"의 구절을 인용한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니,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장자가 말한 '천하를 천하에 숨길 때' 죽음과 삶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95쪽.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속의 벌레와 개미의 밥이 된다.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97쪽.(장자의 말 인용; 장자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는 제자들에게 장자가 한 말.)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지난날들보다 적게 남은 것이 확실하다. 가끔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젊은이도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할까?' 젊은 작가가 "죽음에 대하여"를 쓴 것을 보니, 아마도 젊은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나보다. 젊어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삶은 좀더 진지해지고, 명랑해지고, 윤택하고 풍성해질 것이다.

웰빙(Well-being)이 화두이던 여러 해를 지나더니 이제는 웰다잉(Well-dying)을 외친다. 관속에 누워서 명상을 하고, 유서를 작성해보고, 생전 장례식을 하고, 이런 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서 실행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웰다잉이 웰빙과 분리된 명제는 아닌 것같다. 웰다잉은 당연히 웰빙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웰빙의 꼬랑지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웰빙과 섞여서 함께 가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잘 죽기 위해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죽을 것이라면 왜 이 고달픈 삶에서 바로 서려고 안깐힘을 쓴단 말인가? 웰다잉을 위한 여러 퍼포먼스들은 웰빙의 가장 확실한 역설(力說)이고, 또한 역설(逆說)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한 때 서점가를 휩쓸었다. <하나 사랑 그리고 별>에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글 한 편이 들어있다. 마이클 샐던의 책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다. 책의 제목을 직역해본다. <정의: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인가?> 의역 제목에 대한 딴지걸기는 아니다. 다만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넘어 "Right Thing to Do"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조헌주 작가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것을 말해준다. 단어풀이가 아닌 구체적인 설명이다.

사랑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의지를 낳고, 의지는 용기를 낳고, 정의는 용기를 무기로 삼는다. 정의는 결과에 집착함이 없기에 승, 패로 평가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정의롭지 않은 신념은 의지가 약하므로 뿌리째 뽑히기도 쉬워 물결 따라 인생 따라 마냥 흘러가고 말 것이다. 118쪽.

작가는 정의롭게 사는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간다.


책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한 것은 "누가 가난한 자인가"이다. 많은 글들이 짧은 반면에 이 글은 17쪽이나 할애했다. 세상의 눈으론 가난해 보였던 진짜 부자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법구경과 신약성서의 인용문도 들어있다. 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덕무와 정약용도 절대 가난하지 않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세상 유명한 어떤 인용문 보다도 작가의 자작시를 옮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마라/ 다투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면은 그만큼 강한 사람이다/ 미소 맑다고 가식적이라 생각 마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그는 겸손한 사람이다/ 저리 환하게 사심 없이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그가 가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7쪽


<하나 사랑 그리고 별>은 긴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안 삶의 고샅고샅마다 잠복하고 있는 상황들을 들춰내고 그것에 빛을 비춰주는 수필집이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책을 친구로 삼고 살았다고 한다. 그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하나 사랑 그리고 별>에 친절히 소개했다. 작가는 가끔 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동화를 쓴다. 월간문학에 동화로, 시사문단에 시로 등단한 문인이다. 17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에서 시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글들이 펼쳐져 있고, 그 모래밭에 수줍은 진주알이 조개속에 살포시 숨어있다. 진주알을 캐기 위해 눈을 크게 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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