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2025. 모모북스.
책은 1장 사랑의 의미, 2장 사랑의 진실, 3장 사랑의 이해, 4장 사랑의 이유, 이렇게 4부분으로 나누어 88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주 책장을 덮고 멈춰 섰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장 뒤에 놓인 시간들이 쉽게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붙잡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럽고, 느리고, 때로는 머뭇거리는 글이다. 느린 속도 덕분에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 곁에 오래 머물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바로 리뷰글을 쓰지 못했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조용한 문장으로 쓰인 책이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결코 조용하지 않은 질문들을 남긴다. 책을 읽으며 내용보다도, 이 글이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를 오래 생각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대부분 매우 사적(私的)이다. 가족 안에서 오간 말들, 관계 속에서 생긴 상처, 누군가를 이해하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들은 ‘남의 집 이야기’를 엿보는 느낌보다는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리는 기록’에 가깝다. 왜일까. 아마도 이 책이 사건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건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는 자리까지 나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보다 그 일을 겪으며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가이다.
‘나만의 사건’에서 ‘누구나의 감정’으로 이동할 때
개인의 일상이 책이 되는 순간, 글은 자동으로 공적(公的)이 되지는 않는다. 출간은 형식의 변화일 뿐, 공공성은 내용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이건 저 사람의 이야기지만, 내 삶의 감정과 닿아 있다.”라는 감정, 작가의 기록에서 내 삶과 공통점이 발견되고, 작가가 아플 때 나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인의 기록이 공적인 글이 되는 것이다. 사랑, 상처, 미안함, 후회, 이해, 화해 같은 감정은 개인의 삶에서 발생하지만, 그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은 타인의 삶으로 이동할 수 있다.
개인 일기가 공적인 에세이가 되려면, ‘나는 이런 일을 겪었다’에서 멈춰선 안된다. ‘이 일을 겪으며 인간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공적인 에세이가 된다. 기록에서 성찰로 나아가야 하고, 고백에서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사건은 단순 상황을 넘어 그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개인의 일상 기록은 독자와 공적인 관계를 맺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타인을 열어둘 때
공적인 글은 독자를 구경꾼으로 두지 않는다. 독자가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백을 남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종종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옳았는가?” “이 상처를 오직 상대의 잘못으로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보지 못한 감정은 없었을까?” 자기 고백이 자기 정당화로 흘러가지 않을 때, 글은 개인의 방을 나와 공적인 사유의 장으로 들어온다.
솔직함이 목적이 아니라 이해가 목적일 때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생긴 질문은 ‘솔직함’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는 숨김없이 쓰여 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읽는 사람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여기서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의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는 이미 세상에 없거나, 책의 바깥에 있고, 반박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다. 말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 솔직함은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을까.
에세이는 소설같은 픽션이 아니다. 요즘 에세이에서 솔직함은 종종 미덕처럼 소비된다. 하지만 솔직함은 언제나 안전한가. 특히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중에 누군가는 자신에 대한 묘사가 거짓없는 사실일지라도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동서, 난 못 모셔.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난 불편해서 못 살아. 매일 다니는 수영장도 못 갈 거야. 그리고 어머님이 집에 오시면 남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79쪽.
방학 한 달 동안만이라도 어머니를 모셔달라는 작가의 말에 손 윗동서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작가 편에 선 독자들은 책 바깥 쪽에 있는 동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솔직함은 공공성의 조건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솔직해서 좋은 글이 아니라, 솔직함을 통해 인간을 더 이해하게 만드는 글일 때, 그 글은 공적인 가치를 가진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상대를 단순한 가해자로 고정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겪은 일의 상황만 설명한 것이 아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 그리고 회복하여 화해의 꽃을 피우고 사랑의 열매를 맺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준다. '나만의 사건'에서 '누구나의 감정'으로 이동한다. 공적(公的)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책이다.
사실을 말할 권리와, 말의 책임은 다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쓸 권리가 있다. 가족사 역시 작가의 삶이므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상대가 실명으로 특정될 수 있고, 이미 사망하여 자신의 서사를 수정하거나 반론할 수 없다면, 작가는 자연스럽게 더 큰 윤리적 책임을 지게 된다.
고발과 이해는 전혀 다른 글쓰기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함부로 했다는 사실을 쓰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태도가 있다. 고발과 이해다.
왜 형님이 어머님을 죽어도 못 모신다고 했는지, 퇴근하면 내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발길이 무거워졌다. 큰딸이 아기였을 때, 나는 그 전날 나를 괴롭힌 어머니가 보기 싫어서 동네를 빙빙 돌며 집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78쪽
고발의 서사는 상대의 잘못을 증명하고, 독자의 판단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해의 서사는 행동이 왜 그렇게 나타났는지를 질문하는 방식이다.
위의 인용글에 앞서 시작은 이렇다. 자꾸 알아갔다. 78쪽
뒤에 이어지는 글은 이렇다. 자주 화가 차올랐다. 어머님의 습관적인 잔소리와 차가운 말투가 싫었고, 거짓말이 너무도 싫었다. 그리고 내 안에 미움이 있다는 현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다. 78쪽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해의 서사를 풀어놨다. 작가는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그 거칠음 뒤에는 어떤 두려움과 결핍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서에 대하여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동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 이 글은 등장인물 개인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서술이 있다해도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해석이 되는 이해의 서사다. 질문의 뒤에는 사랑이라는 현답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예의는 침묵이 아니라 서술의 온도에 있다
예의란 모든 불편한 사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예의는 사실을 말하면서 말의 온도를 낮추는 일에 가깝다.
예를 들어,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보다는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로 쓴다. "함부로 대했다"보다는 "그 말들이 나를 오래 움츠러들게 했다"는 식으로 쓴다. 이렇게 판결의 언어 대신에 경험의 언어를 쓰면 죽은 자든 책 바깥의 사람이든 산자들의 재판정에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죽은 시어머니가 작가를 괴롭혀 작가가 병을 얻게까지 되었던 상황을 독자에게 고발만하지는 않는다. 시어머니의 편에 서서 독자에게 이해를 시킨다. 그 분이 왜 그렇게 하셨었는지를 애써서 설명한다. 어머님을 모시지 않는 동서에 대한 이해도 깊다. 상대를 완전히 평면적인 악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관계 전체를 하나의 실패나 폭력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개인사는 쉬운 글쓰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렵고, 더 고독한 글쓰기다. 작가가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흔적이 보인다. 비난 대신 기억을, 판단 대신 감정을, 확정된 결론 대신 오래 남은 마음, 사랑으로 승화된 마음을 꺼내 보인다.
어머님처럼 오신 손님들께 집에 있는 뭐라도 싸주고 싶어 안달하는 걸 보면 내 모습에 스스로 웃음이 날 때가 있다. 137쪽
"어머니, 제가 어머니 많이 많이 좋아했어요. 제 고백 기억하시죠?" 208쪽. 시어머니의 임종시에 작가는 진한 사랑의 고백을 한다. 사람의 감각기관 중에 청력이 제일 늦게 닫힌다고 한다. 작가의 시어머니는 이 고백을 듣고 흐뭇한 마음으로 먼 소풍길에 오르셨음이 분명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상처를 넘어 사랑으로 나아간 이야기다.
관계의 객관화란 관계 안에서 받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만든 사람을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생애로 바라보는 일이다.
작가는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미화하지도 않고, 그것을 인간 전체로 환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시선을 옮긴다. 관계는 고통스러웠지만, 출발점이 ‘악의’였는지, ‘결핍’이었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관계는 더 이상 ‘나 vs 너’의 전쟁이 아니라 삶과 삶이 스쳐 생긴 상처로 재배치된다.
내가 오래 머물렀던 지점은 작가가 관계를 ‘객관화’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관계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어머님께 심한 시집살이를 했음에도 마음 한 구석에 늘 짠한 마음이 있었다. 시어머님이 아닌, 한 여자의 일생으로 바라보면 어머님께 무심할 수가 없었다. 18쪽
이 문장은 시선의 이동이다. 상처를 지운 것이 아니라, 상처를 만든 사람을 하나의 역할이 아닌 하나의 삶으로 바라보겠다는 선택이다.
어머니의 한 많은 일생에 무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쪽
여기서 작가는 며느리이기를 잠시 멈추고,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의 생애를 바라본다. 그 순간, 관계는 대립의 구조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이해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 지점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단순한 가족사 기록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는 하나의 성숙한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딸이 시어머니가 끓여 놓은 뜨거운 간장솥에 빠져서 큰 화상을 입었다.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작가는 백혈병 진단을 받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결과는 백혈병이 아니었지만.
질병의 공포 앞에서 작가는 삶을 통제하려 들기보다 자신과 타인을 함께 용서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그 ‘맡김’이 이후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음을 조용히 말한다.
내맡김의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 마음곁에는 절대 미움이나 원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자기에 대한 용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 어렵게 깨달은 진리를 잊을 때도 있지만, 나는 또 그 마음을 되찾고, 기적을 만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31쪽.
이 대목에서 기도는 신앙의 확신이라기보다, 더 미워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선택처럼 읽힌다.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미움을 내려놓겠다는 결심에 가깝다. 공포 앞에서 작가는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쪽으로 사유의 방향을 돌린다. 이 기도는 기적의 증명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아픔 앞에서 작가는 원망보다 맡김을 택했고, 그 선택이 삶을 다시 이어가게 했다.
선함은 가르침으로 전해지기보다, 함께 있었던 시간과 몸의 기억을 통해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라고 했고, 아버지가 계신 교장실은 임시 어린이집이 되었다. --- 교장실에서 업무를 보시면서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 손을 잡고 교정을 산책하는 아버지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우리 아버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33쪽.
교장실이 어린이집이 되던 시간에서, 길가의 자전거를 치우는 순간까지, 이 책은 선함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지나 다음 사람의 태도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좁은 산책길을 방해하는 그 자전거를 길 가장자리에 세워두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있던 막내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어. 저 자전거를 우리 엄마가 치울 거라는 걸." 65쪽
대학을 졸업한 우리 막내딸이 그동안 받아온 상장 중에 가장 많은 것은 바로 '봉사상'이다. 66쪽.
교장실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길가의 자전거를 치우는 딸(작가)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다시 작가의 딸에게로. 이 책은 선함이 말이 아니라 생활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선한 영향력이란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누군가 곁에서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오래 지켜본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선량한 친정아버지와 힘겨운 시집살이의 대비는, 특정 인물을 평가하기보다 관계 안에서 버텨온 한 여성의 감정 지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우리는 종종 친정은 미화하고 시집은 비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한다. 작가는 어느 한쪽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 사람이 편안했던 자리와 버거웠던 자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이 대비는 사람의 좋고 나쁨보다도, 한 여자가 어디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어디에서 자신을 접어야 했는지를 말해주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야기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다는 하소연으로만 이어가지 않는다.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님의 최고의 장점은 집에 오신 손님에게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시는 거였다. 없는 살림에도 그 습관은 어머님의 평생 기쁨이셨는지 음식을 준비하시는 어머님의 얼굴은 늘 환했다. 어머니는 가시는 손님에게는 집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손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꺼내 쇼핑백에 담아주시곤 했다. 136쪽
작가는 진정으로 시어머님을 사랑하는 며느리다. 10년여 동안 주치의로 있는 병원장에게 작가는 진심을 털어놓는다. 어떠한 가식도 없다.
"원장님, 저 가슴이 너무 아파요. 한 여자의 한 많았던 일생이 이제 마무리되고 있어요. 단칸방에서 삼 남매 키우며 피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님의 삶을, 남편 사랑 한 번 받지 못하고 사셨던 한 여인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가여워서 자꾸 눈물만 나요." 161쪽.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한 여인의 삶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 사랑이었던 어머님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내 가슴속에 이렇게 살아계신다. 163쪽.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한다. 움직임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단한 물체가 움직여 '그리움'으로 기화되는 현상을 본다. 작가의 시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목화솜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뭉게 구름으로 작가 위에 언제나 둥실둥실 떠다닐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작가를 묘사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갈 작가의 모습은 바로 '베푸는 삶'이다.
IMF시절, 친정 쪽 먼 조카가 생계의 위협을 당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작가는 대출까지 받아서 자발적으로 조카를 도와줬다.
"나 수원 이모야. 힘들지? 돈을 좀 구했어. 입금할게. 뭐라도 시작해." 27쪽
신기하게도 남편은 도와준 그 금액의 두 배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아왔다. 얼마 후 딸아이의 학교에서 화재를 만나 도움이 필요한 가정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작가는 망설임없이 보너스 봉투에서 큰 돈을 꺼내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남편의 보너스 봉투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를 한 장 꺼내어 봉투에 넣어 다음날 학교에 가는 아이 가방에 넣으며 선생님께 잘 갖다드리라고 말했다. 27쪽.
이번에도 신기하게 남편은 지난 보너스의 두 배의 금액을 또 받아왔다. 베풂에 대한 하늘의 보상인가, '이 사람에게 주면 독식하지 않고 남에게 나누겠구나'하는 신의 신뢰인가.
아파트에서 열린 시장에서 백발의 할아버지를 보고 아버지가 생각나 선뜻 지갑을 연다.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 대신 장을 보러 나왔다고 하셨다. 나는 급하게 지갑을 열었다. 그 안에 만 원짜리 세 장이 들어있었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께 돈을 드리면서, 할아버지를 뵈니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러니, 이 돈으로 장 보시는데 보태시라고 했다. 63쪽
작가의 지갑은 거리에서 상추파는 할머니에게도 스르르 열린다.
"할머니, 이건 상춧값 만 원이에요. 그리고 이 봉투에 들어있는 10만원은요, 할머니 고기 사서 드세요. 건강하셔야 해요." 223쪽
다른 사람이 작가에 대해 칭송한 미담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잠시 멈칫했다. 베풂의 빈도나 크기보다, 그것을 기록한 마음의 이유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베풂을 글로 남기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 이런 베풂의 문장들은 자랑이라기보다, 작가가 자기 삶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미담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온 태도를 숨기지 않는 글로 이해한다. 작가의 그런 삶의 결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베풂을 스스로 말하는 일의 어색함까지 포함해, 이 책은 한 사람이 살아온 방식 전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중에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교사로서의 직장 생활, 지인들과의 관계, 작가 자녀들의 이야기 등 이 리뷰에 다 담지 못한 삶의 장면들이 더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과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아,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의 일상 곁을 따라온다.
책에 담긴 88개의 이야기는 크고 작은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선택해온 태도의 기록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곁에 두고 가끔 펼치게 되는 책으로 남는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읽는 사람의 삶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작가 채수아는 브런치 조회수 100만을 넘긴 인기 작가이다. 아동문예문학상 동시로 등단했다. MBC라디오 <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 출연했고, 팔로워 4만여명이 모인 SNS(브런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책의 띠지(book band)에 쓰여있는 것처럼 100만 유튜버 <책 읽기 좋은 날>의 강력 추천 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