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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20. 2024

MBTI에 관한 단상

필자의 MBIT는 INTJ이다.

근 몇 년 들어서 MBT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과도하다 못해 이제는 자신을 대표하는 또 다른 수식어가 된 것 같다. 이러한 MBTI의 선풍적 인기의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떠오른,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짤막하게 공유해 보려고 한다.


    MBTI는 인간의 성격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지표이다. 이러한 카테고리적 분류는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직 인간이 농경 사회에 접어들기 전, 즉 수렵채집 사회에서 살아갈 때에는 어떤 것이 식량으로써 가용한 지에 대한 정보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에는 달리 방법도 없기에 각자가 실험 대상이 되어서 발견한 모든 것을 직접 먹어서 판단해야 했을 것이다. 때로는 독이 있는 등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식량으로써 전혀 가치가 없는 것들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아주 맛있고 가용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면, 남는 것은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이다. 즉 어떤 것은 먹을 수 있고, 어떤 것은 먹을 수 없다는 정보가 고대인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일종의 분류 체계가 생겼으리라는 것이다. 미지의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먹어봄으로써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예컨대 사과를 발견한 원시인이 있다고 하자. 이 원시인은 마침 배가 고픈 참인데, 어제 한 친구가 이것과 비슷한 과일을 먹었더니 맛있었더라고 말한 기억을 떠올려서 먹어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렇듯, '사과를 발견했다-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가?-안전하다-먹는다'라는 일련의 과정에는 경험으로부터 만든 분류 체계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 안전한지,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기제로써 카테고리적 분류는 기능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까지 남아있고, 그러한 본능이 대중을 MBTI로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인류가 당장 내일 앞의 생존과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게 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찰나에 불과하다. 때문에 인간의 뇌가 그러한 생존을 위한 분류 메커니즘을 잊어버리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사람이 나에게 우호적인지, 혹은 위협이 되는 사람인지 단번에 판단하기란 어렵다. 때문에 뇌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얼른 판단하기를 원하고, MBTI가 그러한 오늘날의 분류 체계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컨대 '아, 이 사람은 MBTI가 XXXX이니까 이러이러한 사람일 거야. 나랑 잘 맞겠네. 친하게 지내야겠다. or 나랑은 잘 안 맞겠네. 거리를 둬야겠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대충 이런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 체계는 상당히 편리하고 판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위험한 측면 또한 있다. 생각보다 자연은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대로 생겨먹지 않다는 것은 여러 차례의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이 알게 된 교훈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는 좋은 음식들이 있고 반대로 입에는 달지만 건강에는 치명적인 음식들이 존재하듯이 인간의 성격 또한 16가지의 유형으로 바로 판단하기에는 세부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 마치 물건들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듯이 사람을 16가지 유형 중 하나의 부류로 인식하고 그 부류의 성질만 가질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어느 한 부류의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어떤 부류에 포함시킴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로 여김으로 일종의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는 장점도 있겠다. 그러나 수많은 개별적인 데이터를 무시한 채 사람을 집단으로만 나누고, 편을 가르고, 서로의 진영을 비방하는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 중 하나이다. '너 T야?'라는 밈이 유행하는 것도 (이젠 유행이 끝난 것 같긴 하다) 위와 같은 상황의 예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공격적이지 않고 단순 유머로만 소비되어서 다행이긴 하다. 


    이러한 구획화, 카테고리적 분류는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생존율을 높인 훌륭한 도구이지만 대상을 어느 한 부류에만 집어넣음으로써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지의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내리는 의사 결정의 과정에서 카테고리적 분류는 적절한 참고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최종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전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조망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단순 알고리즘에 의한 판단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점 중 하나가,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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