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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rewhyire Dec 02. 2021

최선을 다한 당신을 위한 위로

(이 글은 Coldplay의 Fix you라는 노래를 함께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


물은 99도가 아니라 100도에서 끓는다. 그러나 99도도 충분히 뜨겁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는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살면서 같이 밥 한 끼도 안 먹어본 그들의 의도를 내가 무슨 수로 알겠냐만은 시험을 잘 보려면 그래야 한다고 한다.

삶에서도 우리는 풀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을 만난다. 도대체 이런 삶의 문제들은 누가 내는 건지 가끔 허공에 대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라고 해서 처음부터 무조건 골을 아프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개 문제들은 처음에는 신선한 호기심 혹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어리지만 않다면 우리는 이런 신선한 설렘 앞에서도 대개 직감할 수 있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 설렘이 내미는 손을 잡을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지만, 잡는 사람은 성숙할수록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각오한다. 그 각오는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좋다'는 감정을 원동력 삼아 최선을 다해보고 나면, 그 과정보다는 때로는 내가 시도했다는 그 자체가 원인이 되어 어느샌가 결과가 주어진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말이다. 삶의 문제들은 대개 그럴 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너 최선을 다한 것 나도 알아. 하지만 그 방식은 아니었어"

참 맥 빠지는 말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안다면서 아니란다. 그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타이밍이었어야 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고지받지 못한 것도 같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를 푸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잔인할 때가 많다.


 그때 우리는 자칫하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을까. 내가 예전에 혹시 했던 그 말 때문이었는지 혹은 게으름을 피웠던 그날의 인과응보는 아닌지, 정말 그냥 나는 안 되는 건지 이미 닫힌 문 앞에 주저앉아서 말이다.


  삶에서의 실패를 되돌아볼 때 이러저러한 그럴싸한 실패의 이유를 나열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명확히 그게 문제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그때 우리는 그랬던 것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늘 그때가 하필 그랬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하는 게 그나마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을 능동적이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 족쇄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부족하고 못나도 무엇인가 반드시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운명의 잔인함을 대표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안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운명이 오이디푸스를 장성할 때까지 죽이지 않고 살게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듣고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양치기에게 주었던 테베의 라이오스 왕도, 아무리 신탁이 그렇다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기 영 찜찜하여 죽이지 못하고 발을 꿰어서 산의 나무에 매달아 놓은 양치기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발이 퉁퉁 불은 아이를 키운 코린토스 왕 부부도 이 아이를 '부은 발'이라는 비참한 이름을 붙여 키울 때도 이렇게 무럭무럭 자랄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정말 운명이었는지 혹은 우리가 모를 오이디푸스만의 살고자 하는 최선의 의지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 아이는 살아남았다.


 '모든 것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를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면서 거두었던 모든 성공이 다 우리의 능력과 전략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실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최선을 다했던 그때의 그 시절을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굿 윌 헌팅, 1997>

                       

 사실 운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최선을 다했었다는 그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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