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마법이다. 봄에는 무엇을 붙여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봄바람, 봄밤, 봄 소풍, 그리고 봄청소까지. 무엇을 해도 좋을 봄의 3월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봄 개학을 맞이했어야 할 큰 아이가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대 학생들이 정부의 의료개혁 방안에 반대하는 뜻으로 일제히 휴학계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개혁 방안으로 의대 입학 정원 2천 명을 늘이겠다는 정부와 필수의료분야와 공공의료정책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전공의들의 의견이 팽팽하다. 전국의 전공의들은 일제히 사직서를 제출한 채 병원을 나오고 현직 의사들도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인다. 의대 교수들까지 학생들의 편에 서겠다며 힘을 보태니 이 상황은 쉽게 진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봄이 소란스럽다.
세상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디에서나 갈등 상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양한 불협화음을 맞추며 살아가는 게 현대사회의 필수요건일지 모르겠다. 다만 어떤 자세로 갈등을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태도와 선택에 달려있다. 정부는 의료공백으로 인해 환자들의 피해가 크다며 전공의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겁박하지만 협상에 공을 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 2천 명 의대 증원과 공공의료, 필수진료 개선정책 요구의 대립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애먼 환자들의 고통은 커져가고 지켜보는 이들도 지쳐간다.
이 사태를 보면서 우습게도 육아의 추억이 떠올랐다. 초보 엄마가 겪은 육아의 힘든 점은 막무가내의 아이의 고집과 타협하는 일이었다. 아이의 의지와 대립할 때 강경책과 유화책 중 어떤 방법을 효과적으로 써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한 가지 결론을 쥐고 있었기에 과정은 힘들었고 결과도 실패로 끝나기 일쑤였다. 둘째 아이를 키울 때야 비로소 육아의 키워드는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에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 단계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서로의 결론이 비록 다르더라도 진의를 안다면 그 비슷한 지점에서 서로 타협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너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눈빛에 아이는 마음을 열어 표현했다. 말이 부족해도 마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키우는 일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자와 일상을 맞춰 나가면서, 직장 동료와 일하면서 함께 살아가려면 눈과 귀를 열어 박자를 맞추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쉼 없는 노력을 수십 년간 거쳐야 공자가 말하는 귀가 순해지는 나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단지 세월이 흐른다고 '이순'에 도달하는 게 아님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말이 중요하기에 주변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주장한다. 듣기 싫은 거친 소리엔 '입틀막'하고 외면하고 만다.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그의 말은 듣는 이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이제 막 의대 졸업을 한 아들을 둔 지인이 전화를 했다. 예정대로라면 인턴 교육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졸업생 동기 96명 중 삼십 명 넘게 전문의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병원에 취직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고된 전문의 과정을 거쳐서 전문적인 진료를 하는 것보다 급여가 많은 병원에 취직해서 일찍 돈을 벌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생각이 놀랍다. 힘들지만 생명을 살리는 소명의식을 요구하기에 의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힘든 일을 피하고 쉬운 일을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의대 증원을 2천 명을 한들, 3천 명을 한들 불균형한 의료 환경이 개선될지, 부족한 건강 보험 재원이 더 축나서 가난한 이들이 병원을 찾기에 문턱이 더 높아지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갈등의 골이 깊다. 사소하든 크든 다른 입장을 한데 모으는 일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진심의 대화 없이는 해결도 불가능하다. 갈등에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불순한 마음이 숨겨져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된다. 문제의 포인트와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어 지혜로운 해결은 안중에 없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동안 쌓여 있던 불신과 미움이 눈을 흐리게 하고 당장 닥쳐올 정치적 계산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 직진하게 만드는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된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과 국민을 위한다는 그 마음은 슬그머니 봄바람에 날아가 버린 건 아닐까.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말하던 쎙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생각한다. 보아 뱀이 삼킨 코끼리와 상자 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양을 상상하는 마음으로 갈등의 이면을 이해하면 좋겠다. 단지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내팽개쳤다는 현상만 보는 시선은 위험하다. 있는 힘을 다해 환자를 보던 전공의들이 거리로 나오는 행동엔 어떤 생각과 주장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개혁이 바꿔 놓을 우리의 가까운 의료미래를 상상해 봐야 한다.
마법 같은 봄은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다. 짧고 강렬하기에 아름다움이 허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 아지랑이처럼 날아가 버리는 이 순간에도 의사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정치적인 시계를 바라보며 앵무새의 말을 되풀이하는 무능력함에 환자도 보는 이들도 지쳐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봄은 짧고 돌아올 여름은 뜨겁고 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