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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me Feb 16. 2021

이탈리아로 떠난 엄마의 회갑 여행

- 7편 : 4일차 꽉차게 보낸 로마의 크리스마스 이브(오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성지 순례의 날입니다!


그리고 저의 탄신일이기도 했죠! 움하하!!!

남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길 때(정말 제가 태어날 때 눈이 왔다고 합니다!), 진통을 겪으시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신 어머니...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흐흫... 그렇게 태어나 장성한 딸이 어머니의 회갑과 산고의 고통의 날을 축하와 기쁨으로 드리나니 오늘을 즐겨주소서!!!


그리고 이번 여행 일정 중 가장 바쁜 날이었죠! 아침 일찍부터 카타콤베의 영어 투어시간을 맞춰 시내버스를 타고 로마 교외로 나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카타콤베는 로마에서의 색다른(?) 스케줄을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지인이 아마 다른 느낌의 로마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면서 추천해준 장소였습니다.


로마에서의 크리스마스이브 일정은 일단 요렇게 구성하고 떠났습니다.


1. 산 세바스찬의 카타콤베

2. 쿼바디스 도미노 성당에서의 주일 미사

-- 버스이동(30분?)--

3. 포로 로마노

4. 콜로세움

5. 판테온

6. 숙소


산 세바스찬의 카타콤베와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는 도보로 이동 가능할 정도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곳을 다 가서 투어를 하기엔 왠지 시간이 너무 오래걸릴 것 같고, 비슷한 설명을 들을 것 같아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는 산 세바스찬의 카타콤베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카타콤베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투어가 가능한데, 지하가 미로처럼 되어있어서 투어 프로그램으로만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길을 잘 아시는 카타콤베의 가이드님들을 따라가는 것이 여러가지로 좋을 듯 했지요! (기...길을 잃으면..호달달...)


카타콤베 투어 가이드 시간은 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catacombe.roma.it/it/orari.php



그러나 이날은 일정은 계획은 계획일 뿐 몹시도 하드코어하게 변해서 강행군을 수행했던 날로 기록이 됩니다.....




밥을 평소보다 조금 느긋하게 먹고 숙소에서 나온(그래봤자 오전 8시 30분) 저와 엄마는 옥타비아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산지오반니역에서 내려 218번 버스로 환승해 Fosse Adreatine 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버스로 환승할 때 버스티켓을 담배가게에서 사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어딘지 몰라서 두리번두리번 거린 것을 빼면 방송 잘 듣고 버스 안내판을 잘 보면서 어렵지 않게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딱! 내리면 바로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는데, 우리가 가려던 산 세바스찬 카타콤베는 분명 이 근처인데 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오묘한 상황에 직면하여 다시 길을 돌아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 향했습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도 타이밍 좋게 영어 가이드 투어 시간이 맞아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가이드님과 핍박을 받은 자들의 지하도시, 카타콤베로 내려갔습니다.





카타콤베로 내려가는 길은 막 그렇게 경사가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컴컴하지도 않아서 적당히 무섭지 않게 투어를 할 수 있었는데 10명 남짓의 인원이고, 가이드님의 목소리가 지하동굴의 벽을 치고 울려서 딱히 이어폰을 끼거나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카타콤베는 성지이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할 수 없어, 내부 사진이 없습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교황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다섯명의 교황님의 시신을 이곳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시신이 뭍혀있던 방을 가면 그리스어로 '순교자' 등의 낱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히 얇고 네모난 칸에 시신을 입관(?)했다면, 그 중에서도 돈이 많았던 사람들의 시신을 안치한 곳은 나름대로 장식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안에서도 미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예배당이 꾸며져 있었는데, 그 예배당의 저 높은 천장에서는 햇빛이 내려와서 어둡고 움울한 박해자들의 지하도시에도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볼 수 있었죠.


저는 카타콤베의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를 엄마에게 통역을 해 드렸는데(사실 성인들의 이름을 잘 몰라서 다 빼먹음) 오히려 엄마가 성인들의 이름과 같은 기독교 지식이 더 많으셔서 나중엔 "괜찮아, 대충 다 알아들어."라고 말씀하셔서 통역 포기하였습니다.


카타콤베 투어는 카타콤베를 들어갔다가 나와서 잠시 빙 둘러서서 가이드님이 밑에서 다 설명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투어와 동일하게 이 가이드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시고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죠. 가이드님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무슨 나무인가를 가리키셨는데(기억이 가물가물) 카타콤베는 거기까지 지하로 쭉 이어져 있다며, 굉장히 엄청 넓은 구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질의응답 시간에 엄마께서는 "여기 안에 무덤이 몇 개나 있는지 여쭤봐."라고 하셔서 물었더니 약 100만개 이상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어서 종교적 차별 등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종교 박해가 있었던 곳에 와서 이야기를 듣고 배우니 정말 종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느꼈습니다.




카타콤베에서 쿼바디스 도미노 성당으로 가는 길. 진짜 사이프러스 나무와 새파란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카타콤베 투어를 마치고 예쁜 사이프러스 사잇길을 지나 '쿼바디스 도미노'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물었다는 바로 그 성당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길 중 하나인 아피아 가도 중간에 있는 아주 작은 성당인데 마침 저희가 도착했을 때 미사 중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은 우리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전세계 미사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엄마는 한국어로 성서를 낭송하시기도 하면서 미사를 드리셨습니다. 성찬식도 천주교 세례를 받지 않은 저는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고(tmi : 기독교 세례는 받았습니다.) 엄마는 성찬식에 참여하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받으셨죠.


그리고 미사가 다 끝나고 아주 작은 성당 답게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이방인인 우리에게 그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몇몇 분이 오셔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셨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북쪽이냐 남쪽이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래서 'Sud'라고 하니까 오오 그렇냐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는 상호간 영어가 짧아 이만 안녕히(예의)...




제대로 로마 제국 물씬인 포로 로마노
대전차 경기장(좌) 대욕탕 뒷쪽(우)

로마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포로 로마노'였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노 성당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바로 포로 로마노의 대욕장 근처로 내릴 수 있어서 다음 행선지는 그 쪽으로 향했죠.


포로 로마노는 우리나라의 광화문 일대의 '육조거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고대 로마의 정치행정의 중심거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이긴 했지만, 버스가 너무 딱- 그 앞에 데려다 주는 바람에 주변에 식당도 없어 일단 이 일대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곳은 콜로세움과 개선문의 반대편이어서 상가건물은 없었어요)

엄마가 좋아한 포로 로마노 근처의 홀로 우뚝 선 나무. 감정이입이 되었다고 하셨다.

고대 로마의 거리 전체가 발굴 및 복원이 잘 되어 있어서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그 장소이지만, 엄마는 대욕탕과 전차 경주장까지만 가시더니 큰 흥미를 못 느끼시더라구요. 저는 그 동네 좋아해(5월에 찍은 포로 로마노 사진으로 기념품을 만들어서 주변인들에게 뿌린 자) 포로 로마노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엄마에게 "엄마 저건 무슨 신전! 엄마 저기가 카이사르 화장터!" 이렇게 설명했는데, 엄마는 노 흥미. 그나마 흥겨워 하셨던 것은 사람 안 무서워 하고 당당히 서 있는 갈매기였습니다.


사람 안 무서워하는 세상 당당한 갈매기(근엄). 사람들 다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 사진을 쾅쾅 찍음ㅋㅋㅋㅋㅋ

알고 보니 엄마는 콜로세움을 매우 기대하고 계셔서 '난 여긴 모르겠고, 얼른 콜로세움! 저기 보이는 콜로세움!! 얼른 콜로세우우우우우움!!!!!' 모드 셨던 거죠.


그래서 저와 엄마는 포로 로마노의 거리를 걷기 보다는 콜로세움으로 향해 그 장엄하고도 멋진 광경을 만끽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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