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는 컴퓨터지만 컴퓨터가 아니다.
iPad Pro에 드디어 M1이 들어간다.
맞다, MacBook Air에 들어간 그 칩이다. 다른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iPad에 M1이 들어가니 마니, 이게 엄청나게 좋은 칩이니 하면서 귀에 피가 나도록 말을 했을 것 같으니까, 필자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사실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약 한 달 전에 애플 이벤트를 보면서 비록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을 쓰진 못했지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괴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M1을 MacBook 라인업도 아니고 iOS를 탑재한 iPad에? 이건 애플이 작정하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애플의 칩 설계 능력을 과소평가한 걸 지도 모르겠다.
"What's a computer?"(컴퓨터가 뭐예요?) 광고 이후 애플은 전례 없는 욕을 먹었다. 광고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아이들이 iPad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와 iPad의 차이점을 잘 모른다는 것. 즉, iPad는 컴퓨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컴퓨터'로써 작동할 수 있는 기기라는 것을 암시하는 광고다.
아쉽지만 당시에 iPad는 이러한 과감한 주장을 할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iOS의 제약성은 지금보다 심각했고, iPad Pro의 성능은 컴퓨터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물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애플이 어떠한 빅픽쳐를 내다보고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에 대한 윤곽이 그려진다.
애플은 iPad를 컴퓨터 패러다임의 신세대라고 보고 있다. 더 앞서 나가서, 애플은 전문적인 작업으로 맥을 요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휴대폰으로 모든 작업을 처리하기는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이 모두 iPad를 구매하길 원할 것이다.
이러한 애플의 근거에는 여러 가지 논리적인 뒷받침이 존재한다. PC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Windows와 Mac은 수많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실상 일반적인 유저들이 사용하는 기능은 정말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하여 일반인들이 요구하는 간단한 기능은 난해하며 난잡하기 짝이 없다.
프린터에서 문서를 출력하기 위해서 설정에 들어가서 연결을 시도해보고, 안되면 제조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무선으로 연결이 안 되면 직접 연결을 해서 드라이버를 잡는지 확인하고.. 등등 이게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할법한 작업인가? 그에 반하여 iPad에서 프린터를 연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프린트를 누르고, 와이파이에 있는 프린터를 선택하면 끝이다. 드라이버도, 연결과정도 없다.
물론 "AirPrint를 지원하지 않는 프린터를 사용하면 어쩔 건데요?"라고 반론할 수는 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애플은 이 폐쇄성을 장점으로 보고 있다. 만약 충분한 기기의 수가 애플 이코시스템을 최종적으로 지원한다면, 엔드유저는 결론적으로 큰 문제없이 모든 것을 원터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이에 도달할 수 있다면 애플은 유저를 자사 이코시스템에 가둬놓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를 얻게 된다.
AirPrint, AirDrop, AirPlay 이 모든 기능이 단순 유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나왔지만, 그 뒤에는 더 큰 뜻이 품어져 있다. 그리고 iPad는 이러한 기능을 최고로 가장 잘 활용하는 차세대 플랫폼인 것이다. 애플만을 위한, 애플이 만든 가장 잘 가꾸어진 정원.
앞서 언급한 "What's a Computer?" 광고를 애플이 선보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iPad가 컴퓨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폐쇄성이었다. 가장 간결한 단어로 말하자면, iPad는 컴퓨터와 같은 자유가 없다는 것.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바로 다운로드하여서 설치하는 자유, 내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부족한 부분을 플러그인을 통하여 기능을 추가하는 자유, 내가 커널 단위까지 내려가서 내 입맛대로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자유. 이 모든 것이 iPad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요구하는 기능이 최대한 간결하고 정돈된 형태로 구현되려면 자유도는 침해될 수밖에 없다.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앱을 내려가는 구조에서 인터넷에 있는 앱을 맘대로 설치하는 구조로 가버리면 보안이 취약해지고, 간단한 문서 작업에서 복잡한 서식이나 프로그래밍을 추가하는 기능을 추가해버리면 앱은 무거워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어디까지 복잡해지고, 어디까지 간결하게 하는가가 iPad의 미래 포지션을 결정짓는다. 이미 PC 시장은 대중화가 된 지 30년에 가까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PC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며, 돈을 벌고, 생계를 의지한다. 애플이 바라보는 iPad의 포지션은 이들이 Mac을 버리고 iPad로 갈아타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iPad를 산다면 Mac과 iPad를 둘 다 소유하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이 말한 "What's a Computer?"의 의미는 뭘까? 애플이 iPad가 컴퓨터 시장을 잠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iPad가 컴퓨터를 능가하는 능력을 갖춘 기기라니.. 뭔 개소린가 싶을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애플은 iPad가 컴퓨터를 통하여 전문적인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컴퓨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컴퓨터로 각인되길 바란다. 그것도 일반적인 컴퓨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차세대 컴퓨터로. iPhone에 가까운 컴퓨터로.
"어디까지 복잡해지고, 어디까지 간결하게 하는가"가 iPad의 포지션을 결정한다면, 애플은 어떠한 결정을 내릴까? MacBook에 탑재된 M1을 iPad Pro에 그대로 탑재하는 것을 본다면 애플이 당장 iPad에 MacOS를 구동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이유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애플이 iPadOS에서 외부 앱 설치를 허용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애플이 병적으로 집착하는 앱스토어는 사용자들이 절대로 외부 앱을 설치하여 애플이 자신들이 만든 정원에 대한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게 현 포트나이트, 스포티파이, 타일간의 법적 분쟁의 근거기도 하다)
iPadOS의 시스템 내부에 접근하는 것도 막을 것이다. 시스템 내부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앱스토어 규정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개선할까? 아마 UI와 UX를 개선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
현재 iPadOS는 비록 이름은 iOS와 분리되어 별도의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같은 버전이다. 기능 업데이트도 동시에 추가가 되고, iPadOS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아마 이런 부분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가장 대표적으론 멀티태스킹에 대한 부분이 개선될 것이고, 현재 화면이 큰 iOS 수준에 머물러 있는 UX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이게 필자가 생각하는 제일 현실적인 개선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iPad는 절대로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작업을 하라고 Mac을 버리고 iPad를 사라는 식의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Mac의 훌륭한 보조기구가 되는 방향성의 업데이트를 추진할 것이다.
Xcode가 iPad에 안 들어오고, Adobe가 illustrator와 Photoshop은 iPad용 앱을 출시해도 AfterEffect와 Premiere를 출시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물론 Finalcut이나 Premiere는 루마퓨전을 보더라도 미래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만, 아직까진 미지수다.
당장 M1의 모든 성능을 끌어 쓰는 앱이 나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애플은 iPad를 Mac과는 다르게 하드웨어적인 성능 제한으로 급을 두고 싶어 하지 아니한다. 최소한 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앱을 설치할 때 "2019년 이후 출시된 iPad부터 사용 가능"과 같은 문구를 표기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로 하위 호환을 하기 위해선 적정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주에 진행되는 WWDC에서 애플이 어떠한 변화점을 내놓을지 매우 기대가 되지만, 또 너무 기대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iPadOS의 근간을 뿌리 뽑을 수준의 대격변은 없을 것이다. 단, 현재 가지고 있는 애로사항을 긁어주는 수준의 업데이트는 이루어질 것으로 관망한다.
나는 아이패드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나의 최근 6년간의 모든 학업은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고, 나에게 있어서 아이패드는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컴퓨터가 되었다. 이를 어디까지 더 확장해줄지는 애플에게 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