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제나 당신 곁에 - 아이팟 역사
한때 애플의 성공을 견인해준 iPod의 신화는 2022년 05월 11일에 막을 내렸다. iPod은 애플이 파산 위기를 버티게 해 준 가장 큰 버팀목으로써 성공의 기보를 아이폰까지 연결시켜준 매우 상징적인 제품이기에 iPod의 단종 소식은 더더욱 그 의미가 크다.
1,000 songs in your pocket.
2001년 10월에 출시된 애플의 첫 번째 iPod은 당시 5GB에 달하는 HDD를 탑재하여 1000곡에 달하는 노래를 넣을 수 있었다. iPod의 상징성과도 같은 옆으로 돌아가는 물리적인 휠과 애플의 컴퓨터 라인업 Mac과의 연결성을 강화하고자 탑재한 Firewire가 강조되는 등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전면을 흰색 마감으로 깔끔하게 처리했고, 후면에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애플의 상징적인 디자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꽤나 오랫동안 유지되어 iPhone 3GS까지 명맥이 이어진다. "Simple is the best"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평가받으며 타사 포터플 MP3 플레이어와 차별화에 성공하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듬해에 출시된 2세대 iPod에서 물리적인 휠 대신 터치형 휠로 변경되는 소소한 변화가 생겼으며 거의 동일한 디자인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Storage 용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변화점으로 3세대의 슬로건이 1세대의 1000곡에서 "7,500 songs in your pocket." (당신의 주머니 속 7500곡)으로 변경된 것을 볼 수 있다.
3세대부터 기존에 있던 4가지 버튼 (이전 곡, 메뉴, 재생/멈춤, 다음 곡)이 휠 상단으로 이동했으며 애플도 이를 심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세대에서 디자인이 변경됐다.
4세대에서는 버튼이 모두 휠로 들어갔으며, 이로써 휠은 터치 제스처를 통한 스크롤과 물리적인 클릭이 되는 iPod의 완전한 상징체로 자리 잡았다. 4세대는 일반 모델과 Photo모델 2가지로 나뉘며 일반 모델에는 흑백 백 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했고 Photo 모델은 컬러 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하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저장매체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하여 iPod 5세대부터는 디스플레이뿐만이 아닌 본체의 얇기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비디오 재생을 위해 모든 모델에서 컬러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을 물론,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블랙 컬러 모델을 출시하는 등 5세대를 기점으로 더 많은 iPod 모델이 출시됐다.
더 많은 iPod가 출시되면서 시리즈의 다변화가 이루어졌지만, 6세대부터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기존 명칭을 iPod Classic으로 변경했다. Classic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애플이 더 이상 iPod Classic 라인업에 대대적인 변화를 줄 생각이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포터블 MP3 플레이어 시장 자체가 과도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도 이 당시 모토로라와 협업하여 iPod 기능을 넣은 Motorola ROKR를 출시하는 등 휴대폰 시장이 iPod 시장 자체를 잠식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물론 Motorola ROKR가 기대와는 다르게 처참한 실패를 맛봤고 이는 차후에 애플이 iPhone 개발을 착수하는 계기중 하나가 된다.
Mini. The next big thing.
2004년에 출시된 iPod mini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목적을 가지고 탄생했다.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작은 iPod'을 만드는 것. 비록 iPod mini 라인업 자체는 2세대를 채 지나지 못하고 단종되었지만, '작은 iPod'을 만들겠다는 목적은 iPod Nano까지 이어졌다.
청바지에 있는 작은 주머니가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Coin-Pocket에서 iPod Nano를 꺼내 드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스티브 잡스의 전설적인 제품 발표 중 하나로 회자된다.
2006년에 등장한 iPod Nano 2세대는 1세대에서 마감의 변화와 색상 추가를 선보인 제품이다. 제품의 옆면이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과감한 색상 선택으로 산뜻한 느낌을 내었다. 개인적으론 이때의 디자인을 참고하여 제작한 iPhone도 한 번쯤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iPod Nano의 가장 큰 실수는 3세대에서 발생했다. 이 당시에는 MP3 플레이어들이 각종 기능을 넣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단언컨대 뮤직비디오 재생은 최신 문물과도 같은 기능이었다. 유튜브는 아직까지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었고 영상 스트리밍이 원활할 정도로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기도 전이였다.
이 당시 애플은 iPod Nano에 가로로 널찍한 화면을 넣기 위해 제품의 넓이를 넓혔고, Nano라고 부르기엔 아쉬운 제품이 탄생했다. 영상 시청이 주류 문화로 자리 잡는다는 선견지명은 옳았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난 비운의 제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iTunes에서 영상을 다운받아서 넣는 게 그다지 매끄러운 경험도 아녔거니와 그렇다고 화면이 영상을 시청할 만큼 크지도 않았다. 노래만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체의 사이즈가 컸고, 영상을 보자니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전형적인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친 제품이라고 생각된다.
iPod Classic이 5세대를 기점으로 디자인 정체성이 뚜렷해졌다면, iPod Nano도 4세대를 기점으로 디자인이 무르익었다고 평가한다. Nano라는 이름에 맞게 다시 본체가 작아졌으며, iPod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품이다.
5세대에서 카메라가 추가 되는 등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에는 더 이상 차별화가 있지 않았고 마이너 한 변화와 실험적인 기능만 추가되고 빠지는 등 사실상 iPod Nano의 명맥도 4세대 이후부턴 감소했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첫 번째 iPhone의 등장 이후부턴 iPod 라인업이 필연적으로 하락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한때 애플을 견인하던 iPod 시리즈는 이때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6세대부터는 기존 iPod Nano의 디자인 정체성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으며, iPhone을 통해 습득한 터치스크린을 적극 활용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iPod Nano는 7세대를 마지막으로 단종됐다.
Life is random.
2005년에 출시된 iPod shuffle 1세대는 MP3 플레이어라기보단 USB에 가까운 디자인을 보였다. 노래 랜덤 재생을 제외한 큰 기능은 없었으며 현재 재생 중인 노래를 알려주는 디스플레이조차 넣어주지 않았다. MP3 플레이어에서 어디까지가 필수적이고 어디까지가 부가적인 요소인지를 실험한 라인업이라고 생각된다.
2세대에서는 제품의 사이즈를 절반 넘게 줄였으며 어디에든 쉽게 걸어놓도록 제품 후면에 벨트 클립을 추가했다.
2009년에는 3세대 iPod shuffle이 추가되면서 본체에서 노래를 컨트롤하는 버튼 자체가 사라졌다. 이를 대체하고자 이어폰 케이블을 통한 컨트롤을 하도록 장려했으나 기본으로 제공하는 이어폰이 아니면 기기를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짐에 따라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었다는 평이 많았다.
애플도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인정하고 1년 만에 디자인을 롤백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iPod Nano 6세대와도 디자인을 공유할 정도로 완성형에 가까운 디자인이었으며, 실제로 iPod shuffle이 단종되는 2017년까지 별다른 디자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Touch comes to iPod
터치, 아이팟에 도달하다
2007년은 애플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해였다. 스마트폰의 역사를 뒤바꾼 아이폰이 처음으로 등장한 년도이기도 하며, 전 세계에 애플이라는 기업을 소비자들에게 처음으로 각인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iPod Touch는 그 전설적인 1세대 iPhone과 같이 등장한 제품이다.
당시 아이폰의 높은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에게 대안으로써 출시된 제품이었는데, 이는 여태까지 iPod가 노래를 듣는데 국한된 제품이었음을 감안할 때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음악 감상을 뛰어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탄생한 제품이기도 하다.
1세대 iPod Classic처럼 후면은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소재로 마감 처리되었으며, 이는 4세대까지 유지되었다. 3세대까지 거의 변화가 없던 iPod Touch는 4세대에서 FaceTime을 위한 전면 카메라가 추가되었으며, 화이트 색상 모델이 추가되는 마이너 한 변화를 겪었다.
5세대에는 대대적인 디자인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iPod Touch 라인업에선 처음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추가함과 동시에 본체가 얇아졌고 디스플레이가 커졌다. 개인적으론 iPod 라인업을 통틀어서 가장 애정이 남는 제품이기도 하다.
애플은 5세대는 기점으로 iPod Touch에도 큰 디자인 변화를 주지 않았다. 2017년에 출시된 6세대에선 본체 하단 좌측에 위치한 고리를 거는 훅이 사라졌으며, 2019년에 칩셋을 업그레이드하는 등이 소소한 변화만 거듭하다가 최종적으로 2022년 05월 11일에 더 이상의 제품 판매를 진행하지 않음을 발표했다.
애플의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한 그리고 한 시대를 대표하던 기념비적인 라인업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비록 iPod의 찬란한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만, 음악은 언제나 당신 곁에.
21년간의 iPod를 추억하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