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가 한국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수수료 때문일까?
2014년에 처음으로 공개된 애플 페이는 무려 8년 동안 한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서양권 국가부터 남아프리카, 이스라엘, 페루, 그리고 말레이시아까지 총 74개국에 진출한 서비스가 무엇을 연유로 대한민국에는 진출하지 못한 걸까?
스마트폰을 통한 결제 방식은 다양하다. QR코드를 스캔해서 결제하는 QR페이, 삼성이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마그네틱 펄스를 통한 MST, 그리고 VISA, 마스터카드와 같은 기존 카드사들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EMV( 엄연히 따지면 EMV라는 명칭은 EMVco가 내세우는 표준 결제 규격중 하나고, 정식명칭은 EMV Contactless로 칭한다. 글에선 편의상 EMV로 작성한다). 이 중에서 애플은 EMV를, 삼성 페이는 MST와 EMV를 동시에 사용한다.
EMV 규격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에 앞서 QR페이에 대한 내용을 살짝 짚고 가자. QR페이 결제는 중국의 알리바바 그룹에서 내놓은 알리페이와 한국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채팅앱인 Wechat Pay의 성공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는 새로운 결제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네이버 페이, 카카오페이와 같은 서비스가 QR 결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QR페이의 장점은 (이론적으로) 초기 투자비가 0에 수렴한다는 것인데, 카카오페이를 써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가계에서는 결제용 QR만 프린트해놓고 고객이 알아서 스캔해서 돈을 송금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초창기에 알리페이와 위챗 페이를 악용한 고객이 조작한 송금 완료 이미지를 보여주고 물건을 가져가는 사기행각에 성공하여 시스템적인 보완이 필요했다.
특정인이 결제를 할 때마다 가계에 있는 기기에서 송금내역을 확인해주는 것인데, 결국 이런 식으로 가계도 소비자도 결제 단말을 보유해야 된다면 이론상의 투자비 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이는 소비자가 스캔하는 방식이 아닌 가게 측에서 소비자의 QR를 스캔하는 방법도 동일한 문제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결국 QR페이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의 환경적인 요인과 인프라 부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미 카드 결제망을 충분히 갖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QR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타당성은 솔직히 필자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심심하면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이유는 iOS의 악명 높은 NFC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결제 규격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EMV와 MST는 기존의 카드 터미널을 재해석한 결제 방법이다. 즉 애당초 가게 측 카드 터미널을 상정하고 만든 규격이며 QR페이와는 다르게 은행권과 카드사의 입김이 계속 작용한다는 본질적인 시스템 차이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삼성 페이가 사용하는 MST 결제 방식은 신용카드 뒤에 있는 마그네틱 스트랩을 긁을 때 카드의 정보를 읽는 원리를 이용하여 스마트폰이 인위적으로 마그네틱 펄스를 방출하여 카드 터미널이 카드를 읽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다만 (MST) 마그네틱 시스템 자체가 연식이 꽤 된 만큼 위변조, 복사가 간단하고 보안이 취약하며 근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결제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 한국에서는 카드를 사용할 때 긁는 것보다 꼽으라고 하는 것이다. 단, 오해의 소지를 풀자면 삼성 페이의 자체적인 보안을 통해 삼성 페이는 마그네틱 결제 방식을 사용함에도 안전성은 실물 카드를 긁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삼성 페이가 EMV와 MST를 동시에 지원하기에 카드 터미널에서 EMV를 지원하지 않더라도 카드를 긁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용이 가능한 거고, 애플 페이가 새로운 카드 터미널을 필요로 하는 이유 또한 EMV 규격만을 지원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그네틱 스트랩이 1세대라고 한다면, 꽂아서 결제하는 IC칩은 2세대, EMV 결제방식은 3세대 규격이라고 할 수 있다. EMV는 업계 표준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범용적이며 VISA, MasterCard가 속해있는 EMVCo가 강하게 추진하는 규격이기도 하다.
EMV를 지원하는 실물 카드는 EMV를 지원하는 카드 터미널에서 꼽거나 긁을 필요 없이 교통카드처럼 갖다 대면 결제가 완료된다. 그리고 애플 페이는 이러한 EMV 규격을 활용하여 스마트폰(아이폰)을 통해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선후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야 차후 본 글에서 서술할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MST) 마그네틱 스트랩을 1세대로 표현했다면, 모든 오래된 기술이 그러하듯 도태되면서 사라진다. 가장 큰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MST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카드 터미널을 만드는 회사들은 이제 MST기능을 제거한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더 쉽게 풀이하자면 카드를 긁는 곳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MST를 빼는 대신 카드 터미널에 QR페이를 받을 수 있도록 카메라 센서를 넣는 추세다.
EMV가 어차피 차세대 규격으로 모두가 사용해야 되는 (외국의 경우 사용하는) 규격이라면, 그리고 MST는 보안적으로도, 규모적으로도,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사장되는 결제 방식이라면 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삼성도 미국판 삼성 페이를 시작으로 MST 결제 지원을 중단했으며, 더 많은 국가에서 MST 결제 옵션을 제거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외국에서 몇 년 전부터 실물 카드의 MST 결제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때 한국은 삼성 페이만을 맹신하며 MST결제를 제시간에 막지 못했다. 마스터카드는 2024년부터 카드 뒤에 마그네틱 스트랩 자체를 없앨 예정이며, 으레 그렇듯 Active X가 금지될 때까지 붙들고 매달린 것처럼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술이 도태될 때까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도 MST 기술이 한국에서 만큼은 끝까지 유지되는 게 좋다. 젊은 층의 아이폰 사용률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올라온 지금 한국에 애플페이 진출은 삼성에게 치명적으로 나쁜 소식일 것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따르면 18~29세까지의 설문 응답자 중 53%는 아이폰을 이용했다. 애플 페이에 대한 염원이 한국에서 이토록 강한 이유는 아이폰 사용자 대다수가 젊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보급 안 했고, 할 의지도 없다. 최근에는 좀 보급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없다. EMV 규격이 마그네틱과 Chip 규격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보급돼야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최소한 지금의 상황으로썬 맥도널드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보는 게 전부다.
가끔은 구관이 명관이라지만 MST가 명관인가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진행될 필요가 있다. 보안적으로도 취약하고 안정성도 떨어지며, 편의성도 부족하다. 특히 국제 카드 연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 카드사가 EMV 터미널을 여태까지 보급하지 않았더라도 퀀텀점프로 이어질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EMV 규격에 대한 퀀텀점프를 논하기엔 최소 10년 이후의 일이다. 그때까지 카드를 꼽으면서 삼성 페이만 지원하는 MST를 유지할 셈인가?
자체적인 컨택 레스 규격에 대한 설립도 매우 늦은 편에 속하면서 국제적으로 신용되는 규격을 도입하려는 의지조차 의심된다. 일본은 펠리카, 호주 및 뉴질랜드는 eftpos, 유럽은 Europay 등 타 국가에서 미리 수수료 회피를 위한 자체적인 규격을 내놨을 때도 한국은 대비하지 않았으며 JustTouch는 무산되고 KLSC는 아직 첫발을 띄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 페이가 EMV 수수료를 요구해서 국내 도입이 어렵다는 건 카드사의 변명에 가깝게 느껴진다. EMV 규격 자체를 국내 카드사가 안일하게 대응해놓고 외국 기준을 쓰자니 수수료가 부담되고, 그렇다고 국내에서 이미 통용된 자체적인 규격은 없다는 게 현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표현이 아닐까?
애플이 카드사에 요구한 수수료에 대한 낭설은 난무하고 기사는 자극적으로 작성된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인데 74개국에 진출한 서비스가 대한민국에서만 수수료가 높아서 진출을 못할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그 많은 국가에 서비스를 진출할 동안 한국에 진출하지 못했더라면 원인은 애플보단 국내 기업에 존재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성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수료로 인해서 애플페이가 한국에 진출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있다. 실제로 애플페이를 통한 애플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0.0n%라고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수수료는 국제 EMV 규격을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금액이다. 애당초 한국이 일본, 호주, 싱가포르,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처럼 자체 EMV 규격을 설립했다면 이러한 수수료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
한국에서 여러 번 진출을 시도한 Uber는 끝내 SKT와 손잡고 '우티'라는 새로운 합작 브랜드를 만들었고, 구글의 지도 서비스인 구글 맵스는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예시가 증명하듯 한국은 외국 기업들에게 쉬운 시장도, 그다지 달가운 시장도 아니다.
각종 규제로 많은 걸림돌이 존재하면서도 막상 진출을 하면 내수 기업이 금방 비슷한 아이디어로 매우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하는 경우가 이제는 허다하다 못해 정석적인 루트처럼 비친다. 네이버 지도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구글 지도와 UI와 UX가 유사하며, 앞서 언급한 Uber와의 관계도 비슷한 사례 중 하나다.
외국 서비스의 진출을 막고 국내 기업이 그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는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 아닌가? Uber의 중국 진출 이후 DiDi가, 구글 퇴출 이후의 Baidu가, 갤럭시의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 이후에 중국산 폴더블 스마트폰에 대한 노골적인 리베이트까지.
과연 한국은 다른가? 한국은 과연 떳떳하게 외국 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권리를 보장해주는가? 외국 서비스의 진출을 막고 내수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면 내수 서비스가 외국 서비스와 경쟁을 하여 보완하게 허용하는가? 필자가 경험한 한국의 IT 업계는 중국과 작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 서비스가 만능이고 한국 기업을 보호하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한국이 보여주는 모습은 중국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경쟁의 씨를 잘라버리고, 서비스 개선에 대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발전은 둔화되고, 국내 기업은 발전 없이 독과점을 이룬다.
과연 애플페이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게 애플 탓일까?
오히려 74개국에 문제없이 진출한 서비스가 한국에 진출을 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기형적인 환경을 탓하는 것이 더 타당성 있는 주장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