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티나무 Jan 13. 2022

새 집 이삿날, 새하얀 신발장에 낙서를 해놓은 아빠

외계인과 37년을 같이 사는 여인은 누구인가?

아빠의 독특한 자녀교육관과 특별한 자녀교육법에 대해 글을 집필하기 시작했지만, 이쯤 되면 아마 엄마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이 있을 거예요. 


아빠의 그 특이한 행동과 사고를 모두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쪽은 엄마였으니까요.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매년 극기훈련을 하는 남편, 볼링장에 가서 아들들에게 팔 굽혀 펴기를 시키는 남편,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는 남편. 2차 성징에 도래한 아들들에게 자위행위와 성에 대해 설파를 하는 남편 등 기본 상식과 개념에는 어긋나는 돌발 행동 때문에 엄마도 적지 않게 곤욕을 치렀을 것이라 생각해요. 


사실 아빠의 기괴하면서 독특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이해와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아빠가 독특한 발상과 사고를 하여 자녀교육을 하고 싶다 한들, 엄마의 동의와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아빠는 30대 중반에 3층 전원주택을 직접 디자인하여 신축했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특히 얼마나 좋았겠어요. 건축가 남편이 애정을 갖고 지은 3층 집에 생애 첫 내 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너무 좋죠. 


새집에 이사를 하고 다음날 일어나서 엄마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현관 신발장에 엄청 큰 낙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거예요. 분명 어제 이삿날까지만 해도 없었던 낙서였어요. 



알고 보니, 그 낙서는 실제로는 낙서가 아니라 아빠의 사인이었어요. 아빠도 새집에 본인이 스스로 건축한 집에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는지 간밤에 신발장에 색깔이 들어가 있는 실타래를 사용해서 본드로 접착하여 사인을 완성했던 겁니다. 그것도 새하얀 신발장에 다가요. 


참, 이 사태를 보고 가만히 있을 아내가 있을까요? 


아빠는 그 정도로 독특한 사고를 했어요. 



저희 삼남매는 자연스레 아빠, 엄마 간의 부부사랑을 보고 성장했어요. 굳이, 부모님은 자고란 부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하는 거야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행동으로 보여주었어요. 


아빠는 운전을 하면 늘 엄마를 옆자리 조수석에 태우고 손을 꼭 잡았어요. 우리 삼남매 앞에서 포옹이나 뽀뽀는 거리낌 없이 했어요. 아빠가 회사생활 하면서 타지 근무를 오래 한 적이 있는데, 자연스레 주말부부가 되었지요. 아빠가 토요일 퇴근해서 집에 오면 항상 엄마를 진하게 안아주었어요. 엄마는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서도 모든 스킨십에 응해주었어요. 


나는 다른 집의 부모님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하는 줄 알았어요. 어린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보고 자란 환경이 모든 세상을 대변한다고 착각을 하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주위 친구들의 부모님이나 다른 부부들을 보면 스킨십을 하는 부부가 적었어요. 


아빠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매우 자주 했었어요. 


식사를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저녁에 술 한잔을 하고 나서도 엄마와 우리들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아들아,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말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조심해야 해. 그리고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해 줘야 해.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내 마음을 모른단다"


우리 삼남매는 자연스럽게 부부사랑이 무엇인지 아빠, 엄마를 보며 성장했어요. 





아무리 주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어도 아빠, 엄마는 부부싸움을 했어요. 여느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언행으로 시작되는 부부싸움이었죠. 어렸을 때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왜 다 큰 어른들이 이런 사소한 것으로 싸우지? 한 명이 양보하거나 이해해 주면 좋을 텐데'

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물론, 결혼 10년 차가 된 저도 부부싸움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해요. 그리고 그때 아빠,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제 어느덧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부부싸움을 열정적으로 하고 나면 아빠만의 행하는 의식이 있었어요. 우선 아빠는 부부싸움을 한바탕 하고 나서 항상 옥상에 올라갔어요. 옥상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키우고 있는 식물들과 앞에 경치를 보며 마음을 헤아렸어요. 


또한, 부부싸움 후에는 항상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아들아, 아빠는 엄마를 정말로 너무 사랑한단다. 근데, 가끔 어른들도 이렇게 다투는 일이 생겨. 앞으로 안 싸우도록 노력할게. 남자는 가슴이 넓어야 하는데, 이 아빠가 순간 그러지 못했단다. 미안하다."


부부싸움을 통해, 우리 삼남매가 아빠, 엄마 사랑에 대한 오해를 할까 봐 아빠는 항상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주었어요. 


"남자가 가슴이 넓다는 의미는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헤아려준다는 의미야. 오늘 아빠가 엄마에게 먼저 사과하고 화해할 거다. 너도 그렇게 알고 있으렴"


주로 화해는 아빠가 먼저 시작했어요. 엄마 앞에서 아빠만의 시그니처 댄스를 추거나, 윙크를 하거나, 맛있는 요리를 선보였죠. 


아빠, 엄마의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있었던 부부싸움에도 우리 삼남매는 크게 불안하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가끔, 사춘기 때 엄마와 내가 크게 싸우고 나면 아빠는 항상 나를 불러내어 한마디 했어요.


"아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네가 좀 심했어. 엄마가 네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는 줄 아니? 아들 엄마이기전에 아빠의 아내고 내 여자다. 앞으로는 내 여자에게 함부로 하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오늘은 네가 잘못했으니 엄마에게 가서 사과드리고 풀으렴"




여전히, 아빠, 엄마는 '잉꼬부부' 내지는 '금실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있고, 저희 내외와 손자들, 그리고 삼남매와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가끔 티격태격하고 사소한 말싸움 하는 것도 이제는 정겹습니다. 아빠의 독특하고 열정적인 자녀 교육만큼이나, 아빠만의 특유의 사랑방식이 엄마에게 줄곧 전해졌어요. 


독특한 아빠, 외계인과 37년을 같이 사는 여인은 고결하고 위대합니다. 존경합니다, 어머니. 

작가의 이전글 아빠, 여동생을 입양해서 데리고 오자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