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속 탱자나무
활짝 열린 솟을대문을 들어서자, 탁 트인 마당이 낯선 객을 맞는다. 오랜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은 자연이 빚은 예술품이다. 고가(古家)는 푸른 산자락 아래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옛집을 둘러본다. 문경 장수황씨 종택(宗宅)은 단아하고 사늑하다.
옛사람들이 살았을 당시는 꽤 분주했을 공간에는 이제 사람의 체취 대신 바람이 주인인 양 오간다. 햇살이 비켜 앉은 툇마루를 쓸어보고 부엌문 앞을 기웃거린다. 한때는 글 읽는 소리 낭랑했을 방문을 지나, 비질이 끊이질 않았을 토방도 밟아본다. 장작 패는 소리 쩡쩡 울렸을 뒤 안에는 높은 굴뚝이 겨르로이 서 있다. 나무 뚜껑이 덮여있는 마당의 우물은 그 옛날, 푸른 달빛을 가득 담았으리라.
하지만, 옛집은 이제 침묵 속에 들어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행랑채 지붕의 낡은 기왓골에 두 뼘 크기의 파릇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 흙 한줌 없는 공간에 뿌리를 내린 뚝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무릇 살아있는 것들이 가진 의미는 때로 경이롭다. 사랑채와 안채, 사당과 유물각이 평면으로 이어진 독특한 형태의 종택을 둘러보는 동안, 초여름의 푸른 바람이 쉼 없이 말을 걸어온다. 바람은 마당에 있는 탱자나무를 보듬었다가 풀어놓는지 코끝에 와 닿는 냄새가 생기롭다.
옛집에 들어선 순간, 수많은 가지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서 있는 탱자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400년 동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상생을 꿈꾸었을 나무가 넓은 품으로 종택을 감싸고 있었다. 노거수임에도 불구하고 가지가 창창하다. 이파리들 사이사이 날카로운 가시와 새파란 열매가 꼿꼿한 의지를 헤아리게 한다.
탱자나무는 귀신을 쫓아준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어 주로 울타리 용도로 심어진다. 하지만, 종택에는 특이하게도 탱자나무가 마당에 자리해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종택을 또바기 지켰을 나무의 위엄 앞에 서니 가슴이 우릿해진다. 두 그루가 마치 한그루처럼 어우러져 서로를 의지한 채 하늘을 지탱하고 있다. 건물은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는데, 탱자나무는 세월조차 초월한 듯 헌걸차다. 나무 아래서 시퍼런 열매와 이파리를 바라보는 동안 탱자나무는 한 사람을, 그리고 또 하나의 탱자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내가 태어난 집에도 탱자나무가 있었다. 덜퍽진 탱자나무가 뒤 안에 있던 집, 사람들은 그곳을 ‘탱자 집’이라고 불렀다. 탱자나무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고모 이름과 탱자 발음이 비슷해서 사람들은 고모를 ‘탱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모는 우리 가족에게 그 이름만으로도 슬픈 존재였다. 고모는 눈물이 많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고 어머니는 회상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고모에게 어머니는 언니라기보다는 엄마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손등이 터서 갈라진 고모 손에 피마자기름을 발라주고, 남들에게 쉬이 보일까 봐 긴 머리를 땋아 댕기를 예쁘게 매 주었다고도 했다.
가난처럼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봄빛이 시나브로 마당에 들어차면 감나무에도 물이 오르고, 뒤 안 탱자나무의 속살도 여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햇살에 몸살을 앓던 나무가 꽃을 화르르 피운 날, 고모도 하얀 탱자꽃처럼 매초롬히 피어났다. 어느 날, 면 소재지 극장에서 고모를 보고 반한 총각에게 시집을 간 뒤에도 탱자나무는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탱자꽃 같았던 고모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의의 사고로 고모부를 잃어버린 후, 고모의 화사한 봄은 시들어 버렸다.
고모가 다시 탱자나무 밑으로 돌아온 건,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병이 되어 버린 탓이었다. 고모는 탱자나무 가시처럼 스스로 정신을 파고 들어갔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파란 가시를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가시처럼 뾰족한 상처는 칼날이 되어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겨누었다. 어머니는 당시 암흑처럼 절망이 가득했던 고모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싱그러운 봄이 돌아와도 더 이상 고모에게 탱자나무꽃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가슴에 묻어버린 꽃송이들이 눈물이 되어 끝내는 시디신 열매로 맺혔다. 탱자나무 아래 앉아 고모는 주문처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란 열매를 손으로 짓이기며 고모는 자신의 상처를 그렇게 치유했다.
깊은 밤처럼 어둡고 처절했던 순간들은 비단 고모만의 것이 아니었다. 혼절(昏絶)과 혼돈(混沌)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고모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탱자가 고모의 액운을 희석해 준 것인지, 고모를 위해 무속인의 힘을 빌려 굿까지 했던 어머니의 정성 덕분이었는지 고모는 다시 태어났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부수고 약한 여자가 아닌, 강한 엄마가 되었다.
여름날, 제 몸의 가시처럼 시퍼런 독을 품고 있던 탱자가 맑은 가을바람에 몸을 헹궈 독한 기운을 씻어내고 속살을 부풀리듯, 고모의 슬픔도 노란색으로 익어갔다. 깨물면 한없이 시디신 탱자 열매는 고모의 슬픔이 응축된 사리였다. 이제, 고모는 시지만 향기를 머금은 노년의 삶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도 시퍼런 탱자 가시가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바람의 결에 몸을 얹고 싶었다. 여유롭지 못한 삶으로부터 오는 회의와 가까운 사람과의 불협화음은 때로 분노와 절망으로 이어져 스스로 가시를 만들곤 했다. 시퍼런 가시가 가슴을 콕콕 찌를 때면 탱자나무 집이 생각났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탱자나무와 함께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련무던한 친구와 탱자나무가 있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고가를 찾아온 건 그 때문이다. 하루쯤 복잡한 도시의 삶을 벗어나 온 가슴으로 푸른 바람을 맞고 싶었다. 상심이 클수록 사람은 자연과 가까운 색을 갈구하나 보다.
돌아가고픈 유년의 기억 속에 새파랗게 살아있는 탱자나무를 그리워했던 나의 시든 날들이 진초록 이파리 사이로 겹쳐진다. 고모가 탱자나무 아래 앉아 상처를 치유하며 곤고한 세월의 무게를 이겨냈듯이, 내 마음의 가시도 무디어질 날이 있을 것인가. 그런 날들을 희망하며 살란스런 감정을 나무 아래 잠시 부려놓는다.
탱자나무가 가장 푸른빛을 발하는 계절, 청정한 바람이 우듬지를 흔들고 있다. 친구의 편한 얼굴에서 조금은 가벼워진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