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에 부는 바람의 색이 달라졌다. 칙칙한 옷을 벗어버린 유채색 바람이 살랑살랑 말을 걸어온다. 냄새도 달라졌다. 한 계절, 묶인 듯 고여있던 탁한 기운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제는 몸을 푼 땅에서 올라오는 쌉싸름한 냄새가 주위에 흐른다. 햇살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속살거리는 천변을 걷는다. 수다를 풀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모여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물은 너울가지가 좋다.
계절은 벌써 저 혼자 앞서가는 듯 천변 둑에는 파릇한 야생초가 키재기를 한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자연은 한땀 한땀 초록 실로 땅에 수를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잖아 꽃천지가 될 걸 상상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면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아이들 웃음소리도 팡팡 터지리라.
하천은 도심의 숨길 같은 곳이라 어느새 천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몇몇 어르신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운동기구에서 팔다리를 쭉쭉 펴는 노인들도 있다. 전문 라이더들이 물찬 제비처럼 지나간다. 열 명 정도 되는 그들의 다리 근육이 터질 듯 팽팽하다. 자전거 바퀴에도 햇살이 통통 튄다.
징검다리 쪽에 이르자 아이 둘이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물은 제법 깨끗하다. 물고기라도 발견했는지 아이들이 제 엄마를 부르며 손가락으로 물속을 가리킨다. 문득 어린 시절 냇가에서 가재 잡던 생각이 떠오른다. 가재뿐일까. 깨끗한 저수지와 도랑에는 우렁이며 고동도 많았다. 그것들을 잡던 어린 시절이 우리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화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주인과 함께 나온 반려견들도 신이 났는지 자신의 종족을 바라보며 깽깽 짖는다. 꼬리는 아예 떨어질 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다. 청신한 자연 앞에서는 모두 마음이 넉넉해지나 보다. 엊그제 겨우 땅을 비집고 나왔던 쑥에도 도톰하게 살이 올랐다. 햇살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쑥이라도 캐고 싶은 봄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