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Erika Jul 04. 2024

만 64세 엄마의 첫 취업

엄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해


엄마가 취업을 했다. 만 64세.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전했다.

만 64세에 경제활동에 뛰어든 당신을 보고 애틋하고 가슴 아팠다기보다 기쁘고 다행이었다고 하면, 나쁜 딸일까. 사실은 그 어떤 소식보다 반가웠다고, 그녀의 은근한 어리광과 서운함을 애써 모른 척했다면, 나는 천하의 불효막심한 년일까.


엄마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살아내던 다른 형제, 자매들과는 달리 엄마는 평생 남편에게만 기대어 살았다. 남편이 돈을 벌어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능력이 없고 몸집이 작고 약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취미로 일본어며 중국어를 배우고 교회 봉사활동을 다녔지만 정기적인 직업 생활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동호회나 모임 활동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사교에 큰 취미가 있지 않아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살림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요리는 소위 '젬병'이었고 평생 부엌이 싫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내가 본 엄마는, 대부분의 날들을 종일 집에서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며 보냈다.


문제는 엄마가 온전히 기대고 있는,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 또한 경제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면 빚을 내서 생활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무능한 남편을 원망하곤 했다. 나도 덩달아 아빠를 원망했다. 모든 게 다 아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가정에서는 비슷한 경우 다른 배우자가 경제활동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모든 책임을 아빠에게만 전가하며 살았다.


사회에 나가보니 한 배우자의 경제력이 아주 좋거나 집안이 몹시 부유한 경우,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경제력과는 관계없이, 어떤 일을 하건 경제활동 자체가 자아실현의 길이 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특히 서구 문화권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편향된 시선이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몹집이 작고 약해 보여도, 장애가 있어도 감히 함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규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찾으면서 성장해 나가며 배려를 배우고 소통을 배운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행위'를 통해 얻게 되었던 배움과 깨달음은 학교나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노동이라는 행위를 존경하게 되었다.



작년, 엄마가 그나마 모아둔 목돈을 언니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데 다 쓰겠다고 했을 때, 나는 엄마 생활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누차 설명해야 했다. 그래도 자식인데 어쩌냐며 기어코 만 원 단위까지 써버리고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엄마를,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나는 불효녀였다. 엄마는 나를 두고두고 원망했다. 학자금 대출 최소 상환금조차 제 때 내지 못해 연체 안내문이 날아드는 나를 두고 제 욕심만 채우고 사느라 당신이 뒷전이라며 힐난했다. 나는 더 빚을 내 엄마 생활비를 보탤 수가 없었다. 결혼을 이야기하던 남자친구는 이런 내 상황을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헤어졌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는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엄마는 종종 스스로 자격지심에 빠져 불같이 화를 내거나 서럽게 울거나 했다. 60년이 넘는 평생동안 그녀는 단 한번도 '자립'해 본 적이 없음을, 자식들이 독립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던 엄마가 첫 출근을 한단다. 하루 3시간씩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에 지원을 하고 기다리던 중 합격 소식을 받아 든 것이다. '자식이 안 주는데 어쩌냐'는 가시 돋친 말을 애써 모른척하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축하를 전했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겠지만 그래도 내 부모라는 이유로 늘 죄송하고 감사한 존재다. 당신의 바람대로 딸이 잘 살았다면,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이라도 갔다면 친정에 용돈을 펑펑 퍼부어 주고 당신은 "나는 평생 일 해 본 적 없어요" 하는 말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셨을 수 있었을텐데.


엄마가 이제나마 노동의 가치를 '찍먹'이라도 해 보며 즐겁고 보람찬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본다. 경제적 보탬과 더불어 노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또한 경험해 보시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아니,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더 행복하게 사실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파프리카와 아루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