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본인의 직업을 열심히, 또 훌륭하게 해내며 사는 30대 초중반의 싱글 여성이다. 쇼핑을 좋아해 옷, 화장품, 인테리어 소품을 늘 구매했고, 명품 가방을 샀다. 좋은 레스토랑을 다녔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었다. 성형에 관심이 많고 몸매관리에도 열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에는 늘 쇼핑한 물건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포스팅되었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화려한 삶이었다.
비록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는 한참 멀지라도, 이런 삶은 (남에겐) 전혀 문제가 없다. 내 돈, 시간 뺏어 쓰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그녀가 자신의 일에 있어 실력자이고 훌륭하다는걸 의심하지 않았고 늘 멋지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가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올라온 그녀의 명품 가방을 예쁘다고 칭찬했고, 포스팅된 그녀의 근사한 삶에는 하트를 눌러주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런 삶에 관심이 없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니 하트 하나 눌러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어린 내가 먼저 집을 산 사실에 매우 놀라고 또 부러워하며 자신도 돈을 모으겠다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풍족해 보이는 인스타그램 속 모습과는 달리 종종 사지 못한 명품백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고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이미 부모님께도 많은 지원을 받은 상태니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면 나보다는 충분히 편하게 집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몇 년간 셰어 하우스의 가장 싼 방에 살며 매달 급여의 70% 이상을 저축해서 집을 마련한 내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외식값/커피값부터라도 줄여보면 어떻겠느냐고 다독였다. 나처럼 사는 게 정답은 아니니,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거라며.
그녀는 또 스스로 비혼주의라고 말하면서도 남자친구의 경제적인 능력/문제를 토로하곤 했다. 결혼할 것도 아닌데 남자친구의 경제적인 능력이 왜 문제가 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그녀의 돈을 가져가나? 아니, 오히려 그 남자는 각종 기념일마다 그녀에게 온갖 선물을 조공하고 그녀는 그걸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뭐 이런것도 남자친구가 남들 눈에 근사해 보였으면 하는 흔한 여자의 마음일 수 있다.
그녀는 비혼주의지만, 결혼을 한다면 호텔에서 하고 싶다 말했다. 이쯤 되면 그녀는 '비혼'을 바라서 택한 게 아니라 '비혼' 외엔 선택권이 없을 뿐이었다. 자신의 물질적인 욕심을 채워줄 사람이 없으니 결혼을 '못'하는 것 아닌가. 뭐 그것도 괜찮다. 결혼 안(못) 한다고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 아니니 말이다.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지만 각자 나름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 잘 타협하고 사는 사람들을 백번 존중한다. 그런데 그녀는 점점 자신의 생각을 더 격하게(...) 공감받기를 원했다. 아마 자신도 컨트롤할 수 없는 내면의 깊은 불안감이 그녀를 뒤흔들 때마다, 타인의 달콤한 말과 지지를 통해 위안받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나는 종종 그녀의 생각을 존중한다며 달래 주었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점점 나를 지배하려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정을 이룬 사람에게서 흔히 듣게 되는 힘든 점들만을 꼽아 자신의 비혼주의를 지지하고 자신의 삶을 합리화했는데, 기혼자들이 결혼 생활에 불평을 늘어놓으면 미혼자들이 흔히 '거 봐, 혼자 사는 게 낫지'하는 식이었다. 그것마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흠을 안고 살아간다. 제 식대로 해석해서 맘이 좀 위로가 되면, 그것도 때로는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선을 넘어서 은근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듣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저와 같은 싱글이면서도, 또 혼자서 돈도 잘 벌고 집까지 있는데 '비혼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꽤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비혼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건만,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그녀의 약을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차마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그녀만의 '배우자 기준'에 충족했다면, 그래도 비혼주의를 고집했을거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가경제적으로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면근사한 프러포즈를 받을 날만을 기다리며 웨딩드레스를 알아보고 화려한 결혼식장을 골랐을 것이다.
그녀는 또 연인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을 두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녀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위해 양보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나의 연애에도 선을 넘어 간섭하기 시작하더니, 신경을 건드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결국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은 그녀는, 나의 관계망에서 주저 없이 아웃되었다. 물론 그녀도 나만큼이나 내가 이해가 안 되었을 테니 서로 아웃시켰다고 보는 게 맞겠다.
우리는 문명 탄생이래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삶이 허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신념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대부분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인정받는 유례없는 사회다. 시대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사상/현상은 늘 있기 마련이고, 요즈음 유독 한국인들에겐 '비혼'이나 '딩크' 같은 단어가 그렇다.
나 역시 싱글로,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비혼이나 딩크를 백 프로 존중하고, 또 다양성의 관점에서도 모두 필요한 가구 형태라고 믿는다. 장담컨대 책임감 없이 배우자를 맞이하고 자녀를 낳는 것만 한 재앙은 없다.
하지만 비혼이나 딩크가 결코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저 청년들이 저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 되어버린 팍팍한 사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 시대의 한국 청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책임감'이 두려워지는 건 가슴 아픈 현상이다. 그만큼 배우자로써, 또 부모로서 여성과 남성의 기준과 잣대를 필요 이상으로 들이대고 목을 조른 결과일 것이다. 가정을 꾸리는 '건강한 책임감'이 두렵게 다가오기보다는 기대가 되는 사회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간혹 싱글인데 집 있고돈 잘 벌고 혼자 재밌게 잘 사는 것 같으면 비혼 홍보대사라도 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비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소위 '좀 잘나가는 싱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은 심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내가 앞으로도 비혼으로 산다면 그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지, 바란게 아니다. 물론 결혼이 행복을 뜻하지는 않듯 비혼이라고 마냥 불행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비혼이든 결혼이든 딩크는 다자녀든, 행복이나 불행을 보장하는 것은 없다. 다만 여성이 '아내'로서의 역할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건 희생이기 이전에 대단한 축복이라고 믿는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내로서 역할을 해내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고군분투할 수 있는, 숭고한 자아실현의 행운이 내게 온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내가 혼자 잘 산다고 해서 "비혼 너무 좋아요, 비혼 하세요!" 따위 발언을 할 일은 없다. 물론 결혼 못했다고 '이생망'이라며 절망하고 살일도 없고.
나아가 위에 소개한 그녀처럼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도 뭘 포스팅하든 범법만 아니면 모든 게 허용되는 세상이다. 명품을 살 때마다 언박싱을 하든, 주말에 오마카세를 가든, 남자친구에게 뭘 선물 받든 인스타에 자랑 좀 할 수도 있지, 안 그런가?
소셜 미디어에 시간을 쏟는 삶은 자유다. 그런데 문득 자신의 삶이 공허하고, 가슴 깊숙이 답답할 때가 느껴진다면, 그걸 또 다른 소비와 인스타그램으로 풀 게 아니라,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고상한 척한다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한 번쯤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과감히 인스타그램을 멈추고, 팔로워에 집착도 버리고, 쇼핑도 좀 참아보라.
진짜 벌거벗은 내면의 나를 보는 부끄러움은 잠깐이지만 깨달음은 영원하다. 왜 과시는 결핍인지 사실 우리는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 마주하기가 껄끄러울 뿐. 변화하고 싶지 않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 대신, 자신의 끊임없는 비교의식과 소유욕을 인정하지 않고 우울함의 원인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주변을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 삼아 마구잡이로 이용하지는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