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논하기 전에
20대 초반에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동물을 죽이면서까지 굳이 고기를 먹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큐멘터리의 영향도...) 아예 2년 정도 비건이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또 한 번 입에 대기 시작하니 무뎌지면서 어느샌가 맛있게 먹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그러다 최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이 또... 신호를 줘서 채식 생활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시 다큐멘터리도 보고 책도 읽고 있는데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인간이야말로 지구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점점 사라져 가는 아마존의 열대우림도, 녹아가는 빙하도, 살 곳을 잃고 멸종해가는 동물들도, 쓰레기로 뒤덮인 섬도 -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가뭄, 산불, 태풍, 미세먼지, 질병들로 인간에게 돌아오는데 그래도 우리는 참 욕심이 끊이질 않는 탐욕스러운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벌어지는 믿고 싶지 않은 일련의 과정들. 과연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이 지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건가라면서요.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티브이를 끄고,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정말 이대로는 안되는데... 인간은 더 이상 이러면 안 돼. 아마존도 지켜야 하고 북극곰들도 지켜야 하고...' 등등 머릿속으로 혼자 결의에 찬 다짐들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물을 틀어놓고 양치를 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 순간 헛웃음이 나더라고요.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원효대사의 해골물의 현대 버전 양칫물 깨달음이려나요. ^^;
그래서 요즘은 일단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고기 & 유제품 먹지 않기, 아주 깜깜해지기 전까지는 전기 거의 사용하지 않기, 세제 되도록 사용하지 않기, 물 아껴 쓰기, 장바구니 들고 가서 되도록 시장 할머니들에게서 장보기, 그리고 필요 없는 물건 사지 않기처럼 정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요. 세상을 운운하기 전에 나 또한 그 세상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겠죠.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
라는 초등학교 때 많이 보던 표어처럼요. ;)
결국엔 무슨 일이든 나부터 잘하자는 것!이네요. 아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