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토스트를 기다리며
되도록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려고 하지만 잔고 상황은 늘 넉넉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때 되면 설향 딸기는 먹고 싶고, 다이어트하려고 사놓은 닭가슴살이 냉동실 가득 있어도 문득 황금 올리브 치킨이 사무치게 먹고 싶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냉장고는 의지와 충동이 테트리스를 하듯 빼곡히 차있다. 나의 냉장고에 화풍이 있다면 바로크주의를 떠올릴 수 있겠다. 여백의 공포.
냉장고를 열어 ’ 오늘 하루 식사‘ 또는 ‘한 끼’라는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려고 하면, 어떤 재료에서는 과거 어느 때의 ‘의지’를 반영하기도 하고, 어떤 재료에서는 과거의 ’충동‘을 투영한다. 어떤 식재료는 ‘의지’로써 이 냉장고에 입문했다가 ‘박약’해진 정신을 여실하게 투영하여 적잖이 당황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요리와 식사라는 현재 또는 미래의 과업 앞단에는 ‘의지’였든 ‘박약’이었든 ‘충동’이었든 과거의 내 결정이 서늘하게 존재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했다.
의지와 계획대로만 굴러가지 않아 씁쓸한 것이 인생이지만 빛처럼 찬란한 우연이 느닷없이 출현하여 과거를 끌어안는 멋진 순간으로 발현하는 것 또한 인생의 달콤함이다. 가령, 본가에 갔다가 큰언니 식구들이 나를 서울집으로 데려다주었을 때, 그래서 갑자기 큰언니 식구들이 우리 집에 예기치 못한 손님이 되었을 때. 냉장고에서 서늘하게 방황하던 나의 재료들은 빛을 만난다.
냉장고 가장 윗단에서 이번 생에 병아리로서는 글렀다는 운명을 알아채고 노른자와 흰자가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가던 계란들이 그랬고, 단단한 도도함은 이 냉장고 세계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약해진 딸기가 그랬고, 저지방이 아니라서 보다 윤택한 삶을 살 줄 알았지만 같은 이유로 유통기한을 향해가던 우유가 그랬다. 그리고 감히 “식빵의 정석”이라는 이름으로 내 충동세계에 들어왔던 아띠제 출신 식빵 또한 이 대열에 합류했다.
각자 다 다른 이유로 냉장고에 입문한 과거들은 같은 우연을 만나 한 그릇의 현재가 되고, 한 폭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어제의 프렌치토스트가 그랬다. 어쩌면 어물쩍 넘어간다고 느낀, 혹은 고여간다고 느낀 내 모든 과거의 날들이 언제 달콤한 기쁨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내 삶을 흡족하고 흐뭇하게 할지 모르는 일이라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나는 또 다른 프렌치토스트를 기대하며 여실하게 오늘도 냉장고를 채운다. 의지와 충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