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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by 은기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과외를 시작하면서 직업 전선에 뛰어든 나는 이후 거의 경제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아이들과 ‘밀당’을 잘했던 탓인지 동네의 과외 선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엄마는 용돈을 주기 부담스러웠던지 용돈 벌이용 과외를 계속 물어다주셨다.

아버지도 옆에서 미국에서는 20대부터 경제적 독립을 한다며 ‘맞짱구’를 쳤고 나 역시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을 이뤘다며 당시에는 뿌듯함에 사로잡혔다. 물론 이 생각은 대학 4학년때 집에서 용돈을 받아가며 ‘유복하게’ 취업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판판이 깨지긴 했지만.

하지만 일찌감치 시작한 경제 활동으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일을 오래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돈만을 좇기 위한 일을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금방 지쳤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지속가능할 것이고, 그래야 꾸준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작은 경험으로나마 알게 됐다. 그 이후 대학에서는 뒤늦게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0대때 이런 직업 탐색의 기회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 인해 인생의 황금기를 흘려버린 댓가는 생각 보다 컸다.


그래도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라는 일념하나로 헤매던 중 원하던 4가지 직업 중 하나인 기자 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일이 재미있었다. 새벽 2시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을 썼고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늘 아이템 구상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또 그것이 활자화됐을 때 짜릿함과 성취감도 컷다. TV와 영화에서나 보던 배우들이 세상과 독자들을 이어주는 소통 매개체로서의 역할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경력이 10년이 넘어서면서 점차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무게는 커졌고 거는 기대도 커졌다. 체력은 떨어지고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판기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번 짜낸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뜨면 거대한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공포가 컸다. 되돌아보니 지난 5~6년간 출장을 제외하고 여행을 간 적도, 제대로 쉰 적도 없었다. 몸이 아파서 혹시 나에게 배당된 을 메꾸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었다. 사실 겁이 많은 성격의 나는 2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만일 나중에 이혼을 하게 됐는데 경제권이 없다면 거리에 나앉게 되지 않을까’ 그때는 지금의 이 나이까지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 막연한 공포심은 일에 대해 과한 집착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때 눈에 들어왔던 것이 바로 ‘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라는 책이었다. 마침 직장인들의 ‘번 아웃’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던 때였다. 비탈길에서 흘러내리는 돌을 끊임없이 위로 밀어 올리는 시시프스의 신화처럼 쳇바퀴 돌리는 삶에 지친 주변의 동료들은 ‘진짜 어디라도 부러져서 일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본 최고 정신의학 전문의 아카다 다카시의 책 ‘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라는 책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상하부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방출되고 이 호르면은 뇌에도 유해한 작용을 한다. 단기간이라면 각성도가 올라가서 뇌의 회전이 빨라지고 스트레스를 물리치는 저항력을 생성시키지만 장기간 지속되면 피폐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그저 감정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였던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와 함께 많이 발생하는 우울증은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사람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100점 이외의 상태는 99점이어도 실패나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룬 것 보다는 나쁜 점에만 눈이 가면서 세상을 나쁘게 본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의 사람일수록 현실을 마이너스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또한 걱정거리나 이미 실패한 일을 되새기며 생각하는 ‘반추 사고’를 하는 경우도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한 글자라도 틀릴까봐 노심초사하고 실패한 일의 원인을 파헤치던 나는 이 모든 것의 해당자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일이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 쉴 여건이 안된다면 스트레스 내성을 높여 보는 것도 좋다.

이를 해서는 일단 눈 앞에 놓인 난제와 ‘반추 사고’에서 에서 빠져나오도록 전환 훈련을 해야한다. 가장 쉽고 유효한 것이 몸을 움직이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거나 잠깐 눈을 붙이면 전환이 빨라진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상처를 받거나 불쾌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담아두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해소하는 편이 낫다. 매일의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서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예방을 하듯이 지금이라도 지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Q. 일이 당신을 아프게 한 적이 있나요? 이를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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