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 (에필로그)
문득 제가 가진 행복에 반(反)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와 비슷한 패턴인 그것은 불쑥불쑥 튀어 오르며 일종의 습관처럼 자리 잡게 되었어요. 가령 샤워를 하다가 맥연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지.’와 같은 상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양치를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칫솔 두 개에 치약을 짜고 있을 때, 두 개의 비타민을 톡 톡 까서 나눠 먹으려고 할 때, 침대에 눕는 순간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팔을 뻗어볼 때, 발개진 눈에 찰랑거릴 만큼 눈물을 채우고서야 그런 상상을 멈추곤 해요. 나를 슬프게 만드는 장면은 꽤 단조로운 일상의 일부라는 걸 깨닫고는 비로소 정신을 차립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아련한 여운을 내내 안고 가요.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무너질 일상을 소중히 안고 있고 싶어서요.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을 멈춘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일상이라는 커다란 품 안에 담아둔 ‘여행’이라는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못한 채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갔어요. 추억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금’이라는 소중한 일상을 외면했습니다.
여행자라면 무릇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어요.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던 장거리 버스, 인터넷이 되지 않아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친구와의 약속 시간, 며칠간 줄기차게 내리던 비, 그 비가 그치고 반짝거리는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나요.
‘다시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조금씩 놓아간 순간이 있었지만, 그걸 포기나 단념이라고 여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곧 다시 떠날 여행을 기다리는 동안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리라 마음먹었어요. 밤새 건조해지고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도 뜻밖의 상황에 마주쳤을 때 감탄을 놓치지 않으려 깨어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따스해졌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니까요.
‘당신은 왜 여행을 좋아하나요?’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 하는 대신 활짝 웃어 보이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질문은 정확한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보는 무의미한 질문이며 동시에,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생기와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유의미한 질문이 아닌가 해요.
여행을 떠올리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심장이 쿵쾅댑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무얼까 떠올려봐요. 설렘과 불안은 늘 함께 오는 것 같지 않나요. 조금은 초조한 마음을 안고 떠나는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여행은 그냥 좋은 것 아니겠어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비밀과 사랑과 상처와 아픔 같은 나만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어 보는 시간은 주로 여행 중이었던 것 같아요. 여행에서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상처받고, 실망하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남는 건 사랑인 것처럼요. 여행과 사랑이 좋은 이유는 수백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으면서 동시에 말문이 막혀버리기도 하는 것처럼요. 포르투갈도 그랬습니다. 포르투갈에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매력적인 영화배우 같달까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소소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는 주인공 친구 같아요.
포르투갈은 땅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세계이자 삶인 바다가 시작됩니다. 포르투갈은 바다를 그대로 품은 땅이에요. 완벽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과 건강한 음식과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책과 시인과 노래, 이별과 사랑이 공존하는 곳. 포르투갈을 직접 걸어보길, 포르투갈이 아름다운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주길 바라봅니다.
이제는 당신이 포르투갈과 사랑에 빠질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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