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명한 기억을 남긴 마을, 코스타노바(Costa Nova)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색을 가진 집들, 이 마을의 색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다. ‘빨간색이나 초록색인 줄무늬 집들이 예쁘다.’라고 쓰긴 싫어서 머리를 쥐어짜 내다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결국은 그렇게 써버린 셈이다-
요즘 나는 어휘력을 잃고 있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자주 아찔해진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자 애쓰며 온갖 단어를 ‘잘’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어휘 능력은 어쩌면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하여 좌절하기도 한다.
책 <외면 일기>에서 미셸 트루니에는 오늘날 -2002년에 출간되었으나 훨씬 이전에 써둔 글이다. 심지어 그때에도- 글말의 문맹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동시에 입말 또한 왜 중요한지도 설파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도 코스타노바의 느낌을 입말로 표현해볼까 하며 쓰던 글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있잖아,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집들은 마치 동화 같았고…’ 아차. 더 이상 여행을 말할 때 동화 같다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그 마을에서는 그 어떤 긍정의 묘사가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답고 조화로워 안전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자세히 보면 슬픔이 묻어나기도 했다. 1층과 2층 집 테라스에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분들이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다. 창문 틈으로 보였다 마는 커튼 자락이 돌연 기분을 희미하게 흐려놓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집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누군가 살고 있는 집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도 적지 않았다. 별게 다 궁금해지거나, 그래서 훔쳐보고 싶거나, 마치 소설가가 된 듯 메모장을 열어 그 순간의 감정을 마구 남겨보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가 아닐까.
처음 코스타노바를 발견한 건 어부들이다. 새로운 물가(New Shore)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물가에서 머지않은 하얀 모래 평원 위에 줄무늬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투명한 물가에 마을을 만든 어부들은 집을 짓고 다시 바다로 떠나버렸다. 돌아올 때에는 집을 잘 찾아오려고, 잘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색을 더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기다리는 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빛이 닿는 면면을 정성스럽게 다시 칠한다고 한다.
어쩐지 까맣게 밤이 내려도 깜빡깜빡 빛을 쏟아낼 것만 같다.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집은 고요한 호흡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집은 내가 돌아갈 곳이기도 했다. 그제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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