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맛집이라면 단연, Pastéis de Belém
리스본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가 최고라는 말, 그중에서도 리스본의 벨렘 지구에서 파는 포르투갈이 진짜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거기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다들 그러지? 게다가 난 에그타르트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라는 생각이 든 건 나뿐이었을까? 밉다, 하여간.
결국 첫 포르투갈 여행에서 나는 굳이 그 맛있다는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가지 않았다. 두 번째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포르투갈의 그 어느 도시, 어느 카페에서나 파는 에그타르트도 맛이 이렇게 좋은데 그럼 대체 그곳의 나타는 얼마나 맛이 좋다는 건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포르투갈 여행을 했다고 하면 으레 받는 질문인 "그럼 그거 먹어봤어요?"에 더 이상 "아니오, 왜냐하면 저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어쩌고저쩌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인 "에이, 거긴 진짜 다른데..."라는 말을 듣는데 조금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 글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시작하면 안 되는 글이었다. 벨렘 지구의 그 맛있다는 에그타르트를 먹고 나는 조금 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기대치 0에서 시작한 거라, 결과치 10을 낸 걸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본 영화가 실망스럽고,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꽤 재미있었던 경험을 누구나 해보지 않았나. 그러나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이유가 없다. 정. 말. 맛있었다.
아스락 부서지는 페이스트리는 살짝 탄내가 나는 듯하면서도 버터향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 고소함을 한입 베어 물면 구름만큼 부드럽고 아인슈페너 위에 올려진 크림만큼 달콤한 커스터드(custard) 향이 확 풍긴다. 입 안에 가득 찬다. '으음~!' 하는 감탄의 신음과 함께 누굴 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엄지를 척 올린다. 그러니까 이 에그타르트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그 표현의 종결자였다. 취향에 맞게 시나몬가루나 파우더 슈거를 소르륵 뿌려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먹으면 갑자기 행복해진다. 뱃속이 따스해지고, 은은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내가 이걸 여태 왜 안 먹었지?'
포르투갈의 디저트 산업은 아랍이 설탕을 소개한 시기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세를 거쳐가며 수도원의 수녀와 수도승이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수도원이 바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수도승의 옷을 빳빳하게 만드는 데 달걀흰자를 사용하다 보니 남은 달걀노른자를 디저트 만드는 데 사용하게 되었고, 그때 발명한 레시피가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 가게에서는 주방 레시피가 바깥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미묘하게 특별한 이 맛은 몇 백 년 전통을 이어온 맛으로 충분하다. 역사를 맛보는 기분이 든다.
밤낮으로 가게 바깥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지만 쉽게 포기하기엔 이르다.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기도 하고, 안쪽으로는 실내에서 먹는 사람들을 위한 줄이 따로 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서 먹고 가기도 하는데, 나도 그랬다. 테이블이 없으면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 서서 갓 나온 따뜻함을 그대로 느끼며 먹어도 좋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그 분위기가 떠올라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자, 이제 포르투갈에 가면 리스본의 에그타르트를 먹어보자. 벨렘 지구의 <Pastéis de Belém>의 1.1유로짜리 기본 나타부터 여러 가지 맛을 낸 나타의 향연을 즐겨보자. 이 맛을 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수도원 역사를 향해 '죄'를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항할 수 없는 달콤함에 빠지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포르투갈에서는 에그타르트를 나타(Nata)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파스텔 드 나타 (Pastel de Nate) 이다.
나타는 크림을 뜻하고, 파스텔은 페이스트리(pastry)를 뜻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포르투갈식 나타를 파는 '파스텔드나따' 디저트 카페들이 제법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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