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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Oct 25. 2019

메스티아 코룰디 호수에 빠진 코카서스

조지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7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구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작열하는 해는 구름 앞에서 잠시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다시 해가 빛나자 호수는 반짝거렸다. 호숫가를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발등에 쏟아지는 햇살은 뾰족하지만 따스했다.


코룰디 호수 (Koruldi Lakes) , 해발 2850 (백두산 천지는 해발 2750m이다.)
-길게 뻗어 있는 코카서스 산맥-


코룰디 호수는 메스티아(Mestia) 지역 코카서스 산맥에 있는 작은 호수이다. 조지아 여행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뷰포인트(view point)이자 트레킹(trekking) 코스로 인기가 많다.


‘으응? 이게 정말 코룰디 호수라고? 연못 아냐?’


코룰디 호수를 보고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적잖이 읽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라 ‘호수’라 부르기엔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날씨라도 흐렸다면 호수에 비친 반영을 볼 수 없었을 테니 그 마음도 이해가 갔다. 흐린 날씨 때문에 카즈베기(Kazbegi)에서 받은 감흥이 반감된 나의 경험과 비슷하겠지. 오늘 날씨 요정은 내 편이었다. 나에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몸을 휘감는 바람을 맞게 된다. 만년설이 뒤덮은 설산 봉우리와 한 번쯤 꼭 손에 쥐어보고 싶은 하얀 구름이 뒤엉켜있다. 구름이 이렇게 새하얗고 예쁘구나. 하늘은 이렇게 새파랗고 높구나. 지금만큼은 나도 하늘만큼 높이 서있다. 까막득한 아래 마을 사람들이 간혹 올려다보는 하늘 위에도 이렇게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위한 목적이 코룰디호수는 아닐 것이다. 코카서스 산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는 이상, 이곳을 설명할 하나의 표식 같은 것이겠다. 코룰디 호수까지 직접 걸어 올라오는 동안 만나는 풍경에 감탄하고, 그 자랑스러운 과정이 여행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때문이겠다.





평화로운 시간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아침 일찍 출발했던 덕분에 호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하나, 둘 호숫가에 몰려들고 있었다. 말을 타고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말의 나라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말도 휴식을 취했다.


말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언덕 위에 두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그의 옆에 나도 누워보고 싶었다. 나의 부족한 조지아어도 10일이 지나자 더욱 뻔뻔해졌다. 그는 웃었고, 마침내는 나에게 (공짜로) 말을 타보겠느냐 물었다.

풀을 뜯어먹고 있던 말 한 마리를 끌고 오려는 그에게 우리가 남긴 사진이면 충분하다 말했다. 풀 뜯어먹다 말고 온 배고픈 말이 나를 차 버리면 어떡해. 한국에서 가져온 초콜릿을 그에게도 주었다. 그에게도 달콤한 것이 필요한 오후였을 것이다.







메스티아(Mestia) 마을에서 코룰디 호수까지는 10km이다. 트레킹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배낭여행객들은 마을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 여정을 택하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중간 지점에 있는 '십자가 전망대'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여행자끼리 셰어 택시(taxi sharing)를 이용하기도 한다.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빈자리가 있는 경우에 한해 중간중간 차를 세워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태운다. 일부 금액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히치하이킹처럼 무료 탑승이다.


'십자가 전망대'부터 코룰디 호수까지 트레킹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를 예상한다. 하지만 하늘에 맞닿은 설산을 바라보며 '그저'걷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 중간중간 멈춰 서서 자꾸만 카메라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코룰디 호수에 오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십자가 전망대
거대한 자연 앞에 저절로 경건해지는 마음


뭇사람들은 메스티아 코룰디호수 트레킹 코스가 유럽의 그 어느 곳에 견주어 지지 않는다고 했다. 리틀 스위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내게 조지아는 '내가 겪은 트레킹 여행지 중에 최고'는 아니었다. 여행자마다 걸어온 길과 좋아하는 길의 결은 다르기 때문이다. 계절과 날씨가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다. 그렇다고 실망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조지아만의 매력이 분명한 것은 확실하다. 드넓고 고요한 대지에 이토록 아름다운 구름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은밀하게 다정한 사람들의 평화로움 역시 오래오래 잊지 못할 소중한 감정이었다.




코룰디 호수를 오르내리며 만난 : 러시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친구들





나는 행복했고 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정작 행복한 순간에는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오직 그 행복이 끝나 먼 과거로 흘러간 다음에야 비로소 갑작스럽게, 그리고 때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순간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스인조르바




·메스티아 마을 광장에서 - 십자가 호수 까지 : 약 80~100라리 ÷ 탑승 인원수

·메스티아 마을 광장에서 - 코룰디 호수 까지 : 약 150~200라리 ÷ 탑승 인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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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여행기 매거진에 다 담지 못한 여행기는 다음 온라인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세요 :-)

예스24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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