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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Oct 27. 2019

조지아 주그디디 야간열차

주간열차 VS 야간열차 VS  바닐라 항공


트빌리시 ☛ 주그디디 ☛ 메스티아


기차를 탈 계획은 아니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메스티아에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바닐라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다. 9시간 기차를 타고 주그디디(Zugdidi)에 갔다가, 마슈로카로 갈아타고 3시간 걸려 가는 곳을 경비행기로는 50분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아의 바닐라 항공은 그리 만만치 않다.


15명 남짓 태우는 경비행기의 예약시기는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60일 전부터 수시로 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때 마침 예약 가능한 홈페이지가 열려 클릭 버튼을 눌렀다 한들, 매진이라는 팝업창이 뜨기 일쑤다. 운이 좋아 항공권 티켓을 거머쥐고, "오예!"를 외쳤다 한들 수시로 항공 스케줄이 취소되기도 한다.


그.래.도. 바닐라 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면 약 12시간 걸려서 갈 거리를 50분에 갈 수 있으니, 9만 원의 티켓값도 아깝지 않을 텐데...


나는 예약 실패의 영광을 안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시시한 위로를 건네본다.

'괜찮아. 예약했다가 취소되는 것보다는 낫지.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흑해를 안은 도시, 바투미(Batumi)행 열차가 최신식인 것에 비해 주그디디행(Zugdidi)행 열차는 매우 낡았다.



'기차'라는 탈것이 주는 희미한 낭만에 대하여.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설렘. 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몇 걸음. 다른 여행자들의 어깨와 배낭에 닿은 시선. 창 밖의 풍경을 담겠다는 의지. 사소한 시간의 흐름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기차여행을 떠난다.


산골마을 메스티아(Mestia)에서 3박 4일 일정을 계획했다. 갈 때는 주간열차를 타고, 돌아올 때는 야간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야간열차는 밤 시간 이동 즉, 숙박비를 아낀다거나 하루 여행 시간을 확보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피로가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여행 경험을 떠올려볼 때, 그게 그다지 좋은 계획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난 더 이상 생기 넘치는 이십 대가 아니잖아...' 시무룩은 걷어 치우고, 현실을 계획했다.


열차는 중간중간 아무때나 멈춰섰다가 떠나곤 했는데, 열차의 차장이나 조지아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한 쉬는시간이었던 것 같다.



귀여운 장면


주간 열차를 타고 주그디디로 향하는 배낭여행객들도 꽤 많았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기관사 바로 뒷자리인 1,2번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우리 자리에 와서 기관사가 운전하는 창문을 들여다본다.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킥킥거리며 '저것 봐.' 한다.


기차가 자꾸 '빠-앙'하고 경적소리를 낸 이유를 알았다. 시골길 느리게 달리는 기차가 왜 이렇게 자주 경적소리를 내는지 궁금했는데 저 녀석들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소나 말, 돼지가 기찻길을 건너고 있었다. 뒤뚱대며 유유히 길을 건너는 그들이 너무 귀여워 얼른 영상에 담았다.





주그디디에서 메스티아로 가려고 갈아탄 마슈로카에서. / 포르투갈 여행자 Jorge (우)


주그디디 기차역에 내리면 메스티아행 마슈로카가 잔뜩 기다리고 있다. 1, 2번에 앉아 있던 우리는 거의 꼴찌로 내렸다. 내가 탄 마슈로카에는 기차에서 내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열차 칸 사람들을 통째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내 옆에 앉은 여행자는 포르투갈에서 왔다고 했다.


"아니, 뭐라고? 거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나라야!" 반색하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게다가 이름이 Jorge 란다.

"Jorge? ‘상조르제 성(Castelo de S. Jorge)’ 할 때 그 Jorge? 그렇담 너도 Saint?" 같은 농담을 던지며 함께 웃었다.


그 사이 앞자리에 앉은 스웨덴 여행자 Jenny는 물병에 담아온 '차차(Chacha, 조지아식 보드카)'를 건네며 한 모금씩 마시라고 했다.

"그게 물이 아니라 차차였다고? 세상에나!"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태국 여행자들, 네덜란드에서 온 말 많던 핀(Finn), 이라크에서 온 알리(Ali)와 중국인 커플, 우린 외국어 번역책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3시간 30분 동안 이어갔다.








메스티아 ☛ 주그디디 ☛ 트빌리시


메스티아에서의 3박 4일이 지났다.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갈 시간. 올 때와 반대 코스를 밟는다. 야간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마슈로카를 타고 주그디디역에 속속 도착한다.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쉽지 않은 일 중 하나가 바로 '이동'이다. 마슈로카를 타고 '밤'에 달리는 3시간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조지아 운전기사 =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공식을 굳게 믿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지만.


내가 타고 온 마슈로카



귀여운 이름을 가진 '주그디디' 기차역은 더럽기로(?) 악명이 높다. 특히 화장실을 이용했던 여행객들 후기가 적나라해서 기차 타기 전 수분 섭취가 두려울 정도였다. 야간열차 내의 화장실도 더러워서 이용을 권하지 않지만 기차역 화장실은 더하다는 것이다. 


마슈로카에서 내려 9시간 기차여행을 떠나기 전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레 겁을 먹은 나는 기차역에서 점점 더 멀리 걸어가며 다른 건물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


'휴우 -'

큰길을 따라 걸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법 큰 규모의 마트를 발견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역 주변을 탐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트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기념품을 대신할만한 간식거리를 샀다.




야간열차는 주간열차보다 훨씬 낡아 보였다. 이번에도 1, 2번 칸에 올라탔다. 1등석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빨리 잠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리가 불편하고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도 나는 듯하여 쉽게 잠들지 못할까 봐 한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 30분까지 깨지 않고 '잘' 자고 일어났으니.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기차 레일의 철컹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남아있었다.



주그디디 야간열차의 기억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새겨졌다. 밤공기는 적당히 낭만적이었고, 빨간 소파의자는 적당히 드라마틱했으며.





이제 막 역을 출발하는 기차가 뒤에 남겨놓은 것은, 그레고리우스 자신의 한 부분이었다.
#리스본행야간열차





tip 1.

왕복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주간열차 경험도 꽤 괜찮아요. 주간열차 이용 시 역방향과 정방향 자리가 정해져 있으니 확인해보세요. (홈페이지에서는 좌석 지정 불가, 트빌리시 역 직접 예매 시 좌석 지정 가능)


tip2.

메스티아에서 마지막 마슈로카로 주그디디역에 도착하면 역 주변 작은 스낵바(레스토랑)가 대부분 꽉 차 있어요. 열차 출발 1시간 전까지 시간 때울 곳이 필요하니까요. 조금만 더 걸어 나오면 큰 마트가 있으니 화장실과 쇼핑을 둘 다 해결하세요.



*주간열차 1인 : 16라리

*야간열차 1인 (1등석) : 35라리

*주그디디 - 메스티아 마슈로카 1인 : 20라리


*’3박 4일은 영어로’를 검색하여 브런치에 놀러오신 분이 있네요 : -) ‘3nights 4days’ 입니다!


**

조지아 여행기 매거진에 다 담지 못한 여행기는 다음 온라인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세요 :-)

예스24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알라딘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교보문고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인터파크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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