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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Oct 29. 2019

천 년 탑이 지키는 귀여운 마을, 우쉬굴리

조지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8


우쉬굴리를 발음할 때 둥그렇게 변하는 입술이 귀엽다. 마을 사람들이 동글동글하게 생겼을 것만 같다. 마치 미어캣처럼 서서 마을을 지키는 탑(Tower)에서는 뭉게뭉게 연기가 나올 것만 같고.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대한 열망이 있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감정일 것이다.

천 년 동안 유럽 중세 스타일 마을의 모습을 지켜온 우쉬굴리(Ushguli, უშგული)로 가는 여정은 쉽지만은 않다. 낭떠러지로 이어진 외길은 뱅글뱅글 산을 따라 그려진 듯하다. 비가 오는 날엔 흙더미가 무너져 내려 꼼짝없이 갇히기도 한단다. 튼튼한 바퀴를 가진 차량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이 길도 이젠 곧 아스팔트로 깔린다 하니 지금이다, 코카서스 산맥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여행하기에 딱 좋은 시기는.



흐린 날 / 맑은 날



|우쉬굴리에 가려는데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주섬주섬 우비를 챙겨 나섰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구름이 걷히길 바랐지만 오히려 더 무거워진 모양이다. 후드득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곳곳에 생긴 물 웅덩이는 점점 더 깊어졌고,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가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멈추지 않는 비에 망연자실... 트레킹을 포기하고, 되돌아갈 때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카페에서 비를 피해야겠다.


우쉬굴리에 있는 카페들은 죄다 귀엽다. 몇 개 안 되는 게스트하우스에 딸려 있는 것 외에 두세 개뿐이다. 마을에서 가장 떨어진 즉, 산골짜기 가까이 있는 <Cafe Lemi (레미)> 를 찾았다.


끼익- 나무 문을 열고 보니, 비 오는 날 오전에 찾아온 손님은 우리뿐이다. 영어를 못하는 부모님을 도와 예쁜 소녀가 함께 카페 일을 돕는 듯했다. 스바네티 그림이 그려진 맥주와 따뜻한 커피, 그리고 식사를 대신할 카차푸리(Kachapuri)를 주문했다. 치즈가 쫘악 늘어나는 조지아식 화덕구이 피자(라 쓰고, 빈대떡이라고 부르겠다)는 느끼한 거 못 먹겠다 하는 사람도 두세 조각은 거뜬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 있. 다. 차가워진 손과 마음이 다시 따뜻해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었다. 마침 밀린 일기를 쓸 시간도 생겼다. 일기를 쓰다가 그림도 그렸다. 소녀에게 주었더니 활짝 웃었다. 웃을 때 소녀의 짙은 눈썹도 함께 웃었다.


"마들로바(მადლობა, Thank you)"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운 시간을 나누었다.








|해가 쨍한 날, 우쉬굴리를 다시 찾았다.


다음 날 해가 쨍하다. 우리는 메스티아의 어느 예쁜 산자락에 있었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예쁜 곳에 있었지만, 우쉬굴리의 예쁨을 다시 보고 싶었다. 오늘은 독일인 부부와 함께 차에 올랐다. 5년 만에 우쉬굴리를 다시 찾는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는 것만큼 로맨틱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은 조금 더 멀리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걸을 수 있겠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작은 마을 우쉬굴리에서 숙박을 하지 않는 이상 일행과 함께 돌아가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 (우쉬굴리에서의 하룻밤도 생각해보았지만 자주 발생한다는 단전과 단수 문제로 단념했다)


비 오는 날에 만났던 돼지 가족과 다시 마주쳤다. 꿀꿀거리는 아기 돼지를 아무래도 처음 본 것 같다. 밥 달라고 꿀꿀 엄마 돼지를 졸졸 따라가는 모습이 새삼 귀엽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알록달록한 소의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만큼 커다란 독수리가 하늘을 빙빙 돌며 그림자를 만든다. 독수리가 공격할지 모르니 드론은 날리지 말라던 그의 말이 진짜였나 보다.



 파란 하늘이 주는 청량함에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켜켜이 겹쳐진 산등성이 사이로 흐르는 물과 솟아오른 설산 꼭대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었다. 걷는 것이 그저 좋았다. 오랜 세월 침묵하고 있는 거대한 산은 그저 확고부동하게 서있었다. 변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마치 파라다이스 같은 상태가 되어 나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또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식으로 연결되는 그런 상태 말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




*조지아의 스바네티(Svaneti) 지역에서도 Upper Svaneti에 속하는 우쉬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어 있다.


*메스티아 ☞ 우쉬굴리 : 1인 왕복 40라리




**

조지아 여행기 매거진에 다 담지 못한 여행기는 다음 온라인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세요 :-)

예스24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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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비오는 날 우쉬굴리 포스팅

https://blog.naver.com/erinhottie/221711547323

블로그 맑은 날 우쉬굴리 포스팅

https://blog.naver.com/erinhottie/22171474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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