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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Nov 26. 2019

라구스(Lagos)에서의 해피엔딩!

포르투갈 남부 여행


어떠면 이렇게도 조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는 도대체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왠지 낮잠 자는 시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도, 동물도, 벌레도, 초목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은 고요한 오후였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아침에는 바다에 다녀왔다. 짙푸른 바다의 숨결이 훅 다가올 때 맡은 세상의 냄새를 기억한다. 생동감 넘치는 바다 물결에 밀려왔다 밀려가버린 생각들은 잊기로 했다. 바람이 불자 빨래를 널고 있던 할머니는 어쩐 일인지 내게 웃어주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도 두어 번 더 손을 흔들어 보았다. 때마침 후드득 비가 내려 얼른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타박타박 빗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포르투갈 남부식 대구 요리를 찾아, Adega Da Marina

12P.M.- 12A.M.
Av. dos Descobrimentos 35, 8600-645 Lagos, Portugal.


세상에는 비슷한 마을이 존재한다. 라구스(라고스)도 그런 셈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멈출 것만 같았고, 그래서 우린 우산을 사는 대신 길가에 세워진 파라솔 아래에 가만히 서 있기로 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더 모였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이내 더 이상 빗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5분쯤 흘렀을까. 촉촉한 땅에 마른 햇살이 비추어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나는 동네 맛집이 아닌, 규모가 조금 큰 식당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 곳에는 커다란 공간을 테이블로 촘촘히 채워놨지만 여행객들끼리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단 기대감은 들지 않는다. 밥만 먹고 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은 복잡한 맛집은 피하고 보는 우리네 여행자들이지만 이 곳에도 매력은 있었다. 뾰족한 지붕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높은 천장, 천장을 가득 메운 각국의 축구팀 스카프, 각종 상을 휩쓸었다는 표식이 가득한 벽면, 알고 보니 이곳은 여행자들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었다.


해산물을 직접 잡아 요리하는 이 곳의 또 다른 장점은 신선도에 반하는 저렴한 가격이다. 같은 물고기라도 꽤 다양한 요리방법에 따른 메뉴를 직접 고를 수 있다. 대부분 kg단위의 가격이 제시되어 있지만 주문받은 이는 알아서 적정량을 내어 온다. (많이 먹고 싶다면  kg단위의 양을 제시하면 좋겠다.)


포르투갈에서 흔히 먹던 바칼라우(Bacalhau)와 연어구이를 주문했다. 바칼라우는 대구요리를 뜻하는데, 집집마다 요리 방식이 다를 정도로 다양하게 대구를 맛볼 수 있다. 식당에서 먹는 바칼라우 맛보기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Bacalhau com natas는 크림 대구 요리, Bolinhos de Bacalhau는 대구살 볼, Bacalhau à Brás는 각종 야채와 감자, 계란 등과 함께 한 대구 요리, Bacalhau na Brasa는 구운 대구 요리를 뜻한다.) 포르투갈 요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구운 감자는 짭조름한 생선구이에 어울리는 사이드 메뉴이다.



1993년에 시작한 이 식당은 2018년에 25주년을 기념하였다.

Bacalhau na Brasa (Grilled Codfish) 11.65

・Grilled Salmon (kg./35.35)  €14.85

・맥주 €2.6 / 물 330ml €1.15







커피 마시러 가는 길, Artesão Café 

Marina De Lagos Lojas 11/12, 8600-780 Lagos, Portugal
8A.M.- 11P.M.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바람이 세고 차다. 구름과 해가 번갈아 나는 동안 간간이 비를 흩뿌렸다. 오늘은 계속 걷기로 한다. 다리를 건너 식당 반대편 요트가 가득 정박한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슷한 풍경인 것만 같다. Marina로 향하는 다리(bridge)는 날씨 좋은 날엔 사람들로 가득 찬다는데, 2월의 어느 날엔 이렇게 우리 밖에 없다. 쫄래쫄래 따라오던 강아지 한 마리가 기억날 뿐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겨울 포르투갈의 하늘


마리나(Marina) 앞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힙한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카페 차양 아래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노인의 모습이 그윽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 곳이 내세우는 것은 수제 음료와 유기농식 간단 식사! 그뿐이 아닌 것만 같다. 빨간 스웨터에 깡총한 청바지를 입고 활짝 웃는 직원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으니.


매끄럽게 마감한 나무 메뉴판을 쓰다듬으며, '예쁘다' 감탄하자마자 센스 있는 메뉴 이름을 읽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Mexican Affair, Pillow Talk, A Night in Peru, Call it a Fig 같은 이름을 제치고 주문한 것은 Happy Ending. 하루의 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초콜릿 가나쉬에 코냑, 그리고 버터가 들어간 칵테일이라니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었으니 말이죠...


Happy Ending  5.5

Algarve Coffee  5.5









이 작은 마을에도 책방이 있다고?, The Owl Story Book Store 

R. Marreiros Netto, 8600-754 Lagos, Portugal
10A.M. - 5:30P.M. (토 ~2:30P.M. 일요일 휴무)



여행지에서의 책방 여행은 작은 마을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름마저 귀여운 <부엉이 이야기 서점>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주인공이셨다. 문을 열면 보이는 초록빛 소파 옆에는 여행자들이 되팔고 간 책들과 시집이 꽂혀 있다. 펭귄북스의 <Portuguese Phrase>를 구입했다. 책 냄새가 가득한 이런 아담한 공간에서는 좀처럼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반가운 책들의 제목을 읊조리는 일은 그제야 멈추었다.




그렇게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니 채 비가 마르지 않은 담벼락에서 하얀 바람이 불어왔다. 절대 막다른 골목을 마주할 리 없을 것만 같은,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살다가 길을 잃을 뻔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걷다 보니 2월의 짧은 해는 금세 떨어지고 말았다. 작은 창 틈으로 보이는 그들만의 세상을 한참 서서 바라보기도 하였다. 우리가 사는 1분 1초가 여행이었다.







어디에선지는 모르지만 바람이 불어와서는 반쯤 자란 나뭇잎들을 추켜올리자 공중에는 은회색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때는 해 질 녘이어서 색깔들이 더 강렬해지고, 자줏빛 그리고 금빛이 흥분하기 쉬운 심장의 맥박처럼 창유리에서 불타오르는 시간,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상의 아름다움이 드러났다가 곧 사라지게 될 시간이었지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오늘도 방문하여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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