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친구들과 맺은 인연
*<쿠바에서 온 편지> 매거진은, 쿠바에 여행 갔다가 쿠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쿠바로 떠나버린 린다 언니와 제가 주고받는 편지입니다. 매거진 구독과 함께 쿠바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공감해주세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린다 언니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쿠바에 살아요>라는 매거진을 발행하여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쿠바에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
쿠바에서 보낸 편지 #9
From Linda
에린아,
한국에서는 송년회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모두가 바쁜 것 같은데, 여기는 12월이어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날씨라 연말이라는 게 실감이 잘 안 나. 연말에는 두꺼운 롱 코트에 멋들어진 부츠를 신고 추워서 호호 손을 불면서 다녀야 하는데 말이지.(요즘 들어 내 최애 부츠가 무척이나 생각이 나네… 잉)
내가 쿠바에 온 지도 일 년이 지났어. 쿠바에 있으니 시간이 가는 건지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 느릿느릿해. 다들 쿠바는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 하잖아, 그런데 왜 벌써 일 년이 지나갔냐고! 난 일주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는데 말이지…
나의 쿠바 살이 1주년 된 날은 멕시코에서 어마 무시한 쇼핑을 마치고 쿠바로 돌아온 날이었어. 수하물 하나를 추가해서 총 트렁크가 2개였는데 공항에 가서 무게를 달아보니 둘 다 무게가 오버가 되었더라고. 무게 맞추는 게 힘들어서 웬만하면 무게 추가 비용을 내려고 했어. 그런데 그 비용이 수하물 하나 추가 비용보다 훨씬 비싸서 바로 포기하고 공항에서 약 한 시간 동안 기를 쓰고 가방당 무게 23.9kg에 맞추느라 진을 다 빼버렸네.(수하물당 23kg인데 소수점은 봐주더라고) 그래서 트렁크 2개에 핸드캐리 가방까지 합치면 총 60kg가 좀 못 되는 무게를 가지고 쿠바로 돌아오는 거였지.
지난 6월에는 쿠바에서 인터젯 항공을 타고 멕시코를 갔었는데 인터젯은 수하물 무게가 25kg였어. 게다가 운이 좋게도 내 추가 캐리어 무게가 30kg였는데도 무게 오버에 대해서는 청구를 하지 않고 가방 하나 추가 비용만 청구를 해서 거의 70kg를 혼자서 들고 왔었어.
그때에 비하면 수하물이 약 10kg 이 줄어든 걸 보니, 그때보다 쇼핑을 덜 했다는 뜻일까?
정답은 노우(No)!
사실은 수하물 하나 정도의 물건이 더 있는데 멕시코 시티 한인 민박집에 맡겨 두고 왔어. 성격 좋은 민박집 사장님이 1월에 쿠바에 오신다고 해서 그때 내가 쇼핑한 물건들을 가져다주기로 했거든. 물론 수하물 추가 비용은 내가 부담을 하지만 내 소중한 물건들을 가져다주시겠다고 해서 어찌나 고맙던지. 덕분에 맘 편하게 막판 쇼핑을 더 할 수 있었지. ㅎㅎ
3개월에 한 번씩 멕시코로 장을 보러 가는 나는, 이번에는 한인민박에서 열흘 머물렀는데도 원하는 걸 쇼핑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아니더라고... 코스트코부터 시작을 해서 홈디포, 월마트, 한인마트, 슈퍼마켓 3군데(수페라 마, 소리아나, 아우레라), 일요시장, 약국 여러 군데, 미니소 최소 5 지점들, 대형 쇼핑몰과 리버풀 백화점에 가서 몇 번씩을 돌면서 신중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샀는데 쇼핑은 왜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지!
나도 이제는 쿠바에서 ‘멋’이라는 걸 좀 내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멕시코에 가면 이쁜 옷을 한 벌 사 와야지!’ 하고 가기 전에 마음을 먹었었는데… 결국 집안 용품과 생필품을 사느라 내 옷은 이번에도 물 건너가 버렸어.
아줌마가 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옷보다는 새 집 부엌에 필요한 멋진 수전을 코스트코에서 발견했을 때, 그리고 각종 소켓들이랑 스위치 등을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알려주어 멕시코에도 홈디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훨씬 기쁨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
홈디포에는 집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가 있으니 앞으로는 멕시코에 장 보러 올 때 수월할 것 같아. 게다가 규모가 어찌나 큰 지 시간상 다 둘러보지도 못했어. 쇼핑리스트에 있던 수건걸이 및 컵 홀더 등이 담긴 세트 한 박스랑 전기 스위치만 종류별로 20개 넘게 샀어. 그뿐이 아니야. 코스트코, 월마트 등 가는 곳마다 LED 전구를 종류별로 샀더니 전구만 또 20개가 넘더라고. 아바나에서 지난 11월에 아바나 건국 500주년 기념으로 새로 오픈한 인테리어(?) 샵에 갔더니 한 사람당 전구를 2개씩만 살 수 있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한이 되었나 봐. ㅎㅎ
발이 아픈 조단을 위해 발에 필요한 용품들도 이것저것 종류별로 사고 이번에는 평소에 안 사던 영양제까지 챙겼어. 쿠바에 살아보니 필요한 영양소를 음식으로 골고루 섭취하는 건 힘들어서 영양제를 통해서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오메가 3도 사고 비타민제도 종류별로 여러 개를 샀지. 오래 살지 않고, 짧게 살더라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영양제에 손이 가 버린 건 인간의 본능일까?
참, 조단은 얼마 전에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어. 새 집 공사를 직접 하면서 무거운 걸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너무 열심히 해서 허리에 무리가 갔나 봐. 조단도 나도 그동안 디스크가 파열된지도 모르고 계속 엄마가 보내주신 파스만 열심히 붙이고 운동까지 했는데... 내가 멕시코에 있는 동안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디스크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며칠 전에는 척추 CT를 찍었는데 열흘 후에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이 결과가 나오면 정확하게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알게 될 것 같아. 현재 허리를 못 구부리고 무거운 건 아예 들면 안 돼서 조심조심하는 중이야.
쿠바에서 코딱지 만한 집 하나를 사면서 너무 많은 일들을 겪게 되네. 다른 건 몰라도 건강에 이상이 오니 속상하긴 해. 이로써 올해 안에 새 집 공사를 마치겠다는 나의 목표는 또 연기가 되어버렸지만 일단 조단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지켜봐야겠어.
참 에린아,
이번에 멕시코에 있는 동안 한인 민박집 사장님들이랑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총 11명이 봉고 한 대를 빌려서 일박 이일 동안 아주 멋들어진 온천에 다녀왔어. 무려 자연온천이래! 멕시코 시티에서 4~5시간 떨어진 산에 있는 이 곳은 가는 길이 몹시 험난해서 운전을 했던 루카스가 아주 고생을 많이 했지. 쿠바에 있으면서 온천이 너무 그리웠는데 그야말로 이런 넘나 멋진 온천은 그야말로 내게 천국 이었어! 천국이 따로 없는 그 곳은 이름도 특이해.
‘똘랑똥꼬’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라면을 끓여 먹고 폭포수 같은 온천에서 물세례도 흠뻑 맞으며 동굴 구경을 했어. 다음 날은 절경이 끝내주는 예쁜 곳에서 온천을 하며 루카스와 인생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기도 했어. 이 곳이 인스타에 ‘똘랑꽁꼬’를 치면 나오는 바로 그곳이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첫날밤에 먹었던 숯불구이 삼겹살(숯을 준비해 갔음)에 캠프파이어였지! 일행들 대부분이 어린 동생들이고 내 위에 언니 한 분이 계셨는데 11명 모두가 하나같이 성격들이 좋아서 함께 있는 내내 즐거웠어. 멤버 중에 유명한 유투버도 있었고(‘비보이의 세계일주’의 ‘브루스 리’), 니까라과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하고 유투브를 시작한, 스페인어를 잘하는 루카스(Lucas Coreano TV)라는 멋진 친구도 있었어. 막내 수림이는 세계여행을 하는 대학생인데 대화를 해 보니 어찌나 당차고 똑소리가 나는지. 인스타에서 유명한 인싸라고 해서 수림이 인스타를 보니 좋아요가 아주 많더라고. 슬기, 현아, 진아는 멕시코 여행 다음 계획이 쿠바여서 내가 아바나 숙소도 예약해주고, 아바나에서 다시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쿠바 얘기도 해 주었지.
그리고 에린아,
예전에 꼬망스네가 민박집을 할 때(9월부터 까사 36.5로 바뀌면서 사장님도 바뀌었어) 알게 된 동생들이 올 10월과 11월에 쿠바에 놀러 와서 이것저것 좀 도와줬거든. 그랬더니 이번에 내가 멕시티에 왔다고 동생들 4명이 민박집에 나를 보러 온 거야. 성격 좋은 두 미녀 사장님들이랑 코스트코에서 최상급 쇠고기와 연어와 아스파라거스를 사 와서 파티를 했어. 요리를 기똥차게 잘하는 사장님이 처음으로 구워 봤다는 스테이크와 연어초밥은 정말이지 입이 넣자마자 녹아버려서 지금도 계속 생각이 맴돌아.
쿠바에서는 소고기를 잘 팔지도 않지만 팔아도 질겨서 맛이 없거든. 그래서 멕시코에 가면 맛난 소고기를 많이 먹고 오는 편인데,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지 않고도 민박집에서 입도 배도 무지 채웠어. 동생들이랑 오후 내내 맛난 것 먹고 쿠바 얘기하면서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는데, 우준이와 소정이 커플이 멕시코를 떠나기 전에 나를 한식당에 초대해서 저녁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거야. 결국 셋이서 한식당이 있는 소나로사에서 다시 만났어. 아리랑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는데 완전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었어. 게다가 반찬들이 어쩜 다 맛나던지! 특히 김치는 내가 회사 다닐 때 종종 가던 명동칼국수 김치 맛이랑 똑같아서 김치만 두 접시를 비워버렸네. ㅎㅎ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식사 대접을 받으니 너무 고마우면서도 민망해서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멕시코에서 만난 인연이 쿠바로 이어졌다가 다시 멕시코에서 만나고… 이러다가 또 다른 곳에서 언제 어떻게 만날지는 아무도 모르니 이런 만남이 참 재미나고 신기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더 많이 베풀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절로 하게 되네.
우준이는, 피델이랑 체 게바라가 편지 맨 마지막에 쓰던 Patria o muerte!(조국 아니면 죽음을!)를 패러디해서 내 인스타에 Linda o muerte!(린다 아니면 죽음을!)를 적어 놔서 빵 터지기도 했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건, 열흘 동안 멕시티 한인민박에서 맛난 것도 실컷 먹고 동생들한테 대접도 잘 받고 좋은 사람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멕시코에서부터 쌓여 있던 피로가 안 풀려서인지, 쇼핑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일 년이 지났다는 부담감(?)때문인지 쿠바에 돌아와서 기력이 하나도 없는 거야. 아바나에 도착하자마자 멕시코에서 먼저 와 있던 동생들을 만나면서 푹 쉬지 못한 건 있지만 그 정도는 내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리고 타인을 도와주면서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니까.
그건 오산이었어. 일 년 간 쿠바에서 한 번도 겪지 않았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내 감정도 오르락내리락하더라고. 결국 그 기간 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쿠바인과 한 번, 전화로 지인과 한번 해서 총 두 번의 충돌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기가 약해져서 귀신에 씌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결정적으로 내가 기운을 되찾고 기분이 좋아진 건 쿠바 영화관에 처음 간 날이었어. 아바나에서는 ‘제41회 아바나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데 화요일 밤에 우연히 갔던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게 된 거야. 일 년 만에 제대로 한국의 감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감성이 내 안으로 와서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다음 날 기분이 뿅! 하고 좋아진 거야. 이제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내 모습을 찾게 되었어.
멕시코 가기 전에 써 놓았던 글이 한 편 있었는데 저장만 해 놓고 발행을 못 했네. 이제 정신 차렸으니 다음 주에는 나만의 이야기를 꼭 한 편 써서 올려야겠어. 늘어나는 구독자들에게 보답을 못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연말이라 정신없을 에린이도 건강 잘 챙기고 한 해 마무리 멋지게 하기를! 나는 다음 주말에 오는 혜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바라데로에서 보낼 생각에 설레고 있어.
미리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에린아!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9
From Erin
언니 SNS에서 사진도 보고, 메시지도 자주 하지만 이렇게 받는 편지는 느낌이 색다른 것 같아. 기다려지는 편지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읽고 상상해보고 그렇게 마치 맥주 한 잔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듣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야.
쿠바에 간 언니가 멕시코로 처음 갔던 사연은 비자(visa) 갱신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쿠바 영주권자이자 세계 최강 대한민국 여권 소유자로서 당당하게 쇼핑 여행을 하네!
쿠바에서는 기본 생필품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일이었을 거야. 한국에서 쉽게 구하는 두루마리 휴지 조차 사기 힘든 곳이니 쿠바에서 이제 언니 집은 보물이 가득한 집? :-)
지난 주말부터 송년모임이 시작되었어. 언니가 없는 만싹 모임은 아쉽기 그지없으니, 쿠바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어. 2월에 쿠바로 간다는 나를 모두가 부러워했다는 건 안 봐도 알겠지?
참, 쿠바에서도 기생충을 상영했다니! 한국 영화를 감상한 후에야 언니 몸과 마음이 나아졌다고 느꼈을 정도면 언니도 모르게 homesick을 앓고 있나 봐... 쿠바 집 해결 문제와 동시에 조단이도 아프니 잠깐 약해진 걸까?
말하지 않아도 시시때때로 무너지고 눈물 나는 날도 있을 텐데 항상 밝은 이야기로 위로해주는 언니, 가끔은 감정을 토해내며 울기도 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쿠바로 여행 간 혜리와 함께라 더욱 즐겁겠지? 조금만 기다려, 2월 1일엔 내가 3겹 두루마리 휴지부터 라면까지, 이것저것 많이 싸갈게!
P.S.
Linda o muerte!(린다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멋진 여자, 쿠바댁 린다를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