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주세요 :-)
*<쿠바에서 온 편지> 매거진은, 쿠바에 여행 갔다가 쿠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쿠바로 떠나버린 린다 언니와 제가 주고받는 편지입니다. 매거진 구독과 함께 쿠바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공감해주세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린다 언니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쿠바에 살아요>라는 매거진을 발행하여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쿠바에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
쿠바에서 보낸 편지 #8
From Linda
올라 에린!
쿠바도 11월이 되니 그 길던 해가 짧아지고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언제 여름이었는지 모르게 날씨가 변하고 있네. 얼마 전에는 썸머타임이 해제되어 다시 한국이랑 14시간 차이가 나게 되었어.
한국은 사계절이 있지만 여름만 있을 줄 알았던 이 나라에도 날씨의 변화가 매 달 느껴지다 보니 신기하기도 해. 하지만 낮에는 아직 더워서 밖에 나갔다 오면 바로 샤워를 해야 하네. 1월을 제외하고는 늘 그런 거 같아.
아날로그 손글씨 쿠바 영주권
에린아, 나에게 ‘시월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조단과 내가 2년 전 10월에 아바나에서 처음 만나서 1년 전 10월에 결혼을 했잖아. 즉, 우리 기념일 두 개가 모두 10월이야. (원래, 만난 지 1년 되는 날에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날이 수요일이라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 맞춰 결혼을 했지. 열흘 간격으로 기념일이 두 개가 되어 버렸어.)
10월 초에 드디어 나의 쿠바 영주권이 나왔어!
쿠바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에서 영주권을 받은 사람은 아마 내가 넘버 포(4)인 것 같아. 영주권을 신청한 지 4개월여 만에 나왔어! 이렇게 빨리 나온 경우는 없었는데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되어준 거지. 내가 돈을 벌지는 않고 열심히 인출하고 쓰면서 쿠바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준 게 참고가 되어 빨리 나온 게 아닌가 몰라. ㅎㅎ
월요일에 영주권을 받기 전 주 금요일에 출입국에서 시댁으로 전화를 했었대. 그리고는 ‘영주권이 다 준비되었으니 받으러 오세요!’가 아니라, ‘출입국에 오면 어떻게 될지 알려줄 테니 월요일에 출입국에 오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하시는 거야.
영주권을 받으러 가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목욕재계를 하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가다듬었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영주권이 거절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떨리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어.
내 차례가 되어 사무실로 들어가니, 내 비자를 연장했던 여자 심사관이 나를 보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어.
“영주권 받으러 왔지? 축하해!”
다른 심사관도 덩달아 축하한다고 해 주셔서 드디어 내가 영주권을 받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축하를 받으니 기뻐서 나도 함빡 웃으며 고맙다고 했지.
내 담당 심사관 앞에 조단이랑 둘이 앉았어. 그 날의 내 담당인 남자 심사관이 “축하합니다!” 하고 하시며 (그동안 출입국에 자주 가서 이 분도 아는 분이야) 내 파일을 꺼냈어. 아날로그의 선두주자인 나라답게 서랍에서 영주권으로 추정되는 카드 하나를 꺼내시더니 “인지대 가져왔죠?”라고 당연하게 물어보시는 거야. 우리는 몰라서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10 쿡짜리(약 12,500원) 인지대가 있어야 영주권이 발급된다는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단이 벌떡 일어나서 쏜살같이 인지대를 사러 은행으로 출동했어.
조단이 떠난 사이, 심사관은 내가 보는 앞에서 카드 앞 뒷면에 내 정보를 손글씨로 적더니 내용 확인을 하라고 내게 카드를 주셨어. 오타가 없는지 확인한 후, 파일에서 내 사진을 꺼내시더라고. 영주권 신청할 때 사진 4장을 제출했거든. 그때는 사진 크기에 대한 안내가 없었거든? 그런데 그 사진을 카드에 대어 보더니 사진이 커서 목이 댕강 잘릴 거라며 작은 사진이 없냐는 거야.
당연히 없지! 이번에는 출입국 사무소 코너를 돌면 사진관이 있으니 신분증용 사진을 다시 찍어 오라더라고. 어이는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군소리 없이 ‘예’하며 냉큼 사진관을 찾아갔어.
사진관이라고 할 것도 없었어. 상상이 가지? 벽에 작은 흰 천이 있었는데 그 앞에 앉으라고 하더라. 좀 오래돼 보이는 디지털카메라로 내 얼굴을 찍었어. 첫 번째 사진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찍었는데 그냥저냥 볼만해서 그걸로 현상했어. 한국 사진관에서 해 주는 포토샵 기술은 이곳에 는 존재하지 않아. ㅎㅎ
가로세로 1.5cm 인 작은 사진 5장을 사서 다시 해당 심사관에게 사진 1장을 주었어. 그는 카드 왼쪽 상단에 정성스레 풀을 발라서 사진을 붙이시고는 엄지손가락을 빌려달라고 하셨어. 거의 잘 찍히지도 않는 인주에 내 엄지손가락을 꾹 눌렀다가 사진 아래에 내 손가락 지문을 찍었어. 그리고는 종이를 찢어서 주셨지. 엄지 손가락에 묻은 인주 닦으라고... 가방 안에 휴지가 있었지만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 종이로 손가락을 깨끗이 닦았어.
심사관이 카드를 가지고 잠시 사라지셨는데 금방 다시 돌아오셨어. 깜빡하고 카드 뒷면에 내 사인을 안 받았던 게야. 카드 뒷면 하단에 사인을 해 주었더니 다시 사라지셨어. 그 사이에 은행에 인지대를 사러 간 조단이 돌아왔어. 조금 후에 심사관이 돌아오셨고 그의 손에는 코팅된 카드 하나가 있었어. 그게 바로 나의 쿠바 영주권이었어.
10년짜리 영주권을 받으니 감격스럽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하더라고. 쿠바가 좀 더 가까이 느껴졌어. 간혹 사람들이 영주권을 받으면 내 국적이 쿠바가 되냐고 물어보던데, 영주권이 있다고 해서 국적까지 바뀌는 건 아니야. 대한민국 여권이 얼마나 좋은데 국적을 왜 바꾸겠어? ㅎㅎ
1년 이상 해외 거주를 하게 되면 영주권이 자동 소멸된다고 해. 아마 10년 내로는 다른 나라에 1년 이상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
쿠바 영주권으로 내 명의로 된 집을 살 수가 있어. 각종 입장권을 24배 적은 금액으로 내고, 가족부를 만들면 식품 배급을 받을 수 있어.
사람들이 배급이라고 하면 공짜로 주는 걸로 생각을 하는데 쿠바에서의 배급은 공짜는 아니야. 아주 적은 금액을 내고 정부에서 지정한 식품을 사는 거야. 쌀, 콩, 설탕, 소금, 계란, 빵, 닭고기(혹은 생선), 우유(아기가 있는 경우) 정도인데 양은 얼마 되지 않아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도야. 야채, 과일은 아예 포함이 안 되니 배급받은 음식으로만 살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있다고 봐야겠지.
*가족부 : 쿠바에서는 ‘Libreta(리브레따) 노트’라고 한다. 가족 이름과 매달 살 수 있는 품목이 적혀 있다.
영주권을 받고 기분이 좋아서 조단 친구가 일하는 바에 놀러 갔어. 거긴 모히토 한 잔에 800원밖에 안 해. 바에서 만난 (컴퓨터 해킹하는) 똑똑한 대학생들이랑 친구도 되었단다.
연이은 기념일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만난 지 2주년 된 날에는 아바나에서 유명한 이탈리안 피자집에서 간단히 식사만 했어. 로맨틱한 레스토랑에 가고 싶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이 추천해준 곳이라 가봤지. 하필 그 날 피자가 별로 당기지 않아서 대충 먹었어. 물론 조단은 아주 맛나게 잘 먹었지. ㅎㅎ
열흘 후 우리는 일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쿠바 최대의 휴양지 바라데로에 갔어. 바라데로에서 가장 새 호텔인 ‘멜리아 인터내셔널’이라는 호텔을 큰 맘먹고 예약했거든. 10월까지는 쿠바 비수기라 가격이 착해서 갈 수 있었지. 성수기라면 고민을 좀 더 했을 거야. ㅎㅎ
역시 5성급 새 호텔이라 도착하니 분위기가 달랐어. 게다가 인터넷이 무제한이라니! 쿠바에서는 인터넷 무제한은 엄청난 일이니까! 물론 인터넷에 몇 분간 접속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끊어져서 계속 ID와 password를 다시 입력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긴 해도 쿠바에서 그쯤은 수고스러움에 포함이 되지 않아. 인터넷 속도도 빨라서 인스타에 동영상도 금세 올라가더라고. 아바나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동영상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거든.
바닷가로 가는 길 양쪽으로 큰 수영장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수영장 2층 발코니에서 색소폰을 불고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치는데... 그 음악이 어찌나 로맨틱 한지! 호텔 앞 프라이빗 비치도 두 말할 필요 없이 다 좋았는데 뷔페식당 식사가 5성급의 기대에는 못 미쳤어. 비수기여서 일지도 몰라. 다행히 나는 음식을 많이 안 먹고, 조단은 아무거나 잘 먹으니 우리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지.
방 안에 비치 타월이 있어서 언제든 수영장이든 바닷가에 갈 수가 있었고 미니바에 맥주며 음료가 들어 있는 것도 우리에겐 모두 ‘와우!’ 였어.
지금까지 바라데로에서는 4성급 호텔만 갔었는데 그때마다 비치 타월이 없어서 2박 3일 동안 한 번도 사용을 못 한 곳도 있었고, 미니바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게 정상이었고, 인터넷은 리셉션에서 카드를 사서 로비에서만 되는 게 당연했거든.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던 우리에게 이 호텔은 거의 천국만 같았어.
(참, 바라데로 호텔은 올 인클루시브 호텔들이라 식사, 음료, 해변 액티비티 등 모든 게 숙박비에 포함이 되어 있어)
꿈같은 2박 3일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고 우린 다시 아바나의 현실로 돌아왔어.
아바나 대학교에서 모범생이 되다
참 에린아, 10월 1일부터 아바나 대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 4월에 한 달간 어학반에서 advanced level을 이수했었고, 이번에는 advanced level 이상인 학생들이 쿠바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공부를 하는 장기 코스 과정이야. 같이 연극도 보러 가고, 유명한 쿠바 영화에 대해서도 토론하고, 쿠바의 문화, 역사, 경제 등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아.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 독일 학생들, 스웨덴 친구, 한국 동생 모두 스페인어를 너무 잘해서 나는 말하기 실력이 좀 떨어지지만 말이야, 쿠바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른 나라 친구들의 생각도 알 수 있어서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
10월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께서 한 달 동안의 수업 태도 및 실력에 대해서 평가는 하는데, ‘린다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speaking은 약간 부족하지만 수업태도가 좋고 부족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아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보이니 다들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며, 감동스러울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 (모두 20대들인데 나만 40대 아줌마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ㅎㅎ)
어쨌든 칭찬을 받으니 기분도 좋고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과외도 받아볼까 해. 이왕 공부하는 거 이 곳 현지인처럼 말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거든.
아바나 홍보대사를 꿈꾸며...
에린아, 나의 오지랖은 점점 강도가 더해져서 지인뿐 아니라 쿠바에 여행자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열일 제치고 달려가서 도와주고 있어. 어려움 때문에 아바나가 싫어지려 했던 그들이 아바나가 너무 좋아졌다고 할 때,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으쓱하기도 해.
영주권을 받고 난 후 내가 아바나 시민의 일부라고 생각되어서일까? 다른 사람들 도와주러 여기저기 다니는 나를 보면서 조단이가 늘 하는 말이 있어.
“자기, 쿠바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생기면 자기가 대사를 해야 해. 자기처럼 이렇게 오지랖 넓은 사람은 잘 없을 거야.(정확히 번역을 하면, 다른 사람들 일에 적극적인).”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나로 인해 아바나가 그리고 쿠바가 좋아지면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게 아주 보람될 것 같아.
네이버 포털 <연애결혼> 메인 섹션을 장식하다
참, 10월에 좋은 일이 또 하나 있었네!
내 브런치 글을 읽고 <네이버 연애. 결혼> 섹션 편집자분이 연락하셔서 나와 조단의 결혼 이야기가 네이버 메인에 올랐잖아(클릭하면 이동합니다). 공식 사이트에 우리의 이야기가 올라가는 게 쑥스럽기도 했지만 주위에서 응원을 많이 해 주셔서 반응도 좋았던 것 같아. 이 모든 게 다 브런치 덕분이고 에린이 덕분이지.
요즘 인스타 사진들 보니 한국에 단풍이 말도 못 하게 예쁘던데,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고운 풍경들 어여쁜 에린이 눈과 마음에 가득 많이 담아두길 바라.
오늘 얘기가 너무 길었네. 시월에 이렇게 일이 많았단다.
또 연락할게.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8
From Erin
어느덧 가을인가 싶어. 이 즈음에만 느낄 수 있는 가을 정취를 놓쳐버린 건 아닌가 해. 하루라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말아서 이젠 어느덧 겨울인가 하거든. 바스락거리며 낙엽 밟는 소리를 몇 번 느낄 새도 없이 곧 뽀드득 새하얀 눈을 밟게 되겠지? 이렇게 1년이 가버린다는 놀라운 사실!
후회나 아쉬움은 조금만 느껴야지, 남은 두 달은 단단한 알맹이 깨듯 살아야지!
와우, 언니의 긴 편지를 읽고 나니 함께 동봉해준 언니의 기쁨과 열정과 소소한 행복이 느껴져서 잠시나마 뜨거워졌어. 우리가 처음 편지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언니는 힘든 일이 많았고, 몰래 울기도 했고, 강한 모습 무너뜨리지 않으려 내색도 잘 안 했는데... 이 모든 걸 잘 이겨냈네.
두 번, 세 번 말하지만 언니와 조단이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야, 정말 축하해(하트).
오랜만에 받은 편지인 만큼 할 말이 쌓여 길어졌으니, 나는 축하로 답장을 마무리할게.
브런치 독자들에게는 지루할 틈을 남기면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잘 지내고 있어,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