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보내는 편지
*<쿠바에서 온 편지> 매거진은, 쿠바에 여행 갔다가 쿠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쿠바로 떠나버린 린다 언니와 제가 주고받는 편지입니다. 매거진 첫 번째 글부터 읽고, 쿠바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함께 공감해주세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린다 언니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쿠바에 살아요>라는 매거진을 발행하여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쿠바에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
쿠바에서 보내는 편지 #7
From Linda
에린은 아직 여행 중일까? 아님 여행에서 잘 돌아왔을까?
쿠바에 와서 생활 한 지도 벌써 10개월째가 되었네.(시간이 멈춘 나라인데 왜 이리 빨리 간 거야?) 그동안 난 이사를 5번 했고 지금 6번째 집에서 생활중이야. 이사를 자주 하니까 마음도 불안해지고 제대로 생활하기가 힘들어서 장기로 지낼 수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어. '쿠바에서 산 우리 집'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모르니...
지금 살고 있는 여섯 번째 숙소를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는데 장기투숙을 원한다고 하니 집주인이 남편도 함께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내가 혹시 제비 같은 쿠바노와 살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거 같아) 그래서 조단과 같이 만났는데 조단의 진지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기로 렌트를 해 주기로 결정했어.
방은 하나밖에 없지만 그 방 안에 화장실이 있고 적당한 크기의 거실과 부엌 그리고 세탁실이 있어. 가장 좋은 사실은 세탁실 앞이 바로 아바나의 상징인 ‘말레꼰’이라는 것! 게다가 세탁실 창문 너머로 인터넷 신호가 잡힌다는 거지. 물론 인터넷 카드는 필요하지만 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이건 뭐, 한 마디로 계 탄 기분이었어. 훗
세탁실 창문 앞에는 푹신한 소파 의자 같은 것도 하나가 있어서 아침에 눈 뜨면 그 의자에 앉아 창문을 열어 창 밖을 바라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어. 집 앞바다에 물고기가 많은지 매일 낚시꾼들이 말레꼰 위에 올라가서 낚시를 해. 어제는 한 낚시꾼이 30-40cm는 될 만한 큰 물고기를 낚았더라고. 또 다른 낚시꾼은 고등어 사이즈만 한 물고기를 5마리쯤 낚은 것 같았고. 우리 집에서 물고기 잡는 것까지 다 보여. 재밌지?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지는 말레꼰 안쪽 바닷가에 생존을 위해 고기를 잡는 낚시꾼들, 그리고 그 앞 도로를 쌩쌩 지나가는 각종 컬러의 올드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한국에 태풍이 크게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간 요즈음 이 곳에도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 바람이 세게 불면 높은 파도가 말레꼰 너머로 올라와서 낚시꾼들을 철썩하며 삼켜버려. 간혹 우의를 입고 낚시하는 아저씨들도 있지만 여기 낚시꾼들은 파도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아. 생존이 늘 먼저니까!
그렇게 물을 뒤집어쓰면서 꿋꿋하게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를 가족이 먹기도 하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해. 이 부분은 좀 짠하지...
한 번씩 낮에 파도가 많이 칠 때에는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갑자기 넘어오는 파도를 피하지 못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버려. 그러면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대며 웃지.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게 아바나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이며 가족들에게 웃으며 얘기를 해 줄 거야. 추억은 아름다우니까.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을 봐야 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어. (웃기는 얘기지만 사주에도 그렇게 나오고. ㅎㅎ)그래서인지 바닷가 앞에 살고 있는 지금, 현실적으로 처한 문제는 해결해야 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한 것 같아. '그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려고 해.
참, 최근 들어서 쿠바에 어떤 형태로든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어. 처음에 쿠바 와서 보니 이 작은 곳에 얼마 되지도 않은 한국인들끼리 별로 교류도 없고 흩어져있어서 좀 힘들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사회적인 인간이라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걸 좋아하잖아. (오지랖도 꽤나 넓고. ㅋㅋ) 그런데 쿠바에 와서 내 인생 역대 가장 조용히 지내다 보니 좋으면서도 좀 답답했나 봐. 한 번씩 수다로 풀어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잘 못했으니. 그리고 그 수다는 나의 언어일 때 가장 제 맛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한 명 알게 되었고 만나서 얘기하며 지내보니 나랑 코드도 잘 맞고 좋은 분들이 계시더라고. 그래서 그분들과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으며 사니까 이제야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행으로 오는 지인들 혹은 지인의 지인들도 점점 늘어나고 또 한 번씩 모르는 여행자들을 도와주다 보면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난 또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되고 혼자서 기분이 좋아져.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불어서 낚시꾼들도 평온하게 낚시를 하네. 이런 날 밖에 나가서 그늘이 없는 곳을 가면 머리가 탈 것 같이 뜨거워. 지난주에 일이 있어서 며칠 동안 낮에 밖을 좀 다녔더니 팔뚝이 더 까매지고 점도 더 많이 생겼지 뭐야. 나갈 때 얼굴에만 선크림을 바르는데 이젠 팔다리도 발라줘야겠어. 이러다 온 몸이 점쟁이가 될 것 같아.
한국은 가을이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까지 한다던데 감기 들지 않게 옷 따시게 입고 다니고 하루하루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있었는데 까먹었어. ㅋ 생각나면 다시 편지할게!
Ciao!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7
From Erin
언니가 보내준 사진을 보니 마치 내 귓가에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치 내가 언니 집 세탁실 한편에 놓인 소파 위에 앉아 낚시꾼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고,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하나 둘 함께 셀 수 있을 것만 같아. 느리게 흘러가는 평화로운 시간...
언니가 쿠바에 간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고, 그 사이 집을 구하느라 겪은 말 못 할 사연들은 쌓여 이야깃거리가 되었네. 간신히 구한 집에서 꾸려나갈 새로운 이야기 역시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이 역시 한 템포 쉬어가라는 삶의 이정표 중 하나겠지. 언니가 이렇게 바다를 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언니의 상황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나는 약 3주간의 조지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어. 여태까지 여행하던 곳과 다름이 분명하게 느껴지던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종종 '내가 아직 가보지도 않은 나라 쿠바와 닮아 있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어.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받았던 쿠바의 정서를 느꼈달까...
여행 중에 내가 자주 이렇게 말할 때마다 제이는 '조지아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해한다.'라고 답하곤 했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쿠바가 더딘 발전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조지아는 무언가를 조금씩 이뤄내고 있는 중이니까...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사람들이 풍긴 여유 때문일 거야.
참, 조지아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샤샤가 쿠바에서 1년 살다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 쿠바에서 수입한 시가(cigar) 씨앗을 조지아에서 키워 조지아에서 새로운 시가 제품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해. 선물 받은 시가를 보며 다시 한번 쿠바를 떠올렸지. 샤샤 역시 아바나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동료들이 있다고, 가끔 쿠바를 방문한다고 하니... 이 또한 새롭게 이어질 인연이란 생각에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동안 나는 들뜨고야 말았어!
포르투갈 여행기를 잠시 접어두고, 조지아에 관한 귀엽고 앙증맞고 그러면서도 꿀팁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이 오밀조밀 밀집한 작은 독립 책을 빨리 내고 싶단 생각이 들어. 조지아에 가는 사람들의 가방 한편에 놓일 작은 책을 만들고 싶단 욕심이 생겼어.
일을 쉬고 있는 동안에도 바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의 시간은 더 쪼개져야 마땅하겠지!
산과 바다, 하늘의 푸르름을 떠올리며 마음이 괜찮아지는 연습도 하면서 말이야. :-)
P.S. '사주'라는 건, 정말 맞는 것들인 거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