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쿠바가 그립다니!

#쿠바여행 프롤로그

by 권호영


쏴아- 하고 쏟아지는 뜨거운 물 아래 서서 조금 오래 있었다. 물의 온도를 뜨겁게 혹은, 미지근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과 필요에 따라 수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겨우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간단한 동작으로 이룬 행복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를 느꼈다. 헤어트리트먼트를 하고 있는 동안 바디 스크럽을 한다던지, 음악을 들으며 얼굴을 두 번씩(이나!) 꼼꼼하게 씻는다던지 같은, 나만의 샤워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유에 대하여 말이다.


쿠바에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했고,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샤워를 하고, 짐을 풀고,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짤막하지만 지금의 이 기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모장을 열어 타닥타닥 타이핑을 하면서 새삼 푹신하게 느껴지는 침대 위에서 나는 참 행복했다.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쿠바에서의 선명한 기억들이었다.


쿠바의 까사(Casa,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에어비앤비를 뜻하는 말)에서 하는 샤워는 시간을 오래 잡아먹었다. 물줄기가 약했을 뿐 아니라, 뜨거운 물이 나오다 말기도 하였고, 샤워기 걸이가 없어 한 손밖에 못 쓰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물탱크를 가진 (가진 자의) 까사에서 머물렀기에 단수 문제는 없었지만, 길거리에서 단수 대란으로 인해 물통을 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의 아수라장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린다 언니, 여기 방에 방충망이 없어!"

뎅기열이 무섭다는 쿠바에서 모기에게 물릴까 봐 모기약을 챙겨갔으면서도 볼멘소리로 언니에게 말했다.


"어머, 에린아. 쿠바에 방충망 있는 집이 어딨니? 하나도 없어."

뎅기열에는 약도 없다는데, 방충망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쿠바 사람들의 마음은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야 이해하고 말았다. 해가 비추는 날엔 비추는 대로, 비가 오는 날엔 비가 오는 대로, 그들의 창문은 항상 비스듬하게 조금 열려 있었다.





하루 꼬박 걸려 밟은 한국 땅의 공기는 차가웠다.

'겨울이구나.'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사면서도 나는 또 쿠바 생각을 했다. 쿠바에는 편의점도 없었고, 구멍가게도 찾기 힘들었으며, 그래서 캔커피나 음료수 따위를 쉽게 살 수 없었으므로.

'나는 지금 한국이라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나는 '벌써' 쿠바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쿠바잖아.'라는 말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걱정을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화를 품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었다. 예약한 국내선 비행기가 취소되어 16시간 야간 버스를 타야 했던 것도, 한 시간짜리 와이파이 카드를 사기 위에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했던 것도, 아무데서나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던 일도, 새로 생겼다는 푸드코트에서 호기롭게 햄버거를 사 먹다가 커다란 벌레를 씹어서 펑펑 울었던 일도, 지나고 보니 다 '이쯤이야 괜찮아'.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웠네. 내가 아끼는 식물들이 다 죽었으면 어쩌지, 집에 들어가면 너무 추울 것 같은데 큰일이야.'

한국은 영하의 온도를 지닌 겨울이었지만, 집안 곳곳 들어갔다 나가는 햇살 덕분에 식물은 하나도 죽지 않았으며, 햇살 덕분에 집은 그리 춥지 않았고, 그렇게 사소한 초록의 것들로 인해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 나는 '저녁에 떡볶이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은 #쿠바모드 로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그렇게 쿠바에서처럼 감사하고, 여유롭게, 따뜻하게 살아가자.



새벽에 눈을 떠서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발 밑의 샌들을 찾고 있었다. '아, 여긴 더 이상 쿠바가 아니지.' 까사에서의 습관을 적어도 하나는 가져온 모양이다.




P.S.

쿠바에서 저는 많이 행복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카리브해에서 수영을 했고, 핑크빛 올드카를 탄채 머릿결 휘날리며 말레콘을 따라 내달렸으며, 저렴하지만 커다란 랍스타를 조금 많이 먹었거든요. 향이 진한 허브가 가득한 모히또는 또 어떻고요. 눈빛이 예쁜 아이들과 친구가 된 일과 마음씨 착한 까사 주인들의 친절을 먹고 지낸 날들, 무엇보다 #쿠바댁린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 편하고 건강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던 이야기를 앞으로 조금씩 풀어볼게요!




코로나 19가 심각한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 2월 1일부터 약 2.5주 동안 쿠바의 '아바나-비냘레스-히론-트리니다드-산티아고데쿠바' 를 여행하고 쓰기 시작하는 여행기입니다.
제 브런치 <쿠바에서 온 편지>의 주인공 #쿠바댁린다 언니도 만나고 왔어요! :-)

조지아 여행기는 잘 마무리되어 3월 셋째 주 경에 책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브런치 내용보다 많이 추가되었고, 예쁘게 만들었으니 기대해주세요!)

**오랫동안 브런치 자리를 비웠지만 제가 울 브런치 이웃님들 얼마나 보고 싶어 하고, 감사한 마음 느꼈는지 모르실 거예요! 제 브런치 이웃님들, 두고두고 영원히 팬입니다! 진심이예요!
차근차근 놀러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