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점 Punkt'은 그 존재를 가시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정교한 도구로 그린다 하여도 그것이 물질로 그려지는 순간 ‘부분을 가진 면’이 되기 때문이다. 전이린이 그린 점들은 그래서 점이 아니라 점의 표상일 뿐이다. 점의 은유들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갖는다. 크기도 없고 방향성도 없고 운동성 또한 없기에 점은 '공백 Void'이며 그 공백을 채우는 열린 가능성만이 내재한다. '없음 Null'의 상태로만 존재하기에 스스로 존재하는 완전체(Self-Contained)가 되었으나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점의 흔적만 좌표값으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 좌표는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기준점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좌표값을 갖게 되므로 존재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는 점의 최소 단위는 하나의 ‘점’ 이 아닌 두 개의 ‘점들’이다. 그래서 전이린은 점들을 좌표 위에 그린다. 드로잉에서 각 점들에게 부여된 좌표값은 종이 위에 밑그림으로 그려진 사각형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사각형, 그것은 그녀가 세상에 던지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하나로 포개져 있으므로 ‘영원한 시간’이 가능한 궁극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해하는 신의 존재 방식과 점의 존재 방식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전이린은 점이 가진 '없음-공백’의 특성을 가시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유’가 가진 한계를 적극 수용한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 낸 사각이라는 프레임 안에 '점의 표상'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작가의 손으로 남겨진 노동의 흔적만이 남고 점은 의미의 공백을 이룬다. 관객은 점이 은유하는 바를 잊은 채 작가의 시간만을 탐닉한다.
‘Day Twenty Nine’ 2020, Graphite on Paper, 40-1/2”H X 26”W
‘Day Twenty Eight’ 2020, Graphite on Paper, 30”H X 22”W
‘Day Twelve’ 2019, Watercolor on Paper, 30”H X 22”W
‘Day Eight’ 2018, Watercolor on Paper, 30”H X 22”W
‘Day Eleven’ 2019, Watercolor and Graphite on Paper, 30”H X 22”W
‘Day Seven’ 2018, Graphite on Paper, 60”H X 42”W
‘Day Fifteen’ 2019, Acrylic Paint and Graphite on Paper, 42”H X 30”W
‘Day Twenty Two,’ ‘Day Seventeen,’ ‘Day Eighteen,’ ‘Day Twenty’2019, Graphite on Paper, 16”H X 12”W
‘Day Twenty Five’ 2019, Oil on Paper, 30”H X 22”W
‘Day Twenty Six’ 2019, Oil on Paper, 30”H X 22”W
<About Erin>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만이 존재했을 태초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인가 존재함’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시간은 탄생했다. 마침내 공허는 파괴되고 그곳은 시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작가 전이린이 탐구하는 작업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 관한 것이다. 비어있는 종이 위에 일정한 크기의 그리드를 만들고 작은 점들을 수없이 반복하여 메꾸어 가는 그녀의 드로잉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형상화 하기보다는 차라리 기록하는 것에 가깝다. 그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시간이지만, 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찰나에 가깝다. 그 짧고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시간 내에 던져진 삶을 기록하는 것이다. 생명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구조에서 벗어나, 덩어리의 무게감으로 관람자에게 다가온다.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에서 미술 학사를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미술 석사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드로잉과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Erin Chon is a painter/drawer who has worked individually and collaboratively on the current issues of identity, gender, domesticity, and immigration, using symbolic images, marks, and texts in daily life. Currently she expands her interests into process-based projects that record daily existence of herself. By repeating dots and lines, the most basic elements of art, she transforms invisible concepts of time into perceptible images of drawing. She has taken part in many solo and group exhibitions both in South Korea and in the United St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