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았다.
내 나이 마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지만, 앞길이 막막해 삶의 궤적을 다시 그려보고자 제주에 왔다. 제주에 온 지도 벌써 6개월. 제주에 오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모범적인 아이였다.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했다.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었고,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지만 ‘학생이니까’ 공부했다. 그러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때부터였다.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구나.’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정말로 가능했던 20대였다. 해야 할 일이 명확했고, 목표가 주어졌던 시기였다. 장학금을 받았고, 교환학생으로 미국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인생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싶었다. 나는 나이마다 주어진 과업을 달성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취업, 결혼, 출산까지 모든 게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하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서른 살부터였다. 나는 조금씩 길을 잃기 시작했다. 범위가 정해진 공부는 차라리 쉬웠다. 하지만 인생이란 예상 범위라는 게 없었다. 게다가 정답도 없다. 그 부분이 나에게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며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왔다. 경력이 희미해지는 걸 보며 자존감이 흔들렸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손길이 줄어들자, 인생의 막막함이 밀려왔다. 벌써 마흔인데, 앞으로의 40년을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 뒤늦은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 목표를 세워본 적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사회라고 탓했고, 그 탓이 내게로 되돌아오며 자괴감에 빠졌다. 그때 제주가 떠올랐다. 자연이 주는 위안 속에서 고민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제주행을 결심했다. 남편은 서울에 있고, 나와 딸만 먼저 제주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제주는 따스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자연으로 가서 위안받았고, 평온을 찾았다. 정말 여기서 잘 살 수 있겠는데?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곧 현실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많았다. 삶은 소박해졌는데 우리 집 지출 금액은 그대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직접 제주에 살아보고 깨달았다. 제주 또한 꿈의 섬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결국 문제는 장소가 아니었다.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면 안 되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혼돈 속에서 울던 나에게 이젠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답이 없는 문제도 풀어보자고.
아이의 학기가 끝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원점의 모양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전의 ‘살아온 모양’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