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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전력 질주하는 다람쥐가 되었을까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멈추지 못했던 나에게

by 다시 봄

오늘 아침도 우리 집은 여지없이 아수라장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만 4세. 두 아이를 준비시키는 일은 어째서 매일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걸까. 벽에는 체크리스트를 붙여두고, 알람을 맞춰놓고, 시계 보는 법도 가르치고, 해야 할 일들을 백 번쯤 외쳐보지만, 결과는 늘 아슬아슬 지각 직전 도착이다. 가끔 지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차리고, 방마다 뛰어다니며 옷과 준비물을 챙기고, 물통을 씻고, 아이들을 깨우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종종거린다. 아무리 두 시간 일찍 일어나도 내 얼굴에 물 찍어 바를 시간 조차 없다. 초췌한 몰골로 아이들을 차에 태워 라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 안에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들이 나를 기다린다. 엉망이 된 식탁, 먹으라고 백 번 말해도 안 먹고 간 영양제들, 여기저기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들, 축축한 수건 뭉치,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들.


일단 일을 해야 하니 눈을 질끈 감고 방문을 닫는다. 반쯤 나간 멘탈을 부여잡고 오전 업무를 쳐내다, 쉬는 시간 5분이 생기면 튀어 나가 바닥을 닦고, 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일과 가사를 쪼개고 또 쪼개며 하루를 보낸다. 외부 약속이 있는 날엔 저녁에 왔을 때 전쟁터가 따로 없는 집을 치우면서 저녁을 해야 하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참담한 실패

상담실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면 나는 영락없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다. 사회에서는 복잡한 일정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인데, 정작 내 가정이라는 작은 프로젝트 하나는 매일 엉망진창인 것 같아서다. 육아 서적, 유튜브, 상담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애를 써도 집안은 늘 루틴 없는 전쟁터다.

저녁이 되면 또다시 잔소리를 퍼붓고, 소리인지 포효인지 모를 화를 내뿜고, 9시에 눕혀도 11시까지 잠들지 않는 아이들과 씨름을 한다.


내 이야기를 듣던 상담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렇게 동동거리는 자신을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다람쥐요.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작은 다람쥐요. 만화에서 보면 너무 빨리 달려서 뒤에 바람 세 가닥이 휭~ 하고 그려지는 그런 다람쥐요."

뛰는 다람쥐.png


내 마음속 다람쥐의 정체

선생님은 그 다람쥐가 바로 내면 구조도(IFS) 속의 '관리자'라고 하셨다 (내면 구조도 글 참조). 평생을 종종거리는 다람쥐로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에 나는 유능해졌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방식이 엄마로서의 나를 소진시키고 있었다.


"왜 아이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를 그토록 기대할까요? 그 이면의 욕구는 무엇일까요?"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크길 바란다는 기대로부터 시작해서, 진짜 욕구를 찾을 때까지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마주한 대답은 '혼자 남겨질까 봐 무서워요.'였다.


종종거리며 일 잘하는 사람,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소속되어야만 나는 안전했다. 돈을 벌고 지혜를 나누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만 내 곁에 사람들이 머물 것 같다는 공포. 만약 내가 무능하고 쓸모없어진다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결국 혼자 남겨질 거라는 두려움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공포가 나를 다람쥐처럼 뛰게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에서도,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가족과 친구들이 이미 내 곁에 있는데도, 내 안의 다람쥐는 여전히 "지금 쉬면 안 돼! 도태될 거야! 혼자가 될 거야!"라고 외치며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아한 초상화처럼

나는 이제 다람쥐의 쳇바퀴에서 내려오고 싶다.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품 있고 약간은 풍채도 있는 여인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그 흔들림 없는 눈빛과 우아한 자태. 나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다.


이번 주 숙제는 내 안의 'Self'와 '관리자 다람쥐'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아마 다람쥐는 반발할지도 모른다. "내가 해봤는데, 여유 부려서는 애들 절대 안 움직여!" 혹은 지쳐서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나 이제 너무 힘들어. Self야 네가 좀 도와줘."


내 마음속 Self는 다람쥐에게 어떤 말을 건네게 될까. 중요한 건, 그 기저의 공포가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니고, 아둥바둥 뛰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그 두려움이 걷히면, 내 목소리의 피치가 낮아지고 말도 꼬이지 않으며,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을까.


나는 겉으로만 우아한 척 연기하는 엄마가 아니라, 내면의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선 엄마가 되고 싶다. 오늘도 내 안에서 숨차게 달리고 있는 작은 다람쥐를 조용히 불러 세워야겠다. 깊고 느리게 호흡을 가다듬고, 매일 조금씩 더 묵직하고 든든해지는 존재감으로 새로운 하루의 문을 열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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