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된 지 수년이 흘러서야 나는 나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너그럽고 자애롭고 지혜로운 엄마는 확실히 아니었다. 화를 냈다가 돌아서서 후회하고 또다시 화를 내는 어리석음의 되풀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뿐인, 염치만 조금 살아있는 엄마 정도다. 홈스쿨링, 잘할 수 있을까? 그건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남들이야 공부를 어떻게 가르칠 거냐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거냐고 걱정이었지만 내게 그건 두 번째 문제였다.
'내가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면 어쩌지? 화내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내 성품이 문제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 현명하고 올곧게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인생은 인간에게 지혜를 터득하는데 긴 시간을 요구한다. 두려웠고 피로했다. 6년여간 육아에 올인하며 잠도 잘 자지 못한 채 24시간 아이들에게 매여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제대로 못 먹고, 못 자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를 거의 채우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쉬고 싶기도 했다. 쉬어야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여유가 있어야 아이들도 잘 받아줄 것 아닌가. 또 시간이 생기면 홈스쿨링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학교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동생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 드디어 내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다. 비단 몇 시간만이라도.
"싫어. 절대 학교 안 갈 거야!"
하지만 딸아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몇 번 설득도 해보고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유치원에 다닐 때 마음을 힘들게 한 친구들이 있어서인지 새로운 친구 사귀기를 꺼려했다. 내 입장에서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빠릿빠릿한 아이들은 비록 생일이 늦되어도 관계도 잘 맺고 배우기도 빠르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훨씬 작은 데다 약지 못해서 드센 아이들에게 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가을과 겨우내 울며 유치원을 갔던 아이를 생각하니 단호하게 밀어붙일 수 없었다. 아이에겐 안정된 관계 안에서 새로운 기억을 쌓아 갈 기회가 필요했다. 갈팡질팡 했던 내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