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슬리퍼야. 슬쩍 내딛는 거니까

시작에 너무 무게달지 말자

by 단짠
Q. 시작을 잘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자주 망설이나요? 당신과 나의 시작을 대하는 태도가 궁금해졌어요


시작이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시작에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나의 미숙함과 오류가 드러나는 건 민낯을 들키는 것처럼 부끄럽지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그게 모든 시작의 전제라고.

왜냐하면 크던 작던 꿈이 생기면 바로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네가 그걸 하겠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내면과 외부가 합동 작전이라도 펼치듯 의심을 쏟아 놓는다. 시작조차 못 하게 막아선다.

진학, 결혼, 취업과 같은 인생 공통과제는 물론 스스로 기획해야 하는 '꿈'은 완전한 자신의 몫인데도 누군가 '심사 통과'라고 외쳐주길 바라며 시작조차 못 하곤 한다. 숙제 검사처럼 꿈도 허락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몸과 마음에 도장처럼 찍혔나 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들 대부분 '네가 그걸 해내겠어?' 하는 의심을 무시하고 시작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잘하는 것을 살펴보면, '해내기 힘들걸? 현실이 말이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라는 반문을 이겨내고 시작한 덕분에 지금은 잘하고 있는 게 있을 거다. 이미 그걸 발견하곤 손뼉을 칠 수도 있다.

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즐기며 하는 일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다. '일기도 안 쓰던 내가 글을?', '소설을 써? 배운 적 있어?'와 같은 반문을 무시하고, 하고 싶어서 그냥 시작했다. 일 년 동안 매일 쓰고 있고 점점 영역이 확장되고 있어서 행복하다. 시작 덕분이다.

시작하면 미완일지라도 결과물이 있지만,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없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또는 못하는 게 부끄러워서 피하면, 난 어디서 성장하지? 나의 실수로부터 온전한 나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진다면, 성장을 위해 지급할 만한 대가가 아닐까?



시작은 아무튼 하기와 닮았다.
마치 슬리퍼를 신고
슬쩍 산책 나오듯 해야 한다.
너무 작정하고 덤비면, 시작도 못 하고 준비만 하다가 제풀에 꺾이곤 하니까.
그래서 시작은 슬리퍼다.
슬쩍 한 발 내딛기다


시작하면 꽃길만 걷거나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까? 전혀 아니다. 의심을 딛고 시작을 선택하면, 결과에 대한 의심이 따라붙는다.

초보 운전자였을 때, 주차를 못 해서 차가 긁히는 실수를 감당해야 했듯이 잘하게 될 때까지 미숙함이 주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미숙함보다 더 힘든 건 과연 내가 잘하게 될까? 라는 의심이다. 운전은 반복하면 잘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시험에 합격할까.', '내가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등등 합리적인 의심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는 영역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시작하기와 꾸준히 하기만 내 몫이다.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몫에 충실하면 됐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다 챙기지 못하는데 내 영역이 아닌 결과까지 고민하느라 꿈을 저당 잡힐 필요가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글을 쓰며 꿈의 크기가 커질 때마다, 못 해낼까 봐 두렵다. 그럴 때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토닥인다. "백 년 후에도 읽힐 작품을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결과지만, '될까 안될까?'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충분히 읽고 썼으면 그것으로 됐어."라고.


나의 시작은 언제나 그냥이다.
나는 그냥 시작한다.
시작에 너무 무게 달지 말자.
무게 추는 과정에 달자.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니까,
내 몫인 과정에 집중하기로 하자.


타인들은 결과를 통해서 나를 평가하겠지만, 과정을 통해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 말자. 그래서 나는 결과를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작하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그걸 당장 시작하자.

출발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출발부터 해야 한다 - 레스 브라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