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텀블벅 북 랩에 선정됐다고 말하자 수가 처음 한 말이다. 그리고 내게 속사포를 쏘아댔다. 텀블벅이 뭐야? 펀딩은 또 뭐냐? 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때 그녀의 눈은 동그라미가 아니라 이글거리는 불길 같았다. 그래 불길, 그게 더 맞는 표현이다. 그녀가 텀블벅이나 펀딩을 몰라서 심각하게 질문한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지금 그녀가 내게 따져 묻는 것은 소설 공모전을 준비한다더니 갑자기 펀딩으로 급회전한 게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이해된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하는 사이라고 해도 진행 방향이 급회전하면 그 진위를 따져 묻게 되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맞다. 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 랩 기획전에 선정됐고, 첫 책을 펀딩으로 준비하고 있다. 나도 내 첫 책은 '소설가가 꿈이니까 당연히 소설책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지난 5월에 이룬 '등단'이란 축전은 나에게 소설가라는 마라톤의 출발 신호에 불과했다. 불과하다고 표현한 건 등단이 별일 아니라는 건방짐이 아니다. 등단을 간절히 바랐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기적이다. 소설 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고, 11개월째가 되는 5월에 신인상(문예지 공모전)을 받았으니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내 인생을 180도 바꿨다. 그래서 글은 내게 기적이다. 그런데 소설집이 아니면 무슨 책을 낸다는 걸까? 그것도 펀딩으로! 수는 내게 그걸 묻고 있다.
"수, 아직 난 소설가로 깜냥이 안 돼. 아직은 더 치열하게 쓰면서 성장해야 해. 나는 소설가라기보다 소설가로 숙성 중이야. 그래도 포스트잇에 쓴 글들이 제법 많이 모여서 책을 만들고 싶어. 내가 글쓰기를 통해 받은 축복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포스트잇 새이가 인생에 달콤한 맛을 추가한다
2020년 11월,포스트잇에 글을 써서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를 남기는 나만의 의식처럼.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포스트잇 메모가 쌓여가면서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변화는 긍정적이다. 매일 다른 그날의 상황, 장소, 시간 속에서 만난 느낌을 솔직하게 적고 인스타에 올리면서 내 안에 숨어 있던 진짜 마음이 발견됐다.
'내가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어?', '내가 가진 마음이 나를 해롭게 했구나'와 같이 모르던 나를 발견했고 때론 내 글로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내가 나를 응원하기도 했다.
30일 90일 180일 그 글이 쌓여가며 내 안에서 글이 자라기 시작했다. 위인이나 명사가 한 멋진 말이 있지만, 그 말들은 나를 변화시키진 못했다. 변화할 의욕만 줬을 뿐, 에너지를 발산할 무엇이 부족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만들어 준 프레임 안에서 구성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입력된 정보들이 내가 돼버렸다. 진짜 내 생각, 내 바람, 내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두 줄, 다섯 줄 짧은 글이지만 내 느낌대로 거침없이 쓴,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은 프레임에 갇힌 구성원이 아닌, 신이 내게 부여한 첫 마음을 되찾게 해 줬다. 나의 언어로 행복, 사랑, 시간, 꿈, 미움, 두려움 , 우울 이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나는 완성형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진화는 진행형이다.그래서 나는 매일 성장 진행형 삶을 살고 있다.그래서 예전에 나를 괴롭혔던 미움, 불안, 외로움, 두려움이 나를 망치게 두지 않을 힘이 날마다 자라고 있다. 그 기쁨을 어떻게 말할까? 음,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물고 있는 만족스러움이랄까? 이 사탕은 치아를 상하게 하지도 않고, 점 점 줄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문 나의 하루가 얼마나 달콤한가. 그렇다고 사탕이- 글쓰기가-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여전히 출근해야 하고, 각종 청구서를 걱정해야 하고, 사탕을 물고도 쓴맛이 느껴진다고 소리 내서 울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탕은 내 입 안에 있다. 세상 그 무엇도 나조차도 뺏을 수 없는 사탕이다. 인생이 내게 준 특급 선물이니까. 난 그 사탕을 단짠 노트라고 부른다.
저자와 독자가 함께 완성하는 책, 독서와 쓰기가 한 권에?!
예전의 나처럼, 내 안에 뭔가 있는데 그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무기력함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내가 했듯이 매일 짧은 메모를 쓰다가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그렇게 180일이 되면 180도 바뀐 삶을 살지 않을까? 내가 단짠 노트를 쓰며 성장 진행형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나를 미워하던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외로움에 혼자 술 마시던 내가 글 쓰면서 혼자 있어도 재밌고, 책은 사는 거지 읽는 건 아니야 했던 태도가 책을 읽는 태도로 바뀐 것처럼. 누군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단짠 노트를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책으로 출간하고 싶었다.
나는 내 글이 대단하지 않은 걸 안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쉼표와 같다. 그래서 오히려 독자가 편하게 읽고 나도 이렇게 써볼까? 하며 180일을 메모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선창 하면 독자가 독자의 언어로 다음 곡을 부르듯이. 나는 1절을 쓰고 독자는 독자의 생각을 2절로 쓰는 것이다. 내 책을 읽고 독자가 메모를 쓰면서 180일 후,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문 성장 진행형 삶을 자기만의 언어로 살길 바란다.그래서 이 책은 책이라기보단 노트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편집자보다 먼저 독자에게 선을 보이기로 했고,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내는 대신 텀블벅 펀딩을 했다.(출간 기획서도 준비하긴 했다) 북 랩 기획전 선정이 펀딩을 시작할 기회를 준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펀딩이 독립출판과 이어진다는 것도 모른 체, 미지의 낯선 세계로 풍덩 뛰어든 것이다. 꼬르륵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두렵지만, 분명 어떻게든 헤엄쳐서 바다를 여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