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오전, 글쓰기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려고 부엌으로 갔다. 설거지 배경 음악을 고르려 핸드폰을 여니 문자가 와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지 않으셔서 전화했으나, 전화도 안 받아서 문자 남깁니다. 메일 확인해주세요.'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고, 바빠서 메일도 안 열어봤더니 중요한 연락을 못 받았나 보다. 그런데 어디서 무슨 일일까? 괜히 긴장됐다. 아무튼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이럴 수가!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공모전에 당선됐다.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공모전에서 소설 부문 신인상 당선을 한 것이다. 무영 신인문학상, 황순원 스마트 소설 상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탈락해서 한국문학예술 신인상도 기대하질 않았다. 이제 막 소설과 만났으니까. 그런데도 계속 쓸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싶어서 빨리 등단하고 싶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기뻐서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질렀고, 출근해서도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마음이 하늘거렸다. 그날 저녁 지인들은 축하 자리를 만들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줬다. 코로나로 잠깐 모여 마스크도 못 벗고 인사 나눈 후 금방 헤어져야 했지만, 축하하러 달려온 고마운 분 덕분에 상 받은 기분이 흠뻑 났다. 그래, 나 이제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고 소설가다!
경기장에 서성거리던 내게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린 것이다. 첫 트랙을 돌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늦게 출발했지만 제대로 달리고 끝까지 완주할 거다. 제대로!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박아민, 소설 심사평
박아민 소설 [그러지 말 걸 그랬어]를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당선으로 선한다.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특히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그 겨울은 사회를 앞서서 가기도 하고 나란히 서서 가기도 하며 뒤를 따라가기도 하는 그림자 거울이다. 박아민 소설 [그러지 말 걸 그랬어]는 2010년과 2020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순간이동을 하는 내용으로 사차원의 세계를 찾아가는 시도를 해서 새로움의 실험이다.
'한 사람이 온전히 내 삶 안으로 들어오는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던가, 그것이 유한하다 하면 어떤가. 그것은 산소와 같아서 살아 숨 쉬게 하고 비로소 온전히 둥근달로 차오르게 하는 것이다.' 소설도 결국은 화자의 말을 청자에게 얼마나 진솔하게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박아민 소설 [그러지 말 걸 그랬어]는 시공을 초월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삶에서 진실한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달은 다시 기울어지지만, 그것은 삶의 순리였다. 보름달인 채로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을 왜 그리 채우려고만 했을까?' 여기서 삶이란 사랑의 감춰진 비유이다. 사랑은 보름달로만 떠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한 깨우침이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비가 내리면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우산을 갖다 주시곤 하셨는데, 우산을 든 엄마가 얼마나 든든했던지, 나도 민지에게
든든하게 우산을 건네주고 싶었다.' 박아민 소설 [그러지 말 걸 그랬어]는 10년이라는 시간차를 극복하고, 꿈을 동원하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까지를 전개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의욕이 넘친다. 강한 의욕은 양면성을 갖는다. 넘치는 의욕이 작품의 다양성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자칫 산만해지는 위험도 같이 갖는다.
박아민 소설 [그러지 말 걸 그랬어]는 초등학교 때 우산을 가져다준 어머니와 딸을 대비해서 소재 선택이 신선하다. 사건에 집중하여 깊이를 더하고 소설 흐름 변화를 수련한다면 한국문학예술 작가의 대열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심사평 중 일부)
당선소감
“왜 살아?”, “ 살아가는 이유가 뭐야?”라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할 시간에 그냥 열심히 살아.”라며 비웃었지만, 비웃음의 크기만큼 공허함도 커졌고, 그냥 살든 열심히 살든 살아갈수록 마음이 공허해질뿐이었습니다. 삶이 공터와 같았습니다.무엇인가, 누군가 바쁘게 드나드는데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무엇도 누구도 없는 공터. 그 모습이 제 삶이었습니다.
공터라는 걸 모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빈자리를 발견하고 나니 모른 척하며 살 수가 없어서 공터에 이름을 지어주고 푯말을 세우려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누구야?”, “너는 무엇을 하고 싶어?”
질문은 있는데 답은 없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몇 년이 하염없이 흘러갔고, 다행히 질문이 반복되니 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말하던 '소망과 사명'과 친구들과 이야기 꽃 피웠던 '살아가는 이유'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비로소 공터에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달콤하고 짠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사람, 소설가. 그게 제 공터에 세운 푯말의 이름입니다.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를 찾는데, 오십 년 걸린 거면 많이 늦된 걸음이지만, 지금이라도 찾고 그 길을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한국 문학예술에서 신인상을 주신 것은 소설을 잘 써서보다, 제대로 잘해보라는 격려라 여겨집니다. 한국 문학을 이끌어 온 훌륭한 문예지를 통해 소설가로 인정받는 영광을 누리게 돼서 더없이 기쁘며 감사합니다. 신인 문학상을 계기로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지금은 부족한 글쟁이지만, 삶을 글로 녹여내는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 문학예술 신인상을 통해 시작한 작가가 십 년 후 한국 문학을 이어가는 다음 세대 소설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소설가답게 성장하겠습니다. 백 년 후에도 읽힐 소설을 쓰겠습니다.
다시 누군가 “왜 살아?”라고 묻는다면, “소설을 쓰기 위해 살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