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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으면 타이타닉호에서 내릴 것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엄마 사람의 생존 수기

by 라떼마마

기러기 부부가 되면서 서울에서 친정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10년이 넘는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오는 기분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아이가 14개월 되던 시기, 손이 많이 가고 특히 내가 아픈 날이면 나를 대신에서 아이를 봐줄 대체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 고통을 조금 덜고자 친정 옆집으로 이사를 했다. 친정엄마는 마치 이혼한 딸을 거두는 듯한 뉘앙스로 언제나 남들을 의식하는 듯하셨고 이렇게 사는 부부들은 꼭 잘못된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셨다.


"두려움을 피해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없다."라고 하는 말을 실감했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지만 마음이 고단했다.

그럴 때마다 서점으로 숨곤 했다... 숨어서 나의 영혼을 쉬게 하는 글들을 읽지 않으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더 많이 글에 집착했다. 디저트 성지순례도 다니며 눈과 입을 호강 시키키도 했고 예쁘고 가지런하고 침착한 물건들을 보러 다녀도 보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면... 나는 남편 출근시키고 애 등원시키고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오전 11시, 브런치 카페에서 여유나 즐기는, 그런 엄마 사람이 되어있었다.


고만고만한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9년 2월, 아이의 생일 전날, 그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살고 싶지 않았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벼랑 끝에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써니가 있었다.

써니의 삶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없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아이가 있다는 건... 내게 주어진 내 삶도 내 마음대로 함부로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의미였다.



불같이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에 눈물도 말라서 바스락바스락 소리만 났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나를 잠시나마 기분 좋게 해주는 앞서 말한 행동들은 의미가 없었다. 일을 중간에 쉬지 않고... 신입사원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어왔더라면... 아마 이만한 일에 이렇게 까지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와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작동해야 할 재난 대응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다.


과거를 자꾸만 돌아보며 후회를 했다. 미래가 불안했다. 현재가 아주 불행하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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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행복하지 않을수록 사람은 과거를 많이 후회하고 미래를 많이 걱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재 행복하지 못한 게 과거의 후회되는 일 때문이라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중 - 글배우



분명히 경제적인 파탄이 내 삶에 일어난 것 같은데 그 모양이 어떤지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크기가 얼마나 큰지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었다. 몰라서.. 몰라서 두렵기도 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었다.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일을 멈추었다. 전셋값 정도의 돈이 공중에서 사라졌구나.라고 짐작했다. 생각을 삼키려고 입안에 넣었는데 마구마구 쑤셔 넣어서 제대로 숨 쉴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형벌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공포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문을 탁! 걸어 잠그고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아주 강력한 잠금장치를 해놓고 온갖 무거운 물건들을 문 앞에 올려놓았지만 그럴수록 공포의 실체는 더욱더 큰 소리로 쿵쿵! 하며 문을 발로 찾고 손잡이를 마구마구 돌리고 당겨댔다.

" 저 없어요... 그러니.. 제발 가주세요.. " 제발 이 문을 열지 말아 달라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나를 공포로부터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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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나의 나약함에 절망했다. 하다못해 통장에 3000만 원이라도 비자금이 있다거나 무일푼 신세로 이혼을 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직업, 혹은 언제든 재취업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경력이 있었다면 이토록 두려움이 떨진 않았을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 사람으로만 나를 사용한 일을 후회했다.


신은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을 주셨는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나는 마침내 유시민 작가의 강의 콘텐츠에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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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의 책에서 그는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자기 결정권을 이야기했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내 상황에서 바라본 내 삶은 존엄하지도 품위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순수하게 나의 생각과 의지로 지금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멍이 난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이대로 그와 함께 간다면 내 삶이 해저 200미터 아래로 잠길 것 같은 불안함이 생겼다. 알면서 그 길을 가는 비주도적인 삶이 불행한 건 당연한지 모른다.




우울감,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사람은 불안이 찾아오고 불안이 커지면 사람은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현재가 행복할수록 즉 현재에 내가 집중되는 무언가를 할수록 과거의 후회가 줄어들고 미래의 걱정이 줄어든다. 다. 나는 집중이 잘 되는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그 시간이 즐겁게 느껴지고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 시간에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이 좋기에 내가 집중이 된다는 건 내가 앞으로 계속 가고 싶은 곳 계속 생각할수록 좋은 것 내가 그것만 하면 다른 생각들이 들지 않는 것을 만나는 것이다.

출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글배우)






아끼는 대학원 동기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은행에 근무하던 그녀는 아주 담백하게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내게 말을 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자주 보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태라의 기억의 창고]라는 블로그를 추천하며 콘텐츠 하나를 내게 캡처해서 보내주었는데 내용 가운데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이제 네가 세상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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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끄집어내고 살아야 할 사람이 안에서 있으면 신은 어떻게든 그 사람이 밖으로 나오게 할 상황을 만들어 그 사람을 세상으로 나오게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많은 위로가 되었다. 신발을 신거나 양치를 하는 짧은 시간에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움이라는 감정이 나의 뇌에 눌러앉아 있어서 일단 바빠지기로 했다. 취미로 잠시 문화센터에서 미싱을 사용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다다다닥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늘이 콕콕콕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계 앞에서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서 엄청난 몰입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사전적인 의미의 몰입이 주는 행복을 느낀 기억이 상기되었다.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취미생활보다 더 강력한 바쁘고 스트레스받는 환경을 설정하자.



이 두 가지의 생각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업데이트하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게 만들었다. 일단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것을 이미 경험치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부딪히는 더 큰 스트레스를 내 삶에 들여오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고자 노력해도 나와 관계된 가족, 특히 배우자와 관련된 일들은 내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이 50에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겪는 게 나을 거라는 위로밖에 할 수 없었지만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올라갈 일만 보였다. 신중한 결정이어야 하는 만큼 일단 내가 한 푼이라도 벌어보고 혼자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때 결정을 내리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는 지금 이 일이 상대적으로 덜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도 답도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뿐했다.


라떼마마는 5년간 살았던 엄마 사람에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받는 내가 되어 보는 것, 그것이 엄마 독립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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