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장마가 끝나고 수분 한방울도 없는 메마르고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느낄 때 마다 몇년 전 업무로 갔던 제주도에서의 초록한 날들이 생각난다. 8월 여름 한낮의 용눈이 오름에서 만난 초록과 파랑의 강렬한 생명력을 잊지 못해서 두 해 전에는 같은 시기에 같은 곳을 가게 되는 향수병을 앓기도 했다.
초록색의 나지막한 언덕을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정수리에서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있어서 땀이 나는 것과 동시에 말라버렸다. 눈을 뜰 수 없을만큼 부셨던 대낮의 밝음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우리 일행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약간의 무서움을 느꼈다.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이 마치 태초의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수록 하늘에 가까워 졌다. 360도를 몇 바퀴나 돌며 내가 두는 시선 어디에도 걸리적 거리는 것 없이 온통 새파란 잔디와 하늘과 구름, 이따금 보이는 말들이 전부였다. 대충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가 되었다. 더워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늦봄, 초가을에 거니는 숲에서 볼 수 없던 완전히 다른 생명력이 느껴졌다. 올라가면서 들었던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곡과 당시의 분위기가 너무나 잘 어울려 한동안 우리 셋은 서로 말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약간의 무서움을 동반하는 날-것 그대로의 장엄한 자연을 좋아한다. 말을 잇지 못하는 벅찬 광경앞에 설 때 마다 나의 모든 고생스러움은 지금 바라보는 이 한장면을 위해서 존재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주가 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남극탐험을 해보는 일,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을 날아보는 경험을 하며 자연 앞에 더 대담한 심장은 갖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