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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an 19. 2020

까맣고 긴 생머리의 고고학자

1 고고학자가 뭐게요?


나의 전공은 고고학이다. 나는 고고학을 접한 지 9년이 넘었다. 고고학이라는 단어는 이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 중 가장 큰 맥락을  차지하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오는, 그렇지만 아직도 어색한 하나의 단어가 있다.


고고학자.


고고학자라니! 이 얼마나 대단해보이며 한편으로는 올드해보이는 단어인지! 나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다. 이 사실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지라, 적어도 내 주변의 모든 고고학 전공자들은 이 단어를 한없이 어색해한다. 그저 고고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로 자신을 설명할 뿐이다. 고고학자라는 말은 나의 지도교수님 뻘이나 혹은 그에 가까운 아랫세대에만 해당하는 것만 같다.






고고학자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학자이다. 대학교 혹은 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대부분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고학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지 않거나 다니지 않았다면, 언제 대학원 갈꺼냐는 말을 수 없이 듣게 된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우리는 일이 공부이며, 공부가 일이다. 가끔은 일과 공부가 다르기도 하지만, 같을 때도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말장난같지만,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발굴을 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발굴된 유물이 신라시대 토기라면 신라시대의 토기를 공부해야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의 경우, 전시 주제가 조선시대 건물이라면 조선시대의 건물을 공부해야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세부전공은 각각 백제 토기이거나 고려 기와일 수도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통일신라 유물

고구려 철기가 세부전공인 사람이 발굴조사하는 유적의 시대가 고구려라거나 가야 무덤을 공부하는 사람이 준비하는 전시가 가야 토기라면 그나마 수월하며, 한편으로는 행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때문에, 일이 공부이며 공부가 일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이것이 불운뿐인 것만은 아니다. 이 일은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역사를 내 손으로 밝혀낸다는 뿌듯함이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 역시 회사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원동력을 제지하는 것은 바로 낮은 급여이다. 누구나 그렇듯!


연구원은 대부분 석사학위 이상이다. 석사학위가 필수인 것은 아니지만, 일과 공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 직급 이상은 박사학위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고고학은 문과에 해당한다. 대학에 진학할 때 고고학과, 고고미술사학과, 인류학과, 역사학과 등등이 모두 문과계열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고학은 고고학만으로는 설 수 없는 학문이다. 역사학 뿐만 아니라 동물학, 식물학, 기후학, 지질학, 토양학 등등 상당히 많은 학문과 연계되어야 한다. 고고학은 과거 인류의 발자취를 밝혀내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람이 생활하는 것에 얽힌 모든 것을 알아야한다.


이과계열에서 석사학위 이상은, 특히 연구원이 된다면 급여는 상당히 높아진다. 전체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 학비도 해결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문과계열은? 천만의 말씀. 학부 졸업이나 석사 졸업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석사학위가 없다면... 뭐. 그렇다.


우리가 일에 대해 푸념을 하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네가 원해서 하는 거잖아. 재미있다고 하잖아?



맞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일이 재미있다. 하루하루 같은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고구려 유물을 만졌지만, 내일은 백제 유물을 만지기도 한다. 어제는 통일신라 건물지를 보았는데, 오늘은 고려 건물지를 보기도 한다. 일은 재미있지만, 한없이 고되기도 하다.


발굴조사는 날이 더워도, 추워도 밖에서 일해야하고 화장실이 500미터 밖에 있는 것은 예사 일이며, 전시준비는 내 몸뚱아리만한 옹도 옮겨야하고, 토기 등을 접합할 때에는 온갖 약품냄새를 맡고 만져야한다. 그리고 일과시간 이후에는 공부도 해야한다. 내 세부전공 공부이든지, 일과 관련된 공부이든지.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급으로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너희와 같이 세 끼 밥먹고, 퇴근 후에는 맥주 한 잔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고, 새 옷도 사입고싶고, 학자금대출도 갚아야하고, 남의 결혼식에 축의금도 보내야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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