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직장생활이 어떤가?
만족스러운가?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까.
만족스럽지 못한가?
그래도 다행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불행히도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무엇이 좋고 싫은지 모른 채 살아왔고, 그 때문에 취업 후 오랜 시간 고통받았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학시절 철학에 꽂혀 대학원까지 갔다가 내가 생각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구나를 깨달은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1년 만에 괜찮은 중견금융기업에 입사를 하게 된다.
'취업 = 행복'
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외로운 취준생활을 버텼던 터라 이제 삶에서 더 큰 시련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사 후 단 몇 달 만에 나의 그런 믿음은 처참히 깨지게 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 집에 가지 않는 상사, 욕하는 상사와 영업사원, 자기 욕심만 차리는 지점장, 텃세 부리는 계약직, 일주일에 3번 이상 이루어지는 술자리, 내게만 요구된 조기출근, 점심시간의 부재, 일을 일부러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선배 등등. 이 외에도 적고 싶은 것들과 이야기가 많지만 짧게 말하면 참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영업사원들을 관리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거기에 실적까지 내야 하는 상황은 내게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주었다.
내가 생각할 때 이곳의 장점은 오직 '돈'이었다. 금융권이기에 남부럽지 않은 급여가 제공되었고 부모님도 친구들도 입을 모아
'돈이라도 많이 받으면 된 거지 뭐.'
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힘이 들 때면 사회초년생이 월 350씩 따박따박 받으면 괜찮은 거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나는 그 말을 믿고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내가 정말 이런 식으로 60살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막을 순 없었다.
잦은 회식으로 불룩 나온 배, 얇아진 팔다리, 일 때문에 제대로 된 점심을 먹지 못한 채 빈속에 마신 술 탓에 고장 나버린 소화기관, 핏기 없는 얼굴과 여기저기 난 여드름. 아침에 출근할 때면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며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평생 이어질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날이면 아깝게 최종에서 떨어진 공공기관이 생각났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내 손에는 문제집이 들려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공부를 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지친 몸을 다독여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했다. 하지만 첫 도전은 실패였다. 부족한 공부량 때문이었냐고? 아니다. 시험날 오전, 시험장에 있어야 할 나는 회사 워크숍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시험 며칠 전, 워크숍을 불참해도 되냐는 나의 질문에 상사는 '신입이 미쳤냐.'며 욕을 해댔고, 나의 첫 이직 시도는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체념을 하고 회사를 다녔더니 어느덧 2년 차가 되었다. 보통 2년 차 정도 되면 회사가 다닐 만 해진다는데, 나의 마음은 여전히 입사 초와 동일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 이외에 내 삶의 즐거움은 없었다. 공공기관으로 이직 시 연봉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취업시장과 나의 부족한 능력 때문에 급여를 조금 낮춰 이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취업시장 자체를 뚫기 힘든 문과생의 비애였다. 나는 그저 이 직장이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2년 차가 되자 처음으로 성과급이 들어왔다. 내 통장에 한 번에 1천만 원이 찍혔다. 동기들 톡방에서는 난리가 났다. 동기들은 이 맛에 일한다며 매우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이 그저 숫자로만 느껴졌다. 휴가도 제대로 못쓰게 하는 상사와 영업사원들 탓에 돈을 쓸 시간도 기력도 없었다. 하루를 버티듯이 살다가 다시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했다. 준비를 하면서도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왔다. 계속 다니며 이렇게 준비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만두고 제대로 해야 할지 고민을 하며 입사지원을 했다. 그리고 그 해 나는 운좋게 이직에 성공한다.
이직 이야기를 하자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왜 연봉을 절반 이상 깎아가며 이직을 하는지 모두 의아해했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직속상사는 자기한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이직준비를 했다며 나를 배신자 취급했다.(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니들 때문이야, 이 새끼들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혹시나 이직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냥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고 말한 후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이제는 해피 회사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일만 남은 것이었다. 다음 회사 신입연수까지 며칠의 여유가 생겼다. 그 기간 동안 숙면을 취하고, 건강한 밥을 먹고, 머리를 자르고,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책을 보거나 멍하니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고요히 시간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요일 저녁 주말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가슴을 조여오던 증상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을 즐기다 신입연수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