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어느 날. 종수와 현수 그리고 나는 연초를 맞아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시벌, 이번 해에 밥벌이, 사랑, 둘 다 못하면 진짜 죽는다. 나 같은 새끼는 더 살아갈 가치가 없어.”
종수와 현수가 그런 나를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예~. 그렇게 하세요.”
“찬수가 좀 막살긴 했지.”
비장한 나의 대사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냉혈한 같은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빈정이 상했다.
“아이씨, 이번엔 진짜 다르다고 새끼들아.”
책상을 쾅 치며 이야기 하자 녀석들이 그제서야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어, 가만 보니까 이 새끼. 뭔가 좀 달라 보이는데?”
현수가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 말했다.
“이 새끼 이거 진짜 다르긴 하네.”
현수의 말에 종수도 뭔갈 느꼈는지 말을 보탰다.
녀석들의 반응에 코를 훔치며 멋쩍게 올해 다짐을 세부적으로 말하려는 찰나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새끼 오늘 보니까 진짜 제대로 못생겨졌네.”
“어,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와 우리 둘 다 그렇게 생각한 거면 심각하네. 원래 사람이 오래 보면 좀 괜찮게 느껴지고 한다는데, 찬수는 그 법칙을 박살내 버리네. 찬수야 진짜 리스펙 한다.”
“아이, 시바!!!”
눈앞의 녀석들은 낄낄거리며 소주가 출렁이는 잔을 테이블 가운데로 들이밀었고, 나도 잔을 들어 짜증스레 부딪힌 후 입에 털어 넣었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했던 종수와 현수.
셋 다 특출날 것 없이 비슷하게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현수가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 뭔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쁘고 사람 좋은 현수의 여자친구는 대체 뭐가 좋은진 모르겠지만 현수에게 홀딱 빠졌고, 둘은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봐도 정말 괜찮았던 현수의 여자친구는 2년 전 먼저 취업한 후부터 현수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현수는 대학원 마치고 취업까지 하고 나서 떳떳하게 하고 싶다며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현수를 항상 부러운 눈으로 나와 함께 쳐다보던 종수는 작년쯤 대기업에 합격해 우리 중 가장 먼저 밥벌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빡센 회사생활에 힘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현수와 내겐 부러워만 보였다.
반면 나는 작년 첫 취업 준비 기간을 서류광탈로 마무리 했다. 재작년 취업을 먼저 했던 여자친구마저 신입교육에서 만난 녀석과 눈이 맞아 나를 떠났다. 그래서인지 둘과 달리 그 어느 것 하나도 가지지 못한 나의 상황이 가끔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힘든 건 밥벌이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는 이 상황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야 새끼야, 뭘 또 그리 심각해. 취업 까짓 거 내년에 하면 되지 임마!”
종수가 나를 위로했다.
“종수야, 이 운 존나 좋은 새끼야. 지금 취업시장 너 때랑은 완전 달라. 우리 좆됐어 임마. 우리 교수가 그거 딱 알아채고 나보고 박사까지 하라고 권유하는데, 그걸 진짜 고민하고 있는 내가 싫다. 시발…”
현수가 자기 잔에 혼자 술을 따르며 고통스럽게 말했다. 현수의 말처럼 공채는 갈수록 줄었고, 2026년도에는 더 감소할 전망이라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고통스러움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현수에게 소주병을 빼앗아 내 잔에 따랐다. 종수는 그런 나와 현수를 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부딪혔다. 술이 무척이나 썼다. 그럼에도 술은 계속해서 들어갔다.
“애들아!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텐션이 낮았냐? 너희들도 좋은 소식 있을 거니까 걱정들 하지 말어!!!”
말리는 우리를 무시하고 3차까지 연거푸 계산을 한 종수가 헤어지기 전 우리에게 소리쳤다.
“뭐래, 병신이. 너나 힘들다고 질질 짜다가 퇴사하지 말고, 대기업 노비로 잘 붙어있으면서 술이나 자주 사줘.”
현수가 종수에게 말했다.
“종수야, 대기업 친구 덕분에 오늘 맛나게 잘 먹었다. 나도 따라갈라니까 기다려라!”
오늘 내내 우리 둘의 기분을 맞춰준 종수에게 고마워 나도 한 마디를 거들고는 각자 헤어졌다. 얼큰하게 취해서일까? 초반의 불안한 예감과 달리 2026년을 만족스레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26년 12월 31일 우리 셋은 시내에 제법 가격대가 있는 참치집에서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야, 얼마만이냐. 연초에 한 번 보고 이번이 처음인가?”
종수가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그러네, 다들 바빠가지고 이번 해에는 진짜 못 만났다.”
현수가 종수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말했다.
“…”
종수가 따라주는 술을 조용히 받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봤으니까 건배 한 번 하자!”
현수의 말에 우리 셋은 조용히 잔을 부딪혔고, 빈 속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씨발…”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
“야, 왜 그래. 아씨, 왜 울고 그러냐.”
현수가 나를 보고는 놀라 말했다. 그 순간 사장님이 참치를 들고 우리 방에 방문했고,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는 당황해 하시더니 설명 없이 참치만 두고 방을 나가셨다.
“하,,, 씨발. 진짜 뒤지고 싶다.”
나의 말에 둘은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 2026년 나는 취업에 실패했다. 상반기, 하반기 모두 최종면접 까지 갔지만 결국에는 최종탈락했다. 상반기에 함께 취업스터디를 하는 와중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먼저 취업한 신입사원 연수에서 눈이 맞아 나를 떠났다.
솔직히 여기까진 괜찮았다. 취업이 워낙 힘든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있는 현수가 국내에서 내놓라하는 전자기업에 취업을 했다. 교수님의 박사과정 권유를 수락 후, 경험 삼아 지원해본 2개 회사 중 한 곳에 합격을 한 것이다. 그 길로 현수는 박사 진학을 그만두었고, 워낙 탄탄한 기업이라 교수님도 더 이상 현수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분명 친구의 성공에 축하를 보내야 함에도 그 소식을 카톡으로 전해들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약속 날이 다가옴에 따라 우울해지고, 최종면접에서 아쉬웠던 답변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곤했다.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 만이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야, 안주 좀 먹으면서 마셔. 오늘 현수가 풀코스로 쏜다니까 천천히 가자.”
종수가 걱정스레 내게 말했다.
“그래, 우리 현수가 XX전자 들어갔는데 오늘 제대로 한 번 얻어 먹어보자!”
대사와는 다르게 씁쓸한 얼굴을 한 나는 이후 참치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연거푸 마시며 취해갔다. 친구 둘은 나를 말렸지만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겼다.
“아~ 찬수새끼 겁나 짠하네.”
“그니까. 이번 해에 너랑 둘 다 됐으면 진짜 분위기 좋았을 텐데. 이 새끼 마음이 어떻겠냐.”
“나 이번에 취업 하지 말았어야 됐나?”
“미친소리 하지 말고, 너 박사과정 진짜 가기 싫어했잖아.”
“그치. 근데 시발 찬수녀석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기분 뭣 같다. 그냥 최종면접 좀 붙여주지. 어떻게 상반기, 하반기 다 최종탈락이냐. 사람 희망고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니까. 차라리 최종면접까지 안 갔으면 모르겠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떨어지면 진짜 멘탈 나갈 수밖에 없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곯아 떨어져 있었고, 종수와 현수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슬쩍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45분. 어지러웠던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술 마시던 방을 나왔다.
“야, 어디가!”
“화장실.”
나는 화장실을 들렀다가 술집 건너편에 24시 약국이 보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두 친구의 얼굴에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안쓰러운 표정이 보였다.
“뭔 화장실이 이렇게 오래 걸려. 이 새끼 술 빼려고 수 썼네.”
현수 녀석이 분위기를 바꿔보려 나를 놀렸다.
“야. 니들 내가 연초에 했던 말 기억하냐?”
“뭔 말?, 너 존나 못생겨졌다는 말?”
나의 말을 현수는 또 장난으로 받았다.
“아이, 시발. 그거 말고. 내가 취업, 연애 못하면 이번 해에 뒤져버리겠다고 했잖아.”
나의 심각한 얼굴 탓인지 현수는 더 이상 농담을 이어가지 못했다. 시간은 11시 58분, 이번 해가 거의 끝나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쉰 뒤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이미 김이 빠져버린 눈 앞의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대기 시작했다.
“야야, 너 뭐 쳐 먹은 거야!!”
종수가 놀라 소리치며 내 손에 있던 맥주 잔을 빼앗았지만 나는 이미 약을 삼킨 뒤였다. 현수도 놀라 몸을 일으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내 상태를 살폈다.
“종수야, 현수야, 니들 취업해서 존나게 기뻤고 진심으로 축하도 해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이상한 마음이 올라오더라. 니들만 가고 나만 병신처럼 혼자 남겨지다 보니, 니들만 먼저 취업한 것도 뭔가 싫고 서럽고. 무엇보다 친구들한테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진짜 병신 같더라. 내가 취업이랑 연애는 실패했어도 약속은 지키는 새끼로 남고 싶다. 잘 살아라 시바알!”
툭. 내 머리가 테이블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현수와 종수는 내쪽으로 넘어와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이 병신이. 야! 야! 얼른 안 일어나?!”
현수가 채근했지만 내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야야, 이 새끼 눈깔 돌아갔어.”
현수가 소리치며 나를 정신없이 흔들었다.
“야!! 박찬수!!! 씨발롬아 일어나라고!”
그 순간,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나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2026년12월31일이 지나고 2027년1월1일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였다. 종수는 나의 휴대전화 알람을 일단 껐다. 그리고 그 순간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내가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았다.
현수와 종수가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2026년 박찬수는 이제 뒤졌다. 이제 2027년 박찬수로 다시 태어났다. 반갑다 친구들.”
내가 말을 마치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있던 현수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했고, 종수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의자에 몸을 털썩 기댔다.
“야이 병신 새끼야!! 장난을 칠게 따로 있지!!! 너 아까 쳐 먹은 건 뭐야?”
“2027년을 힘차게 살게 해줄 쥐약 같이 생긴 비타민C지.”
“아오, 진짜 이 병신을 어떡하냐? 그래도 장난칠 기운 있는 거 보니 다행인건가?”
평소의 현수였다면 그냥 지나가지 않았을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러운 마음이 더 컸는지 화만 조금 더 낸 후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이후 우리는 술과 안주를 더 시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잘가, 새끼들아. 이번 해에 취업 전까지는 백수니까 니들이 술도 좀 많이 사고 해라. 그래야 취준생 힘도 좀 나서 취업할 거 아니냐.”
둘은 그런 나의 모습이 내심 다행이다 싶었는지 대답 대신 현수의 손가락 욕을 마지막으로 각자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연말연시라 새벽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새해가 주는 두근거림 때문인지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씩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싫어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얼마 후 사람이 없는 한산한 길에 들어섰다. 그제서야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다. 나는 일부러 어둑한 길들을 골라 걸었다. 걷는 동안 이런 길들이 내게 알맞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벤치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닦아도 닦아도 그것은 자꾸만 더 흘러내렸다. 분명 2027년은 방금 시작됐는데. 나는 그 시작을 하지 못한 채, 2026년 12월 31일의 끝자락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