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by CMOONS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카페 내부를 아름답게 비추는 어느 오후,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6명 남짓의 여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누는 이야기의 8할이 남편 욕이다. 같은 남자로서 욕을 먹는 남편들이 안쓰럽다가도, 한국 남자들 특유의 회피 성향 탓에 그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여자분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이내 여자 친구 생각이 났다.


사장님은 오늘 오프셔서 나와 진영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럼에도 구조상의 특성 때문에 안쪽 방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하는 카운터에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들렸고,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음료와 디저트가 준비되어 서빙을 위해 방으로 들어서자 대화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여하튼 기분 나빠 죽겠다니까.”


항상 카페에 오면 계산을 하시는 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니,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다 해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변해서 내가 말하면 제대로 대답도 안 해! 그러니 내가 화가 나겠냐 안 나겠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은 내가 건네는 커피와 디저트를 받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를 하시던 분은 계속해서 남편 욕을 이어갔다. 서빙을 마친 후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더욱 귀를 쫑긋하며 이어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쭉 들어보니 알게 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며, 열심히 이야기하시는 분은 화정이라는 분이었다. 이분은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비혼을 외치더니 뒤늦게서야 결혼을 한 케이스였다. 배우자는 나이 차는 좀 나지만 전문직에 집안 빵빵하고, 기념일이면 센스있는 선물을, 갈등이 생길라치면 알아서 져주는 그런 남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그렇게 따뜻했던 남자가 180도 변해서 짜증이 난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였다. 특히 그녀를 화나게 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아니, 그 인간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결혼 전에 그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니냐는 거야? 자기가 미리 쌓을 만큼 쌓아놨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다나 뭐라나. 이게 말이 되냐? 내가 무슨 연금보험이니? 미리 쌓아두고 천천히 받아 가게?”


친구분들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안쓰러운 얼굴을 했고, 화정이 힘들겠다며, 남편분 대체 왜 그러냐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친구들의 적극적인 반응에 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화정이라는 분의 얼굴이 다소 좋아졌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다른 몇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가 이어졌고, 제법 시간이 흐르자 몇몇이 일을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다른 분들도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진영이에게 물었다.


“진영아,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내 아내가 저렇게 내 욕 신나게 하겠지?”


“오빠 하기 나름이죠. 지금은 뭐 그렇게까지 욕먹진 않을 것 같은데요?”


“오, 내 점수 좀 높게 쳐 주는 거야?”


“저 정도는 아닐 거란 거죠. 근데, 저분들 여기 자주 오시는데 분위기 좀 이상해요.”


“분위기? 왜? 매번 저 센터에 앉으신 분이 돈도 팍팍 잘 내시고, 친구분들도 잘 공감해 주시는 것 같더구먼.”


“아까 계산하시던 분 결혼하시기 전에도 이 카페에 자주 들르셨는데 되게 사람 잘 챙기시는 스타일인가 보더라고요. 때 되면 친구들 선물 챙기고, 모임도 추진하시고, 연락도 잘하시고요.”


“그럼 좋은 거지 뭐가 문제야?”


“근데 결혼하시고 나서부터요. 조금 분위기가 이상해졌어요. 결혼을 잘하셨는지 어디 서초구 쪽에 자가로 사시는데, 직장도 그만두시고 가정주부이신 것 같더라고요. 아까 함께 온 친구분들 말고 다른 분들이랑도 카페 가끔 들르시거든요.”


“더 좋네. 커피값도 매번 내주는데 뭐가 문제야?”


“음… 그 커피값 내시던 분 말 계속 들어주기 힘들어서요. 아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욕 엄청나게 하시잖아요.”


“응, 아까도 무슨 자기를 보험으로 취급하니 어쩌니 하시던데.”


“근데 그분 안 계실 때 친구분끼리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말만 그렇게 하지 인스타에는 맨날 남편하고 아들하고 여기저기 놀러 간 사진 올리고, 은근히 기념일 날 받은 선물 자랑하나 봐요. 근데 친구들 앞에서는 저렇게 죽는소리 하니까 좀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나 보던데요.”


“아, 그래? 아까는 그런 느낌 전혀 없었는데. 생각보다 사람 언짢게 하시는 타입인가 보네.”


그 순간 12명 정도 되는 단체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쳤고, 우리 둘은 이야기를 멈추고 한 명은 급히 테이블을 정리, 한 명은 주문을 받은 후 빠르게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 밀려드는 손님 탓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어느새 근무시간이 끝난 진영이는 지친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먼저 퇴근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따뜻한 커피가 당기는 날이었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 오랜만에 진영이와 일하는 시간이 겹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때 그 무리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한 2주 전에 본 게 마지막이지?”


“자주 좀 보자, 우리 다 가까이 사는데.”


“그래 그래.”


그들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세 잔과 따뜻한 라떼 세 잔 그리고 네 가지 디저트를 주문했다. 물론 오늘도 그 화정이라는 분이 계산했다. 매번 앉던 룸으로 가 자리를 잡은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했고, 궂은 날씨 탓인지 손님이 없어 한가했던 우리는 제법 여유 있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 특별한 일들 있었어?”


“에이 다 똑같지 뭐. 일하랴 애기 보랴 정신없다.”


“맞아 맞아, 육아랑 일이랑 같이 하니까 진짜 정신없어. 퇴근해도 그게 퇴근이 아니라니까.”


“응, 우리 남편은 특히나 늦게 퇴근하는 업종이라 내가 살림이랑 육아 도맡아 하잖아. 그래 놓고 주말에는 본인 힘들었다고 그냥 누워있는데, 아주 주먹으로 머리를 그냥!”


그 말에 다들 공감했는지 다들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 똑같구나. 우리 남편도 그래. 똑같이 회사 일 하고 벌이도 비슷하면서, 뭐가 그렇게 힘든지 주말이면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니까. 그러면서 골프 약속 있으면 제주도 가고 동남아 가고, 본인 입으로는 진짜 가기 싫다는데 내가 믿음이 가?”


“너희 남편도 그래? 그래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진짜 위안이 된다.”


메뉴가 준비되어 커피와 디저트를 들고 테이블로 갔다. 서빙하는데 항상 카드를 긁는 분의 표정이 유난히 좋지 않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오는데 그분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나 고민 있다.”


“화정이 무슨 일 있어?”


“나 진짜, 계속 이렇게 못 살겠는 거 있지?”


“뭔 일인데 얼른 말이나 해봐.”


“나도 뭐 너희들이랑 비슷하긴 한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네. 퇴근하고 와서는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본인 운동 다녀오고, TV 보고, 책 보다가 시간 되면 자는데, 이게 함께 애를 기르자는 건지 나만 기르라는 건지 싶다니까?”


“야, 그건 진짜 아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대체 당신은 애를 기를 생각은 있는 거냐, 어떻게 나한테만 전담시키고 본인은 본인 할 일만 하고 애 볼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냐, 나 맨날 애기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이런 건 안 보이냐?’라고 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 본인이 돈이랑 다 벌어오고 부족한 거 없이 살게 해주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냐는 거야.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


갑자기 룸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뭐야 너희들? 반응이 왜 그래? 설마 너희도 내 남편 편이야?”


“화정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어, 그래 수경아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해도 돼.”


“너네 집 도우미 쓰지 않아?”


화정이라는 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아니, 우리는 다 아이 기르고 일까지 다니는 워킹맘 입장인데, 네 이야기 듣다 보면 좀 그럴 때가 있어서…”


잠시 정적이 흘렀고, 화정이라는 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경아,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친구들 앞에서 나 힘들다고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전업주부는 워킹맘 친구들한테 그런 하소연도 못 해?”


그 말을 듣고 수경이라는 분이 주저하다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화정아. 너 서초에 좋은 아파트 살고, 집에서 도우미 쓰고 하는 거 우리 다 알잖아. 또 너 맨날 네 남편한테 서운하다고 말하면서 매번 인스타에 가족여행 사진 우리 중에 제일 자주 올리는 거 알아? 실제로 네 남편분 만났던 애들마다 너 남편이랑 금슬 좋아 보인다고 하고. 그러다가 네 말 들으면, 나 솔직히 공감 잘 안 돼. 오히려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라니까. 전부는 아니어도 여기 앉아 있는 애 중에 그런 마음 느끼는 애 나 말고 한둘은 더 있을걸?”


조곤조곤 할 말 다 하는 수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화정이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너희도 수경이 같은 맘이었니?”


“아니, 뭐…”


친구들은 화정의 눈을 피해 다른 곳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 집 형편이 좀 괜찮더라도 사람마다 힘든 지점이 있는 거 아니야? 너희들 친구면서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주니?”


“이해하지. 근데 그런 부분 감안하고 들으려 해도 네 말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하소연으로 들리지 않는 거야.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나도 용기 내서 이야기했어.”


화정이라는 분은 그 말을 곱씹는 듯하더니 이내 굳은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내가 너희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쩜 나한테 이러냐? 나만 없으면 안 불편하다는 거지? 알겠어! 나 갈게!”


그녀의 급작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친구 중 그 누구도 떠나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고, 우리는 씩씩거리는 얼굴을 하며 떠나는 화정이라는 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고요함 후, 룸 쪽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잘했어, 수경아. 언젠가는 나올 말이었어.”


“그래, 나도 매번 화정이가 이것저것 먼저 사주고는 푸념 늘어놓을 때마다 맘도 불편하고 듣기 힘들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걔는 맨날 뭔가를 주고는 푸념을 늘어놓더라. 거절해도 한사코 괜찮다면서.”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말하면서 공감을 표했다.


그때 한 친구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이거 화정이 말대로라면 걔네 부부 진짜 천생연분 아니야?”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깔깔거렸고, 화정이라는 분이 남기고 간 잠깐의 어색함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이어지는 즐거운 수다에 묻히고 말았다.


나는 진영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진영이, 촉 장난 아닌데?”


진영이는 그런 나를 보고는 씩 웃으며 여느 때처럼 커피를 내렸고, 바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전 여자친구에게 편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