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친구
나는 균형을 중시하는 편이다. 삶의 어느 영역이든 균형점을 잃으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남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에 매몰되어 가족과 보낸 시간을 되살 수 없듯, 한번 허물어진 자리는 다른 무언가로 완벽히 메워지지 않는다. 이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관계의 균형점을 흔드는 부류를 특히 경계한다.
내게는 중학교 시절, 딱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최모씨로 마르고 적당히 큰 키에 하얀 피부, 제법 깔끔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 친구를 포함한 몇 명과 무리를 이루었던 나는 가끔씩 학교를 벗어나 함께 시내에 놀러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날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다툼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중심엔 최모씨와 내가 있었다.
그날은 다함께 시내로 나가 유명하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돈까스 집에서 밥을 먹고 옷구경을 하다가 피시방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최모씨가 갑자기 말했다.
“아, 갑자기 빕스 가고 싶다.”
하지만 구성원 중 아무도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중학생의 주머니 사정이야 뻔했고, 거기에 돈을 쓰느니 차라리 원하는 옷을 사는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버스가 시내에 도착했고, 우리는 원래 가기로 했던 돈까스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모씨가 걸음을 멈췄다.
“애들아, 너희 빕스 가고 싶지 않냐?”
멈춰선 다른 친구들이 최모씨를 쳐다봤다.
“근데 너무 비싸.”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최모씨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내가 절반 낼테니까, 나머지 절반만 너희가 나눠 내. 나 오늘 빕스 가고 싶어.”
녀석의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우리 중 약삭빠른 축에 속한 녀석이 말했다.
“어차피 돈까스 집이랑 비슷하게 내면 될 것 같은데, 우리 빕스 가자! 친구야 잘 먹을게!”
그 말에 다른 친구들 대부분이 동조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싫었다. 애초에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왜 쟤한테 얻어먹어야 하는지도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빕스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후 원래 일정대로 쇼핑을 하고 피시방까지 즐기다가 헤어졌고 집에 도착한 그날 밤, 내 맘 한구석엔 작지만 단단한 불편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얼마 후 또 한 번 뭉치게 된 우리. 김밥천국에서 밥을 먹고 당구를 치기로 계획했기에 모이자마자 김밥천국을 향해 걸었다. 그 순간 최모씨가 또 걸음을 멈추었다.
“애들아, 미피 갈래?”
우리는 멈춰서서 최모씨를 바라보다 그때처럼 우리 중 한 명이 말했다.
“미피 너무 비싼데“
최모씨는 갑자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저번에 내가 빕스도 절반 냈잖아.”
“그건 니가 가고 싶어서 낸거고.”
약삭빠른 녀석이 최모씨의 말을 바로 받았고, 최모씨는 억울해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김밥천국으로 가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최모씨가 다시 한 번 우리를 쳐다보고 말했다.
“내가 반 낼게 미피 가자.”
그 말을 듣고 약삭빠른 녀석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려는 차 내가 선수를 쳤다.
“야, 니가 왜 내? 그리고 애초에 김밥천국 가기로 했으면 김밥천국 가자. 무슨 미피야.”
“최모씨가 절반 낸다면 괜찮지 않냐?”
약삭빠른 녀석이 나한테 왜 그러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니까 왜 쟤가 절반을 내냐고 그냥 적당한거 먹고 엔빵하면 되는데.”
모두 최모씨를 쳐다봤다.
“그냥 내가 오늘 미피 가고 싶어서 그래. 내가 절반 낼테니까 가자.”
“아니, 그니까 왜 갑자기 미피를 가야하냐고.”
”야 누가 너보고 돈 더 내랬냐? 쟤가 절반 낸다잖어.”
나와 최모씨 그리고 약삭빠른 녀석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지친 나머지 친구들은 그냥 김밥천국이나 가자며 걸음을 옮겼고, 그날 최모씨와 약삭빠른 녀석은 죽상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 정도 했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겠거니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후로도 음식점, 여행, 놀이 등등 최모씨는 이미 정해졌던 계획을 벗어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갑작스런 딜을 우리에게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최모씨와 그 딜을 받고자 하는 아이들과 언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 결과 가끔은 밥을 따로 먹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 무리의 관계는 점점 변질되어갔다. 무리 중 몇몇은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최모씨를 꼬드겨 돈을 더 내도록 유도했고, 그럴 때마다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은 대체 왜 그러느냐며 그냥 공평하게 분담하자고 그들을 설득했다.
어느 순간 우리의 만남 횟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종 최모씨와 몇몇이 따로 놀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 무리의 친구관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지경임을 느끼게 되었고,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각자가 마음 맞는 이들끼리 흩어지더니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렇게 너무도 허무하게 중학교 친구관계는 허물어져 갔다.
이후로도 나는 최모씨와 같은 친구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돈으로 힘으로 때론 이간질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를 망가뜨리는 유형의 인간들. 약삭빠른 이들은 그들이 지불하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빨아 먹다가 막상 더 이상 얻을게 없어지면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래서 처음엔 약삭빠른 이들이 못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런 상황을 유발한 이들이 있었기에 그런 관계가 생겨난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결국 나는 그런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욕구가 신뢰보다 앞서는 사람과는, 아무리 시간을 쏟아도 관계가 단단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 쓰인 시간과 에너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갑자기 최모씨가 어떻게 사는지 살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