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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람 Jun 25. 2024

선서


65곱하기 73곱하기 48곱하기 60은

내 머리로는 암산이 불가능한 큰 수


그 수만큼 들춰진 부위는 

물에 젖은 종잇장만큼 너덜너덜해져

헤집어지기만 할 뿐 아물지 않는다


찢겨나간 사전의 의미를 알 수 있나

굳어버린 사고의 원천을 알 수 있나


지나치게 어릴 적부터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나치게 반복해온

무형이자 누가봐도 유형인 

또렷하고 어째서인지 오염된

불특정 다수에 의한 특정한 기억


그렇게 지나쳐온 시간과 공간은 기억나질 않고

지나친 곳에 기워놓은 검은 발자국은 해진지 오래고

지나쳤다고 말하는 이들은 뒤에서 쉼없이 웅성거리고

지친 나는 지나치게 과민하고 억울함이 가득해서

말을 끝내 잇지 못하고


말하기를 포기하고

쓰기를 포기하고

정리를 포기하고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는 농담에

울컥해서 관련 없을지 확신할 수 없는 당신에게 

성을 내고

생치기를 내고 

후회하기는 커녕 

박장대소하고


몸소 겪어온 지나온 나날들을 넝마처럼 간직하고 있으면서

널부러진 휴짓조각마냥 어디에도 쓰이지 못하고 


그 어디에도 말하면 안 되지만

그 어디에도 말할 수 있는

새까맣게 타버린 동그란 구멍을 가지고도

그 어디에도 말하기를 거부한

나의 충동적인 선서


우주의 크기만큼 반복해서 말해왔고

실수의 개수만큼 반복해서 털어놓은

이상한 나의 그 이상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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