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하신지 일 년 반, 기도를 뚫고 호흡기를 다신 지 일 년이 지난 후 할머니는 세상에 작별인사를 하셨다.
아무날과 같았던 월요일 출근 버스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충격보다는 다행이가라는 생각니 들었다. 이제 요양병원을 탈출해서 하느님의 품에 가시게 되어.
큰손녀의 철없는 속단인걸까. 그건 모르겠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급히 전주로 내려갔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며칠간 내리던 비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만큼. 기도를 열심히 하셔 정말 하나님의 품에 가신걸까. 날씨까지 바꿔주실만큼 사랑한 사람이니 할머니는 슬프게 가지 않은거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정확히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일년이 할머니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는 또 모른다.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요양병원에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던 할머니의 시간을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일 년 반전 화장실에서 넘어진 할머니는 꼬리뼈가 부러지셨다. 젊은 사람이면 금방 털고 일어날 부상이었지만 연세가 많으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만 누워있게 된 할머니는 급속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면회가 금지된 병동에서 외롭게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는 결국 기도를 뚫고 호흡기를 차게 되었고 영영 침대를 떠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처음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작년 7월이었다. 급히 가족들과 함께 내려가려 했지만 과장이 붙잡았다. 인사이동철이었고 나는 서무였다. 업무분장이 날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할머니가 나를 기다려주실까 싶었지만 그러기로 했다. 당시 과장도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업무분장을 마치고 내려가는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분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일주일 넘게 나지 않았다. 일주일을 기다리다 다시 한번 과장에게 이야기헸다. 업무분장 좀 부탁드린다고. 이게 뭐라고 기다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고 할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울며 이야기하는 나에게 과장은 “XX주임은 눈물이 많네. 나는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안 울었는데.”라고 했다.
허무했다. 이게 뭐라고 나는 할머니도 외면한 채 이곳에 있는지. 지난 세월이 뭔가 싶었다. 알량한 이 업무를 하느라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게 억울했다. 내가 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데 할머니에게 이 시간은 평생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것일까. 과장에게 더 이상은 서무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간 근무평정도 받지 못한 채 일했었는데 그런 내게 과장은 그럼 그간의 노력을인정해 한번은 챙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할머니는 다행히 고비를 넘기셨다. 하지만 여전히 창살없는 감옥에 같혀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니 과장은 내게 그 한번도 챙겨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과장을 믿었다. 나눈 너무 순진했다는 것. 나 대신 업무를 맡은 후배를 위해서 근평을 줄 수 없다고 했고 그 후배는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렸다. 누구보다 친한 후배였가. 나는 이의제기를 했다. 행정처장, 괴장들이 모인 이의제기 회의에서 나는 내가 그동안 했던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과장과 관장은 내가 무능력하고 게으르며 업무에 대한 열의가 없다고 했다. 휴가도 미루며 일한 내가 게으르고 열의가 없는 걸까. 나는 결과를 제시했다. 내가 근무하던 당시
부서가 우수부서 포상을 받았다는 것, 내가 했던 압무들. 그 모든 것은 의미없었다. 그냥 단지 회사는 소동 없이 넘어가길 바랐고 나보다는 인사권자의
발언이 더 힘이 있었다. 부서에는 할머니가 위독하신
것이 내 거짓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내 후임은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냈지만 나는 그것을 바로 잡을 의지나 힘도 없었다. 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오랜 우울증을 앓았다. 이제껏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사이 할머니는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끝났는데 그 시간들이 떠오른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병상에 누워 굽은 다리도 펴지
못한 채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며 신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병문안을 갈때면 항상 할머니 머리 맡에 찬송가가 나왔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따르던 할머니가 지금도 찬송가가 그리울까 싶었다. 하지만 모든 건 나의 판단이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병상에 누워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할머니는
징글징글한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으셨을까. 아니면
그냥 빨리 그 분 곁으로 가고 싶으셨을까. 친구 신부님에게 권사님이시던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어떤 생각이던 간에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다. 성경책 앞에 내 이름을 적어두고 나를 위해 기도 했던 할머니가 계셨기에 이제껏 내가 무탈히 살아왔던 것을 안다. 이제 나는 무탈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는 내가 할머니를 위해 기도할 차례다. 늦었지만 미안해요 할머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