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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은섭 Sep 08. 2021

포기하는 것도 지혜다

n차 방정식의 교훈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두 개의 큰 자리 소수의 곱으로 이뤄진 자연수를 아무런 정보 없이 역으로 분해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곱셈을 살펴보겠습니다.


63949×29947=1915080703


계산기만 있으면 곱셈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곱해도 몇 분이면 가능하지요.

그런데 역으로 자연수 1915080703이 주어졌을 때, 두 소수 63949와 29947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더 큰 자리의 두 소수를 곱한 수라면 더 어렵겠죠. 가장 성능이 좋은 최신 컴퓨터를 이용해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이러한 소수의 성질이 실생활에 활용되고 있는데요. 바로 인증서와 같은 보안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암호를 만들 때 이 원리를 사용합니다.


수학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커녕, 아예 불가능한 일도 있습니다. 이차방정식 ax2+bx+c=0은 a, b, c가 어떤 값으로 주어진다고 해도 x를 구할 수 있는 근의 공식이 있습니다. 중학교 수학책 어딘가에 나와 있지요. 삼차방정식과 사차방정식도 근의 공식이 있습니다. 다만 조금 복잡해서 학교 수학에선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차방정식부터는 근의 공식이 없습니다.



삼차, 사차방정식 근의 공식이 발견된 이후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 일반적인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했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벨과 갈루아라는 천재 수학자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칙연산과 거듭제곱 기호만으로 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 수학자들의 모든 도전과 실패들을 한 번에 다 정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n차방정식은 정확히 n개의 근이 존재합니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가 알아낸 사실입니다. 오차방정식은 다섯 개의 근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그 근들을 일반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존재는 하지만, 어떻게 구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수업 시간에 가끔 오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발견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식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죠. 아쉽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열심히 하는 노력과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가능한 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면 된다' 식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계획을 세워 내가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 수학이 전하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서 새로운 시도를  보십시오. 나뭇가지가 많은 나무처럼 다채로운 삶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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