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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 Feb 05. 2020

그 도랑에는 아직 송사리가 있을까

순순히 손에 잡혀주던 천지 모르던 그것들이

  아주 오랜만에 외할머니가 사는 곳에 들렀다. 마산의 조그만 저수지는 이미 그 짧고 좁은 도랑이 비쩍 말라 차가 들어가면 부옇게 먼지가 일었다. 가끔 재수 없는 날엔 날카롭게 깎인 바위 사이에 주차하다 타이어가 터지기도 했다. 현관이 없는 집의 출입문이 창문처럼 듬성듬성 나 있었고 도랑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는 내 나이보다도 오래 되어 걸을 때마다 녹가루가 훌훌 떨어졌다.


  가파른 언덕 위엔 가동을 멈춘 자동차 부품 공장이 있었고 누구의 손에 메였는지 모를 개 한 마리가 아침 새벽으로 맹렬히 짖어댔다. 동네를 잡아먹을 듯 기척 없이 벽을 뒤덮은 넝쿨식물을 볼 때면 시멘트가 너저분하게 발린 좁고 높은 길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상상을 했다. 같이 잡아먹힐 것 같았다. 땅을 기는 모든 것은 물비린내에 젖어 있어 가끔 중지 손가락보다 더 길고 굵은 거머리를 보기도 했다.


  집이 아닌 사는 곳이라 표현함은 그런 의미이다. 민물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곳. 떠나지 않으면 코에 이끼가 창궐할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이 곳에서 문에 건 갈고리 자물쇠 하나로 세상과 경계를 두고 산다. 벽 위에 판자 지붕을 얹어놓은 모양새에, 집에서 낮은 도랑으로 이어진 토지가 죄다 젖은 나뭇가지와 플라스틱, 쓰레기, 지네와 넝쿨로 뒤덮였는데도 외할머니는 이 곳을 떠날 줄 몰랐다.


  백 세 시대에 이제 겨우 고희를 넘긴 외할머니는 모든 신체와 정신이 고장 났다. 문으로 올라가는 턱이 높아 가끔 기어 올라가기도 한다고 했는데 별로 떠올리고 싶진 않은 광경이다. 그렇다 해 더러운 것과 불쾌한 것을 기피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다. 얇고 흰 머리가 나풀거리지 않게 뒤로 짜매어 묶고, 목욕을 가고 싶다 떼를 쓰고, 식사 한 끼에 두루마리 휴지를 반통씩 쓴다.


  외할머니는 어릴 적 열 한 살까지 유모의 등에 업혀 등교를 했다. 결혼하여 부지런히 딸을 넷 낳고 막내딸이 뱃속에 있을 때 남편과 사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안이 도박으로 패가망신해 외할머니는 상가 청소 일을 하며 네 명의 딸을 키워냈다.


  셋째인 엄마는 스무 살이 되고 일을 시작한 후로부터 나를 낳기 전 스물세 살까지 월급을 제대로 손에 쥐어본 적이 드물다고 했다. 월급봉투를 그 어디에 숨겨도 외할머니는 엄마의 봉투를 찾아내 가져가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엄마는 그것이 서러워 일찍 결혼을 해버렸다고 토로했다. 진로 결정이 어려워 방황하는 나에게 지워주는 짐 같은 말이었지만 미운 소리만 하는 내 입을 막으려고 했던 이유라면 잘 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아홉 살의 밤, 매일 익숙한 자동차에 실려 엄마와 헤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고백은 복수나 다름없다.


  외할머니가 사는 곳에 삼 년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일곱 살 겨울부터 열 살 봄까지 살았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엄마는 이후 우리가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고 난 이후로도 꼬박 이십년을 한 회사로 출근했다. 그 때는 아침 여섯시에 출근해 저녁 아홉시에 돌아왔다. 홀로 선 엄마의 옆에 덩그러니 세워진 나는 어린 마음에 저녁밥만 물렸다 하면 칭얼거리고 울었다. 연이은 폭우에 물러진 지반처럼 불안정하게 질퍽거리는 생각만 했다. 내가 인간의 꼴을 유지 할 수 있게끔 길러내는, 요컨대 아플 만큼 가르마를 정갈히 내어 머리를 묶이고 따뜻한 밥을 먹이고 옷을 빨아 입히고 학교를 보내는 사람들의 가슴에 난 구멍을 정확히 헤집어댔다.


  끈이 끊어진 부표처럼 밀리는 대로 생각하고 휩쓸리는 대로 넘어졌다. 무의식의 파도는 더 거칠게 몰아쳐서 잠이 들었다 하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회색 액샌트 차량 뒷좌석에 실려 어딘가로 끌려가는 악몽을 꿨다. 나는 딸꾹질을 하며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나를 찾는 음성에 귀신의 집이라며 들어가길 꺼렸던 외할머니 집의 창고에 숨어들어가 죽은 듯 숨죽이기도 했다. 아마 그런 꿈은 조금만 더 오래 꿨다면 호흡 곤란으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괴로워할 때쯤에 엄마가 집에 왔다. 할머니의 벼락같은 목소리와 내가 짜낸 눈물로 그 삼 년의 저수지에선 이끼가 한 줌은 더 생겼을 것이다.


  기억을 거르는 거름망에 고장이 난 것 같다. 태풍 매미에 휩쓸려 저수지 탱크에서 도랑까지 내려온 참거북이를 한 달 정도 빨간 고무대야에 키우다 풀어주던 순간 같은 건 냄새까지 선명한데, 시끄럽고 더웠던 자은동 이 층집에서 어떻게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밑으로 조그맣게 열리던 창문틀이 하얀 색이었다는 것 정도는 떠올릴 수 있다. 나프탈렌 주머니를 달아놓아도 끈적하고 찹찹했던 옷방과 고등어구이를 먹으며『천국의 계단』따위의 드라마를 보던 기억은 생생한데 삼 년 동안 동네에서 유일하게 또래인 덕에 죽을 때까지 친하게 지내자며 살갑게 지냈던 두 살 언니는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곱게 걸러지면 종국엔 느낌만이 남아 맴돈다. 붙잡고 싶은 것들은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느낌조차 날려 보내고 싶은 시간은 선명한 감각으로 잔존한다. 그 중 하나는 수원지의 물비린내이다. 외할머니는 이사도 한사코 거부하고, 병원도 무리해 나와서는 그 공간의 마지막 주인으로서 소임을 다한다. 함께 살던 네 딸과 손녀 하나가 그 곳을 떠나고 주에 두 번 오는 요양보호사조차 꺼리는 곳이지만 꿋꿋이 높은 턱을 기어오르고 달라붙는 장판에 맨 발을 디딘다.


  동생만 둘 있는 나에게 오빠는 잘 지내냐고 묻지만 결코 자식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확인하려 들진 않는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달갑지 않은 쪽길을 걸으며 애써 십 오년 전 할머니가 키웠던 진돗개 두 마리 같은 것에 대해서나 이야기한다. 그마저 밤중 개장수에게 잡혀갔던 탓에 외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발작에 가까운 질색을 한다. 이제 셋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아침마다 외할머니의 솜씨로 하얗게 드러났던 아홉 살의 내 가르마 정도 밖에 없다.


  나는 찾아가는 시기가 뜸해질수록 부채감에 고개를 숙이고 풀숲으로 사라지는 거머리를 관망한다. 멀리 띄운 편지가 파도에 밀려 다시 모래사장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나는 애써 그것을 보지 못한 척 걸음을 뗀다. 멀어져야 할 것들로부터 멀어지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력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이런 생각마저 갚을 수 없는 빚이 되리란 걸 안다. 물 먹은 벽지가 때처럼 벗겨지다 허물어지고, 저수지의 물이 넘실넘실 밀려온다. 얄팍한 문에 대고 이제는 나의 머리를 감겨줄 수 없는 할머니를 부른다. 돌아오는 대답이 점점 늦어지는 것이 등골을 선연히 식힌다. 너무 늦기 전에 이제는 차를 몰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울지 않겠다고 꼭 약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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