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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 Feb 05. 2020

그 행성의 고리는 모두 고양이더라

외롭지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


  내가 머물던 파리 16구에는 유독 고양이가 없었다. 아침마다 조깅하러 간 Parc Monceau에서도, 늦은 점심에 오페라 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서도, 이른 저녁 종종걸음으로 쫓기듯 돌아올 시각에도 작은 발에 낙엽이 사그라지는 간지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요르카 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가 유독 반가웠던 이유다.


구운 식빵처럼 따뜻한 갈색 줄무늬를 띤 작은 동물은, 꽤 오랜 시간 눈을 마주치다 이내 가파른 계단으로 도망가 버렸다. 나는 아쉽게 나온 사진에 자조하며 다시 숙소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돌부리에 걸린 캐리어가 요란스레 덜컹거렸다.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 수영복이 담긴 이십일 인치 캐리어엔 차마 고양이 간식을 넣을 공간은 없었다.


  몸에 회귀 세포가 있는 것처럼 나는 태어난 곳에서부터 일정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늘 같은 자전거에 영역 표시를 하는 고양이처럼 지루하게 돌았다. 일 년을 못 채우고 따분한 이유로 거처를 옮기며 내 짐은 아버지의 스포티지 트렁크에 실릴 수 있는 부피 정도만을 유지해야 했다. 떠돌이 고양이가 배낭을 꾸리진 않듯. 얇은 티켓북과 낙장이 되어 떨어지는 폴라로이드 사진, 쓰기 아까워 서랍에 넣어두다 결국 하나도 붙이지 못한 스티커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은 죄다 오십 리터 종량제 봉투로 직행했다.


  추억과 애정이 제일 거추장스러운 이삿짐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것만 허락되는 벽 없는 방에 고양이 간식이 놓일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에이 포 용지 육십 장짜리 앨범과 햇반 두 개를 놓고 고민하는데 낭만이 안개 같은 가난에 매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필요 없는 짓을 나서서 해보기로 했다. 졸업 후 서울에서 월세방을 얻기 위해 일 년 반 휴학하며 벌어둔 삼백만 원을 들고, 나는 무작정 파리로 떠났다. 그 곳에서 쓰는 언어는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고 혀가 간지러웠다. 셍 제르망 거리 어딘가의 테라스에 앉아 그림 같은 불어를 보며 떠듬떠듬 먹을 것을 주문했다. 피자는 짜고 와인은 썼다.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와 함께 몇 끼를 먹었다.


  정각마다 빛나는 에펠탑을 보며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밤을 체험했지만 늘 가방 안의 휴대폰 걱정과 함께였다. 작고 말이 서툰 동양인 여자로선 해가 한 뼘씩 서쪽으로 넘어갈 때마다 다가오는 미지의 두려움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다. 새로운 쳇바퀴를 얻은 기분이었다.


  주머니 속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원형 계단을 올라갈 때까지 긴장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어와 숫자가 어지러이 혼합된 숙소 비밀번호는 고작 여섯 자리일 뿐이었는데 떠나는 날까지 외우지 못했다. 현지에서 나를 맞아준 유학생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청소가 덜 돼 손님을 받기 난처해하는 집주인 같다고 했다. 청소를 하려고 손님을 부르는 건 순서가 거꾸로 된 거 아니니.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석회수를 정화하는 필터가 달린 물병을 보고 있자면 철학 서적에서 자주 봤던 수사들이 떠올랐다. 여유를 찾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냐. 여유로울 때 하는 것이 여행이지. 돌아갈 곳이 미워 뒤돌아보지 않는 건 도피지 여행이 아니라고.


  오래 매인 사람은 낯선 것과 쉽게 친해질 수 없다. 단 하나의 영역을 가진 고양이처럼 경계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언어와 도시와 냄새와 새 길 사이를, 특히나 사랑으로 넘나드는 사람은 이형異形의 존재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쓰다듬어지며 바깥의 나비나 기웃거리는 고양이었다. 새로운 물병 하나가 어려워 매트리스로 기어들어가고 길을 잘못 드는 건 하루를 사용하는 데 있어 큰 손해일 뿐이며 입에 들어오는 모든 음식에서 익숙한 맛을 찾으려 노력하는, 크기만 바뀐 쳇바퀴에서 어떻게 내려와야 할지 알지 못했다. 끝과 시작이 물린 곳을 잘라 길게 펼쳐 이어보고 싶었다. 잘못 든 길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그 모습은 마치 행성을 감싸고 있는 쳇바퀴 모양의 동그란 고리 같다. 그 곳에서의 나는 망원경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미미한 천왕성 고리 정도의 지분을 가졌다. 행성의 중력수축에 이끌리고 서로의 인력에 마찰하지만, 결코 행성에 안착 할 수없는 위성과 유성체의 잔해물이 된 기분이었다. 서울과 파리, 내가 원하는 공간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를 밀어내며 부쉈다. 필연적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사실은 나를 마음까지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기엔 나는 너무 지쳤고 견디기에 마음이 가난한 것들이 많았다. 그 사실이 나를 너무 외롭게 했다.


  거리에서 먹고 자는 고양이를 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한 도시를 설명할 때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고양이는 정말로 행성 주위를 맴도는 고리를 닮았다. 두꺼운 과학 서적 속 ‘또 다른 지식! 사실은 이 행성에도 고리가 있답니다!’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고양이와 나에겐 딱 그 정도, 한 페이지 모서리만한 지면만이 허락된다. 일방적 유대감이 차올라 새로운 도시에 가면 항상 길고양이를 찾는다.


  그 어떤 존재보다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한 도시의 외곽에 나름의 규칙과 질서로 오래 머물며, 조밀하게 모일수록 더 빛난다. 길고양이가 토성의 고리마냥 커다란 지면으로 각인된 도시에 가보고 싶다. 말레이시아 쿠칭 같은. 그런 곳에 간다면 행성의 띠만을 설명하는 과학책을 본 것 마냥 즐거울 것 같다.


  1979년 토성의 F고리를 발견했던 선임 연구원 래리 에스포지토는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베이징 거리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해서 바뀌듯이, 토성 고리의 미래는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팽팽한 인력으로 만들어진 궤도 속에서 조각나고 재생하며 모습을 달리하는 먼지와 부산물처럼, 고양이도 때론 옆 동네로 이사하고 나 역시 뭍으로 던져진 생선마냥 요란히 펄떡이고 아주 조금 이동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원심력의 균형을 이탈해 행성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비록 남이 먹다 버린 뼈만 남은 고기를 기웃거리는 고갯짓처럼 볼품없더라도, 서로의 궤적이 촘촘히 얽힌다면 다만 잘게 부서진 채로도 빛날 수 있다. 가지런히 정렬된 레코드판 같은 토성의 고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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